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모국어로 된 노벨문학상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지난 10월 10일 노벨상위원회는 한국의 작가 한강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KNOU위클리〉가 2019년 3월 창간과 함께 구상했던 우리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현대명저 106’ 한국문학편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선정된 바 있다(해당 작품 해제는 위클리 제24호19805월 광주에 대한 기억과 고통의 글쓰기」편을 참고할 수 있다. https://weekly.knou.ac.kr/articles/view.do?artcUn=40). 과연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작가회의 정책위원장, 평론분과 위원장을 지낸 오창은 문학평론가의 글을 통해 그 의미를 짚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21세기 한국 신(新)문예부흥’의 도화선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제 한국 사회는 문화적 콤플렉스 없이,

새로운 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새로운 세대의 활약 속에,

주류적 관점을 전복하고 대안적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문학, 인문학을 왜 해야 하는지 의심받는 시대입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분위기가 바뀐 것 같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그간 한국문학에서 문단 내 성폭행, 표절 같은 나쁜 일이 많았어요. 나쁜 사건들은 실제보다 더 크게 증폭되잖아요. 한국문학은 대중들에게 안 좋은 인상으로 덧칠됐어요.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국문학에 대하는 분위기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대도 없고, 국민적 관심도 없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놀라운 깜짝 수상이었어요. 한국에서 독서문화가 활짝 피어나는 놀랄 만한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10월 21일 월요일, 국어국문학과 4학년 전공과목「문학비평의 이론과 실제」수업 시간에 조촐한 자축 행사를 진행했다. 토론에 참여한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한 학생은 “한강 작가님의 ‘찐팬’인데, 마치 내가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라고 했고, 다른 학생은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엄마랑 마구 소리 지르며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라고 했다. 국문학과 학생다운 논평도 있었다. 한 학생은 “한글날 다음 날의 수상 발표라 더 뜻깊었다”라고 했고, 또 한 학생은 “한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여서 기쁨 두배”였다고도 했다.
학생들의 이야기 중에서, “국문학 전공자로서 그간 알게 모르게 위축돼 있었는데, 조금은 자신감 있게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짠한 마음이 내면에서 일렁이기도 했다. ‘그간 국문학과 학생들이 위축되어 있었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고, 한강 작가의 수상이 ‘국문과 학생들에게도 큰 응원이 되고 있구나’라는 훈훈한 기분도 들었다.

콤플렉스를 제거한 한국문학
처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때가 10월 10일 목요일 저녁 8시 12분쯤이었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속보] 소설가 한강, 한(韓) 첫 노벨문학상 수상”이 전송돼 왔다. 그 소식은 소설가·시인·평론가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서부터 전해졌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세상이 정지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온몸의 감각이 “나는 아직 이토록 충격적인 소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라며 부르짖는 듯했다. 단톡방의 작가들도 “아 정말?” “와! 대단” “신기해요”라며 기쁨에 겨워했다.
이제는 조금 더 차분하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에 대해 따져 볼 때다. 과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사회와 문학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첫째, 드디어 한국문학은 콤플렉스 없이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게 됐다. 콤플렉스는 실상을 왜곡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없는 한국문학’이라는 말은 한국문학 관계자들을 위축시키고 주눅이 들게 했다.
이웃 일본은 두 명의 일본 국적 수상자(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를 배출했고, 중국에서도 한 명의 중국 국적 수상자(모옌)가 나왔다. 이러한 비교 때문에, 노벨문학상 수상자 배출은 한국문학의 숙원 사업인 것처럼 이야기됐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학진흥정책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배출’을 목표로 설정하곤 했다. 매년 10월이 되면 ‘올해도 역시 한국은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구나’라고 한탄이 터져 나오곤 했다.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야만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에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해 한국문학을 왜곡시키는 ‘노벨문학상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콤플렉스 없는 문학, 국가와 국적을 따지지 않고 문학적 상상력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세계가 열린 것이다.

