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비프메세나상 심사위원으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이란 뉴웨이브 시네마 창시자 중 한 사람이자,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제작자 중 하나로 꼽히는 마흐말바프 감독은 가베(1996), 순수의 순간(1996), 고요(1998), 칸다하르(2001), 어느 독재자(2014) 등의 작품들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1천 회 이상 소개됐고, 50회 넘게 수상했다. 칸다하르>는 ‘타임지가 뽑은 세계 100대 영화’로, 순수의 순간은 ‘전세계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이 선정한 1990년대를 대표하는 10대 영화’로 꼽혔다.

 

1957년생인 마흐말바프 감독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이란 왕정에 반대하는 지하 조직에 가담해 17세에 구속됐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사형을 면하고 석방된 후 문예지 활동을 하는 등 계속해서 투사의 삶을 살았지만, 혁명 이후 바뀌지 않는 이란의 모습에 좌절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영화다. 고통 받는 이들의 참상을 알리는 영화의 힘을 알게 된 그에게 ‘카메라는 세상을 바꾸는 도구’였다. 이란 검열 당국의 타깃이 돼 2005년 이란을 떠난 그는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인도, 조지아, 이스라엘, 터키 등에서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칸다하르아프간 알파벳 같은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알리는 중요한 자료로 거론되면서 현지 난민들의 삶까지 바꿔놓았으니, 결국 그의 영화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변화를 확장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영화학교를 세웠고, 아내와 딸을 영화감독으로 데뷔시키며 수많은 영화 학도들을 양성하며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영화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심사위원 자격이지만, 「여기 아이들은 같이 놀지 않는다(Here Children Do Not Play Together)」는 영화도 들고 왔다. 마흐말바프 감독은, 작년 10월 7일 하마스 공격 이후 악화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의 성지이자, 긴장과 증오가 일상화된 예루살렘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유대인과 무슬림들은 한 건물에 살면서도 서로 대화조차 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서로를 공격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무슬림과 유대인 사이의 공존과 평화의 해법을 고민한다. 마흐말바프 감독은 무덤의 영토가 된 예루살렘의 분위기와 양쪽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담아내는 한편, 이 도시의 미래가 지금은 같이 놀지 못하는 밝은 표정의 아이들에게 있음을 카메라에 힘있게 담아냈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고통 받는 이들을 찍는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을 부산에서 만났다.

부산=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부산국제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님이시죠. 정확히 몇 번째 방문인지 기억나세요?
이번에는 영국에 있다가 왔는데, 아직도 시차 적응이 안 되네요.(웃음) 한국에는 12, 13번쯤 온 거 같네요.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작년에도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만의 에너지가 있나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화 축제잖아요! 부산국제영화제는 고유의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영화인을 발굴하고 지원해 주목받게 하는 데 뛰어난 역량을 보이고 있죠. ‘아시아의 시네마 허브’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습니다. 또 관객들이 단순히 오락성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진중해서 인상적이죠. 부산국제영화제는 전 세계 문화의 집결지로, 관객에게 문화를 먹이는 역할을 한다고 봐요. 많은 영화제가 위태롭지만, 부국제만은 번성하고 꽃피울 거로 예상합니다.

 

비프메세나 부문 심사위원으로 오셨는데, 심사기준은 뭔가요?
중점적으로 보는 건, 이 영화가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은지, 또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표출하고 있는지죠. 의미와 표현, 스타일을 다 봅니다. 이 영화로 전 세계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도 중요한 지점이죠. 더불어 오리지널리티와 조화성도 함께 봅니다.

심사위원으로 오셨지만, 영화도 한 편 들고 오셨어요. 다큐멘터리 「여기 아이들은 같이 놀지 않는다(Here Children Do Not Play Together)」인데, 제목이 굉장히 직설적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반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둘 사이에는 여러 이슈가 층층치 겹쳐 있어요. 먼저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인 이슈들이 있죠. 또 문화적, 사회적 층위에서 보면 아이들이 다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요. 유대인 아이들은 ‘아우슈비츠를 잊는 순간 공포의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고 가르치죠.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이 땅의 주인은 우리’라고 배워요. 아이들이 자라 청년이 돼도 무슬림과 유대인은 서로 엮이지 않습니다. 사랑하지도 않고 완전히 다르게 분리된 상태로 성장한 거죠. 같은 영토에서 두 개의 종교가 공존하니 정치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문화와 역사가 다르고 정체성이 완전이 다르니 적과의 공존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고 싶었고, 예루살렘으로 떠난 거죠.

 

이번 영화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싶었습니다. 예술가라면 그런 일을 해야죠. 어둠에 비치는 빛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극단주의자들이 반목하고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주류인 일반 사람들은 목소리가 없어요. 어떤 부모가 아이들이 살인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길 바라겠습니까? 두 정부의 극단주의자들이 조장하고 있는 거죠. 작년 부산국제영화에에 왔을 때, 10월 7일에 가자지구에 폭격이 일어났죠. 지금까지 아이들만 1만 4천 명 이상 사망했습니다. 유니세프가 ‘아동에 대한 전쟁’이라고까지 이야기한 이유죠.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는 이미 시작된 거군요.
사실 영화는 작년 10월 7일 이전에 찍고 있었습니다. 10월 7일은, 제게 영화를 빨리 완성해야 한다는 동기를 부여했죠. 그런데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같은 서구사회가 이스라엘을 배후에서 많이 지원하잖아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거냐고 질문했을 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인구의 80%를 전멸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답이 나옵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는데 말이죠.

