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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용기를 내 도전하기 좋은 여정이라는 것을

몸소 가르쳐주신 어르신들이 있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를 이 배움의 길이
다른 이들에게도 길이 되면 좋겠다.

 

살다 보면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충격이 신선하고 견딜만하며 비전이 담겨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난해 8월 초쯤이었다. 퇴직을 두 달 앞둔 시기, 자격증이 있어야 어디 들어갈 수 있겠다는 마음에 평소 관심을 뒀던 문화체육부 장관 자격증인 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 연수를 받으러 부산의 모 대학 강의실로 향했다. 번듯한 자격증 하나 정도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5월경 필기시험을 칠 때도 필기시험장 앞 주차장에서 주차관리를 하시던 선생님이 시험 감독하러 오셨냐고 물을 때 나는 시험을 치러 왔다고 하니 놀라던 얼굴이 떠올랐고 이걸 내가 괜히 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있었다. 그래서 젊은이들 속에 주책은 아닐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이라 여기저기 부채질을 하면서약 150여 명이 한 강의실에서 만났다. 다소 긴장된 모습이었고 서로 감점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잠이 오면 일어나 뒤에 가서 서서 청강을 하는 등 상당히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고, 다들 표정이 밝아 힘들어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을 앞둔 내가 연수생 구성이 어떤가 하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니 90% 정도가 나보다 젊었고 9% 정도는 비슷하게 보였다. 그런데 머리는 염색하신 것 같은데 몇 분이 연세가 많아 보여 쉬는 시간에 알아보니 80세 가까운 어르신이 세 분이나 계셨다. “어르신 무슨 종목입니까, 댁은 어디신지요,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요?”라고 물었더니 “뭘 그걸 물어 아직 80 안 됐어”라고 하셨다.


나는 그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거제에서 부산까지 차도 없이 주로 버스를 이용해 다니시면서도 늘 밝은 모습으로 며칠간의 연수를 무사히 마치신 그분은 현장실습까지 창원에서 같이 보냈는데, 아마도 그때 자격증을 무난히 획득하셨으리라 생각한다.


작년 퇴직 전 나는 고민을 꽤나 했다. 직업 시작 전 30년 정도의 학창 시절이 첫 직장 시작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면 직업 시작하고 가정을 지키며 지내는 30년은 나와 가정, 주변을 위한 30년이고 이 기간은 60세 이후의 또 다른 생애 기간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늘 생각은 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이고 명확한 길은 설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며칠 동안을 고민하다가 나는 내가 잘하는 일에 보람도 느끼고 약간의 수입도 되는 것이 역시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해조정역할을 하던 일은 이제 이골이 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이다.


노인스포츠 자격증을 획득해 지금은 경로당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귀여움을 많이 받은 나는 그분들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강사 활동은 순조롭다. 반갑게 맞아주는 그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나 또한 그분들을 위해 새롭고 재미있는 자료를 제공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내가 가야 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다행스럽다. 이런 기회를 준 국가와 사회에 감사할 일이다.

 

스포츠지도사 자격증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 건강운동관리사가 되고 싶어졌다. 건강과 체육 관련 자격증 중에서 단연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체육 관련 학사 자격증이 있어야 시험을 칠 수가 있었다.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건강운동관리사 자격증은 따고 싶고, 체육 관련 대학은 다녀야 하겠으나 젊은이들과 함께 일반대학에 가는 것은 학비나 기타 사정이 허락지 않았다. 약 10여 년 전 대학원에 갈 필요가 있어서 나는 문화교양학과를 졸업하고 역사학 관련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를 준비하려다 만만찮은 학비에 준비도 할 겸 약 5년 뒤로 미뤄뒀었다.

 

눈에 확 들어온 건강운동관리사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 방송대 사이트를 열어보니 나를 반기듯 생활체육지도과가 있었다. 6월 중순쯤 바로 지원을 하고 3학년 2학기에 편입했다. 목표가 정해졌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마음으로 눈에 힘이 들어갔고 내 얼굴은 밝아졌다.


얼마 전 아버지 미수연을 준비해 식당에서 모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가족 20여 명이 참석한 장소에서 나는 방송대 생활체육지도과 3학년에 입학했다고 알렸다. 박수를 받았다. 우리 집 막내가 대학 2학년이니 졸업은 내가 먼저 할 것 같다.


어떤 친구들은 “이제 쉬엄쉬엄 쉬지 무슨 공부를 또 하냐, 이 나이에 글이 머리에 들어오냐”라며 걱정스러운 말도 건넨다. 하지만 나는 부산연수원에서 만난 그 어르신들 몇 분을 기억하고 있다. 삶은 용기를 내 도전하기 좋은 여정이라는 것을 몸소 나에게 가르쳐주신 그 어르신들을 안다. 세상은 그런 분들의 선한 영향력으로 점점 좋아지고 나아지는 듯하다.


배움의 여정이 언제 끝이 날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끝날 끝이 없는 이 길을 계속 가고 싶다. 나의 길이 또 다른 이들에게 길이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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