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신념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3월 21일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동시 공개된 영화 「계시록」(감독 연상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작은 개척교회의 ‘성민찬 목사’(류준열) 앞에 전자발찌를 찬 권양래(신민재)가 나타난다. 어린 신도 ‘아영’(김보민)이 실종되면서 성 목사는 권양래의 뒤를 쫓는다. 한편, 5년 전 권양래에게 잃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이 형사(신현빈)는 그의 뒤를 쫓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한다. 「계시록」은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는 목사와,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형사가 각자의 믿음을 좇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연상호 감독은 「송곳」의 최규석 작가와 함께 만화로 먼저 계시록 이야기를 선보인 바 있다. 또한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성도 명부에 집착하지 말라’, ‘척박한 땅에 하나님 말씀을 퍼트리는 반석이 돼라’, ‘당신, 정 목사님 새벽기도 운전만 4년 한 보람이 있다’ 등등 교인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현실적인 대사들이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그래비티」(2013)로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선사했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영화는 한 층 더 촘촘해졌다. “인간은 신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생물이고, 신념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욕망과 신념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그 신념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조작하기도 한다”는 연상호 감독을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계시록」은 어떤 영화인지 소개해 주신다면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의 구원과 파멸에 관한 심리 스릴러 영화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계시록」이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시록」은 제가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 오히려 정확히 이 시대가 잉태한 작품이구나, 하는 걸 요즘 더 느끼고 있습니다. 제 필모그라피의 ‘응축판’ 같은 한 편의 영화라는 생각도 들고요.
처음에는 극장용 영화로 준비한다고 하셨는데, OTT로 최종 낙점하셨네요
「계시록」은 내용 자체가 찬반이 갈릴 수 있는 영화죠. 극장은 매우 민감한 시장이라, 아주 대중적인 작품이 안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당시 시장 투자 상황이 너무 심하게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투자시스템이 경직화된다고 하죠. 그래서 약간은 실험적일 수 있는 「계시록」을 극장 프로젝트로 시도하는 게 부담스럽긴 했죠. 게다가 넷플릭스는 「계시록」과 동 시기에 「폭싹 속았수다」와 같은 콘텐츠를 함께 제공하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플랫폼이 되고자 하는 ‘니즈’가 왠지 있는 것 같기도 해서요.(웃음)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는 현상이 있어요. 형태가 없거나 모호한 시각적 자극을 통해 명확하고 식별할 수 있는 패턴을 추출하려는 심리를 뜻하는 용어인데요. 이걸 소재로 한번 이야기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욕망을 투영해서 의미 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3명의 캐릭터를 만들어 이야기를 구성했고요.
「지옥」 시리즈 등 전작에서도 믿음을 소재로 사용한 적이 있죠. 이번 「계시록」에서도 주인공 직업을 ‘목사’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믿음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인물이 그 믿음을 좇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엇나가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 되게 중요한 지점이어서,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목사라는 직업이 선택된 것 같습니다.
류준열 배우와 첫 작업이었는데, 질문이 정말 많았다고요
첫 미팅 때 “제가 질문이 좀 많은 편인데 괜찮으실까요?”라고 묻더라고요. 현장에서 정말 구체적으로 질문을 해요. 고민이 드러나는 질문이니 버릴 것 없이 진지하게 답했습니다. 어찌 보면 류준열이라는 배우는 운동이랑 영화만 생각하는 배우 같아요. 걸음걸이처럼 작은 것부터 이렇게 연기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심을 끊임없이 해요. 「계시록」 후반부에 폐호텔 계단에서 넘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넘어지는 모양새만 가지고도 엄청나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에너지는 물론 물입도도 굉장히 좋아요. 작품을 해석해 나가는 방향성도 좋고요. 그렇게 함께 영화의 톤을 잡아갔습니다.
이연희 형사를 맡은 신현빈 배우와는 어떠셨어요? 좀 유약해 보이는 캐릭터로 느껴지더라고요
이 캐릭터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직업적으로 형사라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동생을 잃은 죄책감,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라는 것이 중요한가, 두 가지를 놓고 고민한 거죠. 사실 형사라는 건 표면적인 직업일 뿐이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건, 이 형사라는 캐릭터가 죄책감에 짓눌려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굉장히 불안한 상태라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범인을 때려잡는 여자 형사라고 하면 피지컬이 캐스팅에 중요 고려 요소가 될 텐데, 이 영화에서 형사가 극복할 건 트라우마와 죄책감이었으니, 그걸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던 거죠. 제가 시나리오를 썼던 드라마 「괴이」에서 신현빈 배우가 아이를 잃은 고고학자 역할을 맡았었는데, 그게 인상적이어서 신현빈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작품마다 여배우들에게서 새로운 면을 끌어내는 편이신데요. 이번 「계시록」에서 신현빈 배우에게서 끌어내고 싶던 이미지가 있었나요
신현빈 배우가 본인 스스로 ‘박복한 인물 전문 배우’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실제 만나보니 너무 밝은 거예요. 그런데 얼굴에서 주는 박복미가 좀 있긴 해서 그것도 좋았어요(웃음). 이번 영화에서 초·중반부까지는 뭔가에 짓눌려서 고요하게 그걸 따라가는 역할인데, 후반부에서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들, 특히 폐호텔 씬에서의 감정들은 정말 신현빈 배우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창성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하면서 「계시록」이 월드클래스 2인의 만남이 됐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던가요?
