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하게 정돈된 책상에서 공부할 때라도,

편리하고 쉽게 꺼내 먹을 수 있도록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간식거리를 즐기면서도 누군지 모를 자원봉사자에게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저 우리는 쉽게 잊힐 메마른 우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경기지역 영어영문학과 학생회는 지난 11월 15일부터 이틀간 유서 깊은 여주 신륵사 주변에서 임원과 동문 17명이 모인 가운데 ‘가을 MT 겸 영문인의 밤’ 행사를 가졌다.


매년 회장 이·취임식을 겸해서 서로를 격려하고 즐거움을 나누며 에너지 충전의 MT로 치루는 축제였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왜냐하면, 후임 회장을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학기 동안 차기 임원을 점찍어 공들여 왔지만 부득이한 개인 사정으로 확정할 수 없게 되어 반쪽짜리 축제가 된 느낌이다. 참 난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현재도 학생회 임원과 회장 등을 위한 장학생의 특전이 있긴 하지만, 만약 거기에 더해 실질적 학점의 혜택이 별도로 주어진다 해도 개인적 사정을 들어 한사코 임원직을 사양할까? 너무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 별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임원 봉사도 학습의 한 부분으로 인정해 실질적(5학점 이상) 봉사 학점이 주어진다면, 반복되는 ‘구인난 속의 임원 선출’이 아닌 ‘적정 성적을 겸비한 임원 출마’로 당선자를 선택할 날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학교 존속의 절대 구성원의 자격으로 모든 것을 다 누리면서 정작 스스로 나서서 맡아야 할 해당 학과의 임원과 회장 수임에는 어째서 소극적이고 매우 인색한 것인지, 매년 임원 선출 때마다 ‘하네 못하네’ 우여곡절이 반복되는 공동체 의식의 절대 빈곤을 실감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학생회 임원 봉사는 학교의 절대적 구성원으로서 의무에 준하는 최소한의 보답이라 할 수 있겠다. 매 학기마다 선출돼 봉사하는 임원들은, 뭇 학우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학습 환경을 일구는 자원봉사자로서 제반 학사 행정을 안내하고 학우들의 학과 룸이나 강의실 사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보조한다. 또는 여러 학우들이 참여하는 각종 스터디의 지속적인 활성화를 위해서도 임원들은 보이지 않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학교라는 지성 공동체는 기름만 넣으면 그냥 굴러가는 자동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의 각종 행사를 논의하고 실행하기 위해 계절마다 몇백 킬로 원거리 참석도 마다하지 않고 즐거움으로 참여한다. 어느 누가 소소한 봉사라고 평가할지는 몰라도, 그것이야말로 우리 대학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본질적 이타 행위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평생의 즐거움으로 가슴에 남을 아름다운 행위를 왜 무심코 지나치는지, 가슴에 오래 남을 임원으로 혹은 회장으로의 영광을 왜 선택하지 못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여전히 ‘사람은 많아도 사람이 없는’ 학교 밖 세상처럼 ‘인적자원의 절대 빈곤의 현상’이 학교에서도 피할 수 없는 난제가 되고 만 것 같다. 그러나 더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세상과 다르게 우리에겐 ‘자원봉사 인적자원 절대 빈곤’이 꼭 맞는 말인 것 같다. 얼마나 임원 인력난에 마음이 쓰였으면, 우선은 학우들을 모이게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우리 경기지역 영문학과 만이라도 2~3개월에 한 번씩 학교에 지발적으로 모이자는 ‘홈 커밍 데이’를 학기 초에 구상해 보았지만 결국 실행엔 옮기지는 못했다. 


우리는 서너 해 동안 얼굴을 마주했음에도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지, 그것 또한 마음의 궁금증으로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물론 우리 대학의 특성상 자기 주도의 고독한 학습 일정에 특화돼 나도 모르게 옆 사람을 돌아볼 겨를 없이 학업과 일상에만 쫓겨서 그런 것일까? 주인이면서도 잠시 다녀가는 외부 방문자의 신분처럼 학교를 찾아 스터디 참여나 학교를 통한 모든 편리는 빠짐없이 즐기고 돌아 가면서 정작 임원 봉사직에는 적극적이지 못한 현실이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말끔하게 정돈된 책상에서 공부할 때라도, 편리하고 쉽게 꺼내 먹을 수 있도록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간식거리를 즐기면서도 누군지 모를 자원봉사자에게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저 우리는 쉽게 잊힐 메마른 우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봉사자들의 수고로움에 전화 한 통화라도, 따뜻한 커피 한잔이라도 선뜻 건넬 마음이 여기저기서 생겨나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한 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면, 그 결론은 임원이 아니었던 내가 스스로 임원이 되어 봉사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대학 생활의 임원 봉사는 메타세쿼이아 우거진 진리의 동산에 한 그루 추억을 심는 가슴 벅찬 행위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영광된 특권을 차지하려 우르르 몰려드는 그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