새로운 감수성으로 무장한 세대를 위한 길트기
둘째,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이 문학적 힘을 얻게 됐다. 지금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한국문학의 동시대적 전통은 1970~1990년대에 형성됐다. 문학제도와 미학적 세계관도 그 시대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그 이전에는 황순원, 김동리, 박경리, 최인훈, 이호철 등의 작품이 해외에 번역 소개되면서,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거론되곤 했다.
한국에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북한에서도 월북작가인 이기영의『두만강』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한 일이 있었다. 현재 생존해 있는 작가로는 고은, 황석영, 김혜순 등이 유력 후보인 것처럼 이야기되곤 했다.
하지만, 1970년대생인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중심축이 확연히 젊은 세대로 이동하게 됐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젊은 세대 작가들에게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한강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불편한 존재, 주류적 관점을 위태롭게 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한반도 평화 위기에 대해 발언할 것이고, 소수자의 위치에서 주류사회가 당연시하는 것에 대해 문학적으로 계속 문제제기를 할 것이다.
한강의 미학적 기반은 ‘여린 생명에 대한 연민’, ‘죽은 자들을 그림으로써 산 자들의 취약성 드러내기’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은 문학적 상징권력을 가진 존재로, 이제까지와는 다른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한강의 작품과 발언과 활동은 한국 사회가 당연시하는 ‘경쟁 위주의 자본주의적 생명 착취 시스템’과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 사회는 한강이라는 미학적 존재가 문학으로, 예민한 생명의 감수성으로 제기하는 ‘근본적 문제제기’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의 주류사회에게는 위기일 수 있으나, 소수적 세계관을 가진 이들에게 한강은 ‘대안적 세계’를 위한 훌륭한 후견인일 수 있다.

21세기 신문예부흥을 상상하며
노벨문학상은 1901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Sully Prudhomme)이 첫 수상자가 된 이후 유럽문학계의 권위 있는 상이 됐다.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권위를 넓혀 나갔다. 유럽 중심의 세계문학은 개혁의 대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 여성 작가 한강의 수상은 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여전히 유럽적 세계관이 영향력을 행사하겠지만, 문학 영역에서 유럽적 미학은 낡아져가고 있다.
한반도에서 노벨문학상에 관한 첫 보도는〈동아일보〉1920년 8월 16일자였다. 그해의 수상자로 노르웨이 시인 크누트 함순(Knut Hamsun)이 선정됐다는 기사였다. 그 후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소식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선망의 대상이 되어 관습적으로 전해졌다. 이제 그 모든 이야기가 과거 속 기록이 됐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근대문학 110여 년에서도 일대 사건이다.
문학이 한국 사회 전체 구성원들에게 이토록 기쁨을 준 적이 과거에는 없었다. 한국문학이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이토록 끌어들인 적도 과거에는 없었다. 춘원 이광수의 『무정』(1917)은 그 시대 젊은이들을 열광시켰으나, 우리 문학 초창기의 중요한 성과일 뿐이다.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1919)를 김동인·주요한·전영택·김환·최승만이 출판했을 때, 조선문학은 비로소 하나의 근대적 실체가 되어 갔다.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은 100여 년 동안 한국인에게 깊은 서정을 선물해 주었다. 한국 근대문학의 역사는 한강으로 인해 하나의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21세기 한국 신(新)문예부흥’의 도화선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제 한국 사회는 문화적 콤플렉스 없이, 새로운 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새로운 세대의 활약 속에, 주류적 관점을 전복하고 대안적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여기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깊이 읽는 인문학적 독서문화운동이 활발해져야 한다.
한강의 작품이 100만 부 팔리는 것 못지않게 작가 100명의 책이 1만 부씩 팔리고, 이 책들을 독자들이 즐겁게 읽는 세계가 어떻게 가능할지를 상상해 본다. 미래의 역사에 ‘21세기 신문예부흥’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시작됐다고 기록되는 대목을 읽는 나를 상상해보면, 저절로 얼굴에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나는 듯하다.

 

2002년〈경향신문〉신춘문예 평론에 당선돼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작가회의 정책위원장을 지냈다. 저서로는『비평의 모험』,『세계의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공저) 등이 있다. 중앙대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및 교양대학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