커버스토리   제578돌 한글날

10월 9일은 한글날입니다. 올해로 578돌을 맞죠.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라는 대내외적 평가를 받는 한글,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께 그저 감사한 마음만 드는 날입니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학과연합행사를 취재하다 보면 팔도 학우들의 구수한 사투리가 정겹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글에서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한 각 지방 사투리들의 처지가 문득 안타까워지네요. 표준어도 사실 알고 보면 서울 지역 사투리일 뿐인데 말이죠.

 

사투리 역시 한글이며, 유구한 역사 속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언어적 자산이라고 말하는 전시회가 있습니다. 바로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일환)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방언을 주제로 열고 있는 특별기획전「사투리는 못 참지!」(2024.4.19.~2024.10.13.)입니다. 문화와 정체성을 담고 있는 방언의 말맛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자료를 최초로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전시회는 1부 ‘이 땅의 말’, 2부 ‘풍경을 담은 말’, 3부 ‘캐어 모으는 말’로 구성했습니다. 2부와 3부 중간에 제주 방언을 다룬 ‘삼춘의 바당’도 있습니다. 함께 따라가 볼까요?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표준말과 방언
1부 ‘이 땅의 말’에서는 우선 표준어와 방언의 구분부터 알려줍니다. 방언은 오방지언(五方之言)의 준말로 동서남북과 중앙을 포괄하는 중립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앙이자 수도로서 서울의 위치가 공고해지고, 교육, 방송 등을 통해 표준어 이데올로기가 재생산되면서 방언의 위상은 ‘변두리의 말’, ‘비공식적인 말’, ‘고쳐야 하는 말’로 달라졌죠.

 

그런데 이런 인식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있었습니다. 역관 최기령이 1790년에 쓴『인어대방』에서 ‘그런 말은 경상도 사람의 사투리이지 셔울 사람 하는 말은 아니오니 말을 배홀지라도 셔울 사람의게 배호게 하옵소’라는 문구가 등장하거든요.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는 표준말을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을 기준으로 정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서울 토박이들이 대대로 이어온 서울 사투리를, 서울이 경제 발전의 중심이 되면서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로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전시회 1부에서는 서울 사투리의 특징도 세세하게 집어냈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특유의 어휘가 있다’(고작→골짜기, 민경→거울), ‘ㄹ소리를 첨가한다’(하려고→할려고, 먹으려고→먹을라고).

사실 「사투리는 못 참지!」 기획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는 1부에 집중적으로 포진돼 있죠. 1부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 채운 ‘팔도의 말맛’ 영상 전시가 우선 발을 멈추게 합니다. 화났을 때, 안타까울 때 등 여러 상황에서 서울, 경상, 전라, 충청, 평안, 제주 등 팔도 사람들의 표현을 여덟 명의 인물이 말하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화났을 때’ 경상도는 ‘치아라’고 하고요, 제주 사람은 ‘잘도 부에나 되싸지켜게’라고 한다네요.

 

몸을 돌리면 가히 이번 전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강릉 사투리로 듣는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 영상에서 저절로 멈춰 서게 됩니다. “전하, 자들이 움메나 빡신지 아우? 자들이 하마요, 십년 전부터 서양문물을 받아 들여가지구요, 뭔 쎄꼽 덩거리를 막 자들어가지구 조총이란 걸 맹글어가지구요, 한 쪽 구녕에다 화약하고 먼 쎄꼽드 넣어가지구요, 요로 눈으 들어대고 존저서 한 방 걷어 올리믄요. 대뜨번에 쎄싸리가 빠져요.(후략…)” 읽기만 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옆에 있는 전라도 사투리 경연대회 수상작인 ‘핸숙이의 일기’도 놓치지 마세요! “울 엄마는 쑤시허고 모조허고 한 차데기 이고 감시롱 땀으로 멕을 깜고 나는 무시냐 거시기 그 뻘떡기하고 새비를 제금 쨈맸는디(후략)…”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걱정마세요. 옆에 친절한 해석이 있습니다. 아참, 1부 전시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또 있습니다. ‘사투리 능력고사’인데요. 세계적인 그룹 BTS의 노래 가사를 사투리로 바꾸는 기발한 문제들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시인과 소설가들도 썼던 사투리
2부 ‘풍경을 담은 말’에서는 문학 작품에 담긴 지역 방언을 소개합니다. 일상의 말을 문학의 말로 옮기기까지 작가의 세심한 언어 선택을 엿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시인 김영랑의 「연」에는 ‘내 어린날! 아슬한 하날에 뜬 연같이 바람에 깜빡이는 연실같이 내 어린날! 아슨풀하다.’라는 시구가 있는데요. ‘아슨풀하다’는 ‘아스라하다, 까마득하다’를 뜻하는 전라 방언이라고 해요. 김동인의 「감자」에서는 “여보, 아즈바니. 오늘은 얼마나 벌었소? 한 댓 냥 꿰 주소고레”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아즈바니’는 ‘아저씨’의 평안, 함경 방언이고, ‘꿰 주소고레’ 역시 ‘꾸어 주시구려’를 뜻하는 평안 방언이라죠.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 현기영의 「순이 삼촌」, 윤동주의 「호주머니」, 정지용의 「슬픈 기차」, 이효석의 「모밀꽃 필 무렵」, 조정래의 『태백산맥』, 권정생의 『한티재』까지, 우리 문학 작품 속 방언들이 어두운 전시장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습니다.

 

2부 전시 후반부 ‘귀에 낯선 말’에서는 유람이나 유배 등으로 다른 지역의 문화를 접하게 된 타지인들의 기록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어의 관습적인 표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말을 들리는 대로 기록한 자료는 당시 발음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죠.

3부로 건너가기 전 ‘삼춘의 바당’ 전시에는 글자료뿐 아니라 제주 해녀의 어구(漁具)도 함께 진열해 눈길을 끕니다. 제주에서는 윗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 성별 구분 없이 ‘삼춘’이라고 하는데요. 서로에게 의지해 기계 장치 없이 맨몸으로 바당(바다)에 들어가는 해녀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디 저디 막 쑤시당도 바당에 가민 원 아픈 디가 엇어.” 무슨 말인지 짐작이 가세요? ‘여기저기 마구 쑤시다가도 바다에 가면 원 아픈 데가 없어’라는 뜻이라네요. 유네스코가 ‘심각한 소멸 위기 언어’로 지정한 제주 방언의 풍경을 만날 기회입니다.

 

3부 ‘캐어 모으는 말’에서는 정보통신과 이동 수단의 발달로 지역·문화 간 섞임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방언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이 시대에, 방방곡곡 발로 뛰며 캐어 모은 방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기 잡지 <소년>과 <어린이>에 실린 독자들의 지역 방언, 조선어학회의 잡지 <한글>에 독자들이 보내온 방언을 볼 수 있고요, 〈매일신보〉의 ‘각지 사투리 모집’이나 〈동아일보〉의 ‘문화재 도로 찾기 운동’ 등 신문사의 대국민 방언 말모이 운동도 소개합니다.

 

우리 모두는 방언 화자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전시를 통해 방언의 다양성과 가치, 그리고 이를 보전하는 한글의 힘을 발견하고 우리 말글의 미래를 그려보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10월 13일까지 전시한 이후 박물관 보수를 위해 1년간 문을 닫는다고 하니, 이번 주말 시간을 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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