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4월 20일에 진행된 ‘DMZ 접경지역 평화의 길을 가다’ 제2기 김포·강화 여정에 참여했다. 필자는 부산에 거주하고 있지만, 열정과 도전으로 DMZ 평화의 길 마지막 탐방까지 발 도장을 찍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참가를 결정했다.


이번 DMZ 탐방에 같이 나선 박일숙 동문을 부산역에서 만나 첫 기차에 올랐다. DMZ 탐방에 처음 참여하는 박 동문은 곧 다가올 이색적인 체험에 들뜬 아이처럼 보였다. 그에게 들려주고자 지난 제1기 철원 답사 경험을 떠올려 보았다.


남경우 건국대 전임연구원의 꼼꼼한 해설, 평소 접근하기 어렵고 무서운 이미지로만 기억하던 우리의 아픈 역사에 가까이 서 보았던 용기, 그 용기 덕분에 새로이 넓힌 시야로 역사의 가려진 이면을 재해석해 볼 수 있었던 두루 알찬 프로그램이었다고 박일숙 동문에게 말해줬다.


이번 제2기 강화 탐방에서는 두 그루의 나무가 인상 깊었다. 먼저 초지진에서 보았던, 약 400년 수령(樹齡)의 파편 박힌 소나무다. 마치 상이군인처럼 전쟁의 상처와 흔적을 새긴 채 초지돈대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소나무는, 지금처럼 그때도 푸르고 묵묵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감동을 안긴 또 한 그루의 나무는 마지막 탐방지인 연미정에서 본 수령 500년인 느티나무다. 2019년 태풍 링링에 쓰러져 뿌리와 밑동만 남은 처참함에 안타까운 마음이 컸는데, 새봄을 맞아 연한 새순이 파릇파릇 제법 무성해 감동과 희망,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했다.


문득 제1기 탐방지 철원에서 보았던 땅굴의 구석진 곳에 피어난 잡초가 떠올랐다. 되풀이되는 험난한 고비마다 맹렬히 저항하며 일어선 우리의 역사가 오버랩됐다.


이번 강화 탐방은 여정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고려 시대부터 잦은 외침으로 민초의 삶이 피투성이가 된 곳이어서 더욱 그랬다. 변변치 못한 무기로 침략 세력에 대항하다 풀잎처럼 스러져 간 숱한 조선군과 무명 순국자들이 말을 건네왔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덧없는 죽음. ‘고귀한 희생’이라는 다섯 글자에 묻힌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피눈물과 통곡 소리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제1기에 이은 제2기 탐방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비명에 간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눈물을 오늘, 살아남은 자로서 잊지 말아야 한다는 책무감이었다.


탐방 시작부터 가랑비가 날리기 시작한 탓에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육안으로 북한의 예성강 주변을 제대로 조망하지 못한 우리 일행들은 적잖이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전망대 앞은 한강, 임진강, 예성강 세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 유유히 흐르고 있건만, 북한을 지척에 두고도 새들만이 자유롭게 남북을 왕래하고 있는 현실에 우리들은 만감이 교차했다.


이제 변란이 있을 때마다 요긴한 역할을 포용했던 강화와, 이곳에 깊이 잠든 외로운 의인들과 작별해야 하는 시간이다. 봄날 푸른 싱그러움이 주는 고즈넉한 풍광은 덤, 강화 탐방이 내 인생의 한 페이지로 채워진 뜻깊은 하루였다.


주민들의 평화로운 일상과 시시각각 묘한 긴장감이 공존하는 DMZ 접경지역. 제2기 탐방을 무사히 마친 우리 일행은, 제3기 탐방과의 만남을 기약하는 또 다른 희망을 공유한 채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