배우 이야기부터 좋은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줬어요. 특히 촬영 기법도 하나하나 다 이야기해 줘서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죠. 구체적으로 폐호텔 씬을 이야기하면요. 촬영하다 보면 카메라의 의지가 보이잖아요? 무슨 말이냐면 관객이 카메라라는 존재를 느낀다는 거죠. 그런데 폐호텔 씬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카메라의 의지 없이 흘러가듯 찍혀서 좋았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사실 현장에서 그 부분이 정말 드러나게 하지 말자고 촬영팀과 집중해서 찍었는데, 그걸 알아봐 주더라고요.
전작 「부산행」, 「반도」, 「기생충」 등과 달리 CG 사용을 거의 최소화했다고요. 특별히 이유가 있었나요
지금까지 판타지적 요소들이 많은 작품들을 했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번에는 최대한 사실적으로 작품을 찍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리얼하게요. 이번 영화에서 비 내리는 장면에 살수차를 사용한 건 거의 없고요. 다 진짜 비가 내릴 때 촬영했습니다. 일기예보를 확인해 가면서 비가 내리는 날을 촬영일로 잡을 정도로요.
차기작은 뭐로 준비 중이세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하게는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독립영화 식으로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계시록」 작업을 하면서 떠오른 아이디어인데, 배우들도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신현빈 배우랑 같이할 예정입니다. 독립영화니, 알음알음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초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인데요
영화를 오래 하기 위해서는 감독이 추구하는 바가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천만 영화가 목표인 사람도 있겠고,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는 걸 목표로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그런 욕망은 굉장히 약한 사람이다 보니, 물리적으로 그런 욕망을 비틀 수 있는 계기를 많이 마련해줘야 영화 창작자로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할까요?(웃음) 지금까지 CG를 많이 쓰는 영화를 했으면, 올해는 좀 덜 쓰는 영화를 해보자, 그렇게 일을 벌여뒀으면 또 해야 하니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 거고요. 그런 계기가 없으면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히는 거 같아요. 올해 나오는 작품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몇 년 전부터 했습니다.
창작자로 대중, 평단에 고루 인정받고 있는데, 아이디어 고갈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아이디어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해요. 저는 몇 년 전보다 현장에서나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편해졌어요. 예를 들면 「기생수: 더 그레이」 같은 작품들은 원작가에 대한 팬심이 있어서, 제가 좋아하는 작품의 스핀오프를 만든다고 생각하니 편했습니다. 그런 점들이 쌓이면 현장, 작업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씩 바뀌게 만들죠. 올해는 메시지가 강한 작품을 해보자고 결심하면 그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모든 창작자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닐 텐데요. 그렇게 마음먹게 만드는 원동력 같은 게 있을까요
요즘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제가 있는 틀 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요. 극장용 영화를 찍다가 넷플릭스로 오게 된 것도 그런 틀을 깨기 위해서였어요. 이제 또 독립영화 씬으로 넘어가는 것도 그런 틀을 벗어나고 싶은 거죠. 저는 유튜버하고 막 경쟁하고 싶어요. 제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인데, 같이 유튜브를 보면 그렇게 재밌어요. 싸게 만들었는데, 어쩌면 저렇게 재밌지? 나도 좀 싸게 못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는 여러 명이 만드니 경쟁의식이 생기는 거죠.(웃음) 아무에게도 손 벌리지 말고 나도 유튜버처럼 만들어볼까 하는, 그런 시도들을 해보는 겁니다.
‘K-장르의 아버지’라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웃음)
물론 제가 집에 가면 아버지이긴 합니다만.(웃음) 「돼지의 왕」(2011)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갈 때만 해도 젊은 느낌이었는데, 영화를 계속 찍다 보니 아버지 나이가 됐네요. 인생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할 시기인 40대를 정신없이 보내버렸네요.
거의 쉼 없이 작품을 하셨어요. 40대라고 해서 그런 것만은 아닐 텐데요
당연히 저도 독립 애니메이션 씬에서는 그런 선택을 받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죠. 그러니 영화 기회가 생겼을 때 그게 얼마나 귀한 건지도 알았고요. 언젠가는 물거품처럼 없어질 수 있는 거라서요. 그래서 작품은 할 수 있는 시기에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 같아요. 예전에 독립 애니메이션을 하다가 「부산행」(2016)이 흥행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 흥행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고민했죠. 재현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까요. 그런데 「부산행」 정도의 작품이 흥행한다는 건, 창작자 개인 능력이나 운만으로는 안 되는 거 같아요. 사회적 분위기, 제작 시스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건데, 그걸 한 개인으로 계산해서 제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죠. 그래서 「계시록」 내용처럼 생각을 바꿨어요. 여하튼 저는 저대로 여러 작업을 하는 거고, 그게 시대와 대중의 니즈와 맞아떨어지면 대중적 성공이 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요. 결과를 예측할 수 없으니, 기회가 허락하는 선에서는 계속해서 작업을 하는 거죠.
‘연니버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독창적인 세계관을 꾸준히 작품에 선보이셨죠. 오랜 기간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저는 1990년대 한국영화,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면서 영화를 만들게 됐으니, 제 작품들은 그 자장 안에 있는 건 확실한 거 같습니다. 근데 웬만하면 제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사실 그렇게 할 수 있는 계기를 억지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할 정도죠. 넷플릭스 다음 작품을 일본인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하는 것도 그런 것들의 일환이라고 할까요? 저는 제 틀 안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연니버스라는 성을 공고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짜 성도 아니잖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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