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부터 90대까지 다니는 온 국민의 대학, 방송대! 그런데 출석수업에서 눈에 띄는 학우들이 있다. 다름 아닌 외국에서 한국으로 와 방송대를 찾은 학우들이다. 이들은 어떤 사연으로 한국에 온 것일까? 또 어떻게 방송대를 알게 됐을까? 방송대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KNOU위클리>가 새로 론칭하는 기획 [이색 신·편입생]에서 이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태어난 나라를 떠나 이역만리 한국에서 장학금까지 받으며 ‘열공’하는 학우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부 자극 팡팡! 애교심은 쑥쑥! 첫 회에서는 경기도 시흥시에서 일하면서 방송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베트남에서 온 정은지·나수정 학우의 사연을 소개한다. 주변의 외국인(현 국적은 한국이어도 무관) 방송대생을 <KNOU위클리>에 알리고 싶다면 jebo@knou.ac.kr 로 제보하면 된다.

시흥=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경기도 시흥시 외국인복지센터에서 만난 정은지(행정3), 나수정(사복4) 학우는 오랜만의 만남에 연신 이야기꽃을 피우며 웃음을 터트렸다. 두 학우 모두 베트남에서는 조부모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다. 나 학우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 ‘경기도 다낭시’라 불리는 다낭에서 30분 거리의 중부지방 도기 ‘꽝 응 아이’ 출신이고, 정 학우는 베트남 성 중 가장 넓은 ‘응에 안’에서 태어나 ‘하이 풍’에서 컸다.

 

정 학우는 중학생 때부터 어머니 식당 일과 아버지 사업을 거들며 학비를 벌어 전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나 학우 역시 부모님 일을 거들며 전문대에서 비즈니스사업을 공부했다. 형제자매가 많아 질풍노도의 사춘기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의사가 꿈이었던 나 학우는 “동생도 많고, 의대 학비도 비싼데 시집 가면 끝인 딸한테 무슨 공부냐”는 분위기에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K-드라마·가요 보며 한국행 꿈 키워
전문대 졸업 후 정 학우는 공장에서 일하다, 아버지 지인의 추천으로 회사에 경리로 입사했다. 나 학우는 소일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두 학우의 눈길을 끈 건 다름 아닌 한국 드라마와 가요였다. 한류 1세대 대표 드라마로 불리는「대장금」부터 베트남은 한국 드라마와 가요에 열광했다. 나 학우는 그중에서도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가을이 너무 예뻤다. 베트남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단풍으로 물든 산들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은 커져만 갔다.

 

공장과 회사를 오가던 정 학우 역시 한국 아이돌 가수의 화려한 무대를 보며 언젠가는 한국에 가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베트남 대졸자의 벌이보다, 한국에서 일하는 베트남인들의 급여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한국행에 대한 열망을 높였다.

 

한국은 나 학우가 먼저 왔다. 한국에는 이미 한국인과 결혼한 외사촌 언니 가족이 살고 있었다. 언니에게 소개받은 한국인과 결혼하면서 한국에 정착했다. 남이섬은 아직이지만, 보고 싶던 단풍은 인천대공원에서 실컷 구경했다. 예쁜 딸도 둘을 낳았는데, 벌써 중학생이 됐다. 정 학우 역시 이웃이 소개해준 한국인을 운명적으로 만나 2011년 한국에 왔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도란도란 살고 있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두 학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한국어 배우기였다. 정 학우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여성인력센터를 통해 한국어를 익혔다. 나 학우는 2015년부터 공장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일했다. 고된 공장에서 2년을 일하다 사무직으로 옮겨야겠다 결심했고, 컴퓨터자격증 등을 따서 2017년 무역회사에 입사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정 학우 역시 화장품·건강식품 장사부터 공장일, 식당일을 거쳐 현재는 외국인노동자 용역사무소에서 일한다.

운명처럼 만난 동문의 편입 권유
한국어 배우랴, 아이 키우랴, 회사 다니랴…. 여느 한국 여성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던 두 학우를 눈여겨본 이들이 있었다. 바로 방송대 동문들이었다! 주 2회 가정방문 해 컴퓨터를 알려주던 선생님은 정 학우에게 자신이 졸업한 방송대 무역학과에 편입하라고 권했다. 방송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직장 상사 역시 나 학우에게 대학 입학을 적극 추천했다. 두 학우는 2021년 3월 나란히 무역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결과는? “대만족!”이라고 두 학우는 입을 모은다. 정 학우는 황희중 교수의「글로벌 스타트업 마케팅」을, 나 학우는 김진환 교수의「무역법규」,「무역결제론」을 베스트 강의로 꼽았다. 두 학우는 “한국 회사들이 베트남에 많이 투자하는 상황에서 무역은 필수가 됐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회사 일에 적용해보기도 하고요, 나중에 장사,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도움이 많이 될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2년 만에 졸업장을 딴 두 학우 중 나 학우는 바로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노령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복지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무역학과에서 학점 4.4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노력한 덕분에 한 번에 편입에 성공했다.

 

나 학우는 “사회복지사 2급을 따면 요양원에서 일하거나, 인력센터도 운영할 수 있고, 1급을 따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웃었다. 유범상 교수의 강의를 가장 좋아한다. 농담도 많지만 도움 되는 이야기가 더 많아서다.

 

졸업 후 1년간 쉬던 정 학우는 나 학우의 끈질긴 권유로 올해 행정학과에 편입했다. 전국연합MT에서 만난 강문희 교수의 “행정은 넓다. 모든 영역이 다 행정과 관련 있다”라는 말을 지침으로 삼아 학점 4.4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문병기 교수의 특강 대면수업「현대정치와 행정」에서 와인의 역사와 마시는 방법을 배웠다고 자랑했다.

 

방송대 졸업하며 자녀에게 멋진 엄마 돼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동영상 강의를 수없이 돌려 보고, 모르는 게 생기면 학교에 전화하고, 멘토 선생님께 과제물 작성 방법을 문의하고, 그래도 안 풀리면 주말에 둘이 머리를 맞대며 의지하면서 보낸 시간이 벌써 3~4년. 여전히 주말에는 센터를 찾아 고급 한국어 과정 수강도 병행하고 있다.

 

정 학우는 행정학과를 졸업하면 방송대의 다른 학과에 또 편입해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끈기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이렇게 공부를 하고 나면 성장하는 게 느껴지고, 훗날 취직에든 창업에든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 학우도 마찬가지다. “들어가긴 쉽지만 졸업하기는 힘들다”는 남편의 말에 ‘그래? 내가 한 번 보여줄게!’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공부가 벌써 두 번째 학과다. 공부하다 보니 자존감도 높아졌고, 두 딸에게 ‘엄마는 외국 출신이지만, 한국에서도 대학 졸업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보여줬다는 자부심도 크다.

 

마지막으로 두 학우가 입을 모았다. “시작이 반이에요. 방송대에 무조건 오세요. 혼자 하면 힘들지만, 같이 하면 힘이 생기잖아요. 방송대에 오니 손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든든해요. 고민하지 말고 지원하세요. 방송대 선생님들 믿고 따라가면 다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