 

러닝타임이 65분으로 짧아요. 시기도 시기였는데, 예루살렘에서의 촬영이 위험하지는 않았나요?
인터뷰이를 찾는 게 쉽지 않았어요. 이스라엘 정부는 민간인이 인터뷰에 참여하면 벌금이라든가 수감 등의 패널티를 부여했거든요. 제가 찾아낸 팔레스타인인 알리는 19년간 정치범으로 수감됐던 인물이죠. 반대편인 유대인으로는 벤자민을 섭외해서 깊이 있는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가 됐어요. 민주적인 나라에서 전쟁에 대응하는 태세로 전환하면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사회구조로 전환하 거죠. 인터뷰이들도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날 이후 유대인들은 분노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두려움에 떨었으니까요. 예루살렘은 3개 종교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오랜 시간 서로 적대시하고 반목하면서 현재는 무덤의 영토가 돼버리고 말았지만요.

 

영화에서는 알리는 “두 개의 나라를 만들자”는 해결책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서구 세계에서 한 나라만 지원하는 상황에서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해요. 강대국인 미국이 한 나라만 지원하는 걸 보면, 미국 민주주의도 위협받고 있는 게 아닐까요? 한국에서도 몇 년 전 배가 가라앉아서 300명이 사망했죠. 그때 어땠나요? 작년 하마스 폭격 이후 1년 만에 가자지구에서 4만 명이 죽었습니다. 불이 난 곳에서 불을 끄지 않으면 숲 전체를 태울 수 있습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가 결국 상영을 취소한 영화 <개와 사람에 관하여(Of Dogs and Men>(감독 대니 로젠버그)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됩니다. 작년 10월 7일 하마스 폭격 사건 이후, 잃어버린 개를 찾으러 가는 한 소녀의 여정을 따라가는 영화죠.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은 것도 있지만, 참혹한 실상보다 폭격 사태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감독님의 영화와 출발점은 같은 사건인데 시각이 달라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기이한 풍경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셨는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 영화를 보지 못해서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죠. 중립적 입장입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반목 문제에 대해서는, 제 영화를 통해서도 중립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목소리 없는 민간인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었고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한 건물에 네 가구가 사는데,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말도 하지 않고, 계단을 넘어오지도 않아요. 국가적 반목과 긴장이 민간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이 영화의 목적이었죠.

 

감독님에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 철학적, 정치적, 시적인 영화들을 다양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저를 이끄는 힘은 제가 처한 상황이거나, 그 당시의 관심사죠. 그런데 제게 카메라는 무기이기도 합니다. 독재자에 저항하는 무기! 감독은 카메라로, 기자는 글로 세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리는 역할을 하죠. 저는 우리의 역할이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봅니다.

 

제가 이란에서 태어났지만, 그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지구에 살고 있는 한 개인이라는 게 중요하죠. 이 말은, 제가 작년에는 아프가니스탄 관련 영화를 찍었고, 올해는 가자 지구 관련 영화를 찍었는데요. 내년에는 어느 나라의 재난을 조명할지 모르는 겁니다. 저는 관찰자(Observer) 역할을 중시합니다. 관찰자로서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사회의 목소리가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대 언론, 대기업의 측면에 치우치는 것들이 주가 되겠죠.

 

이 영화는 어찌 보면 몇몇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소소하지 않고 웅장하고 원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들이 소용돌이처럼 모인 이곳에 빛을 비춰주고 싶었어요.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이슈는 모든 정치적인 문제의 이유가 되기도 하죠.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 근원이니까요.

 

영화에 제목과 달리 아이들이 많이 안 나오더라고요.(웃음)
진짜 아이들이 골목에서 안 놀아요. 이란만 가도 같이 뛰어노는데, 여기는 학교에 가야 아이들을 찾아볼 수 있어요. 길에 지나가는 모습은 보여도, 이 아이들이 같이 놀지는 않잖아요.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가택 연금된 상황도 봤어요. 창밖으로 이스라엘 군인에게 돌을 던졌다고 해서, 집안에 수갑을 채워서요.

 

그나마 나오는 아이들도 춤만 춥니다. 어떤 의미를 담아 찍은 장면인가요?
전부 팔레스타인 아이들이에요. 이란에서는 히잡을 쓰는데 팔레스타인은 안 써요. 그러니까 이 아이들은 현대화된 겁니다. 보수적인 전통문화로부터 현대화된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는 감독의 첫 독백과 마지막 독백이 수미상관으로 구성됐습니다. “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전쟁에 대한 해결책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를 위해 예루살렘에 왔습니다.(I have come to Jerusalem for a research to find out if there is ever a solution to the war between Israelis and Palestinians.)” 마지막 독백을 첫 독백과 같은 문장으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왜냐면 해결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인 이면의 문제 안에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정체한 상황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30년 넘게 꾸준히 영화를 찍고 계시죠.
제 마음은 영원히 청춘이거든요!(웃음) 전 ‘영화를 위해 죽겠다’라고 말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닙니다. 말씀드렸듯 영화는 제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도구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영화를 도구로 삼는 사회주의자’로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겠네요.

 

영화를 계속 찍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영화를 계속 찍게 하는 힘은, 아이들의 고통을 목격했을 때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촬영했을 때, 아프가니스탄 난민 아이들 700명이 8년 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어요. 난민이니까요. 그 모습을 보고 「아프간 알파벳」(2002)을 찍어 전 세계 관객들에게 울림을 줬습니다. 영화로 얻은 수익금 전액을 아프간 난민 아이들의 교육에 써서, 그 아이들의 절반이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울 수 있었어요. 영화의 힘이란 그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