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풍」에서 60년 '찐친' 우정을 자랑하는 나문희 배우와 김영옥 배우.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소풍」(감독 김용균)이 2월 7일 개봉해 설 연휴 극장가를 감동으로 물들이고 있다. 절친이자 사돈 지간인 두 친구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이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는 이야기다. 여기에 고향을 지키는 친구 태호 역은 여전히 ‘핸섬함’을 자랑하는 박근형 배우가 맡았다. 실제로도 오랜 우정을 자랑하는 세 배우의 연기경력만 합쳐도 195년이니, 관객은 그저 극장 의자에 몸을 맡긴 채 ‘시니어벤져스’[시니어(senior)+어벤져스(Avengers)]’의 연기만 감상하면 된다.
「소풍」은 얼마 전 양가 부모님을 떠나보낸 김용균 감독의 경험이 녹아 있는 영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을 것인지 터부시하는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마음으로 찍었다. 영화 촬영 직후 남편을 떠나보낸 나문희 배우의 안타까운 사연은, 이 영화의 가치를 알아본 국민가수 임영웅에게 전달됐다. 콘서트장을 찾은 나문희 배우의 사연을 임영웅 가수가 읽으며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노래로 위로했다. 「소풍」의 가치를 알아본 방송대 출신 나태주 시인이 직접 영화 제목 ‘소풍’의 손글씨를 썼고, 「하늘창문」이라는 시도 즉석에서 지어 헌정했다.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찐친’ 나문희 배우와 김영옥 배우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연기 절정기이자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두 친구 배우는 입을 모아 “자신을 위해 살고, 남으면 놓고 가면 된다”고 조언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영화 「소풍」포스터.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하늘창문」 나태주 시인
하늘창문 열고
여기 좀 보아요
거기는 잘 있나요?
여기는 아직이에요
이제는 아프지말기에요
모든 작품에 의미가 있었겠지만, 이번 영화는 더욱 특별했을 것 같습니다.
김영옥 60년 넘는 세월을 함께 한 동료들과 이 작품을 맞이해서 의미가 깊죠. TV 드라마에서 ‘곁두리’(일꾼들이 끼니 외에 먹는 새참, 여기서는 조연을 의미) 역할들로 자주 만났는데, 여기서는 다 같이 주인공으로 만났네요. 박근형 씨가 좀 말이 많아서….(웃음) 그래도 영화를 찍으면서 밥도 같이 먹고, 추억이 될 시간도 많이 생겼네요. 물 흐르듯 흘러가는 연기를 한 것 같아요.
영화가 나문희 배우 팬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요?
나문희 한 팬이 저를 주인공으로 쓴 짧은 시나리오를 보내줬어요. 아들이 바라 본 엄마 이야기였죠. 좋기는 한데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에, 제 매니저에게 좀 더 다듬어보라고 건냈습니다. 매니저가 저랑 20년 넘게 일하고 있어서 그런지 영화 보는 눈이 있거든요.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던 매니저 부인이 이 이야기를 80대 당사자들의 이야기로 바꾸고, 요양원 등의 장치를 삽입하면서 지금 시나리오로 완성됐어요. 여기에 「와니와 준하」로 감성 넘치는 김용균 감독님이 합류하면서 좋은 작품이 나오겠다 싶었죠. ‘한번 미쳐보자!’ 하고 남해로 갔습니다.
「소풍」스틸컷.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김용균 감독님 이야기로는 거의 모든 씬이 두 번 만에 ‘OK’가 났다고요.
김영옥 우리네 이야기를 하는 거라 좋으면서도, 영화는 감독님이 책임지는 거니까 어떻게 나올까 내심 걱정도 했죠. 그런데 김용균 감독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비교적 물 흐르듯 내버려 뒀어요. 말도 얼마나 이쁘게 하는지.(웃음)
나문희 그냥 카메라가 앞에 있었을 뿐이지, 우리는 우리네 삶을 대사로 이야기한 것밖에 없을 정도예요. 금순이랑 은심이가 싸우는 장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어요. 그냥 싸우는 모습을 카메라가 담는 것처럼요. 다만, 제가 우는 장면이 참 많았는데, 나중에 보니 많이 잘렸더라고요.(웃음). 현장에서 감독님께 뭐라 할 수는 없어서, 차에서 전화해 뭐라 했더니 “이미 선생님들 감정이 거기까지 찼고, 그다음은 관객에게 넘기면 돼요”라고 하더라고요. 아주 깍쟁이에요.(웃음)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나, 기억에 나는 장면이 있다면요?
김영옥 남해 집에서 몸을 가누지 못해서 ‘아이고, 아이고, 이러다 싸면 어떡하냐’라고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네요. 그 표현만 얼굴로 잘해주면 되는 건데, 이 나이가 되니 경험으로 많이 알아서 자동발생적으로 된 거 같아요.(웃음) 요즘 젊은 배우들은 ‘리얼’만 강조하는데, 그래도 감정이 전달되려면 진심이 있어야 해요. 그거 없으면 관객들이 딱 알아봐요. 저는 당신도 가진게 없으면서도 늘 베푸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연기를 해요. 그래야 관객이 공감해주거든요.
나문희 하나하나 기억에 남지 않는 장면이 없죠. 저희 나이인 노년을 다루니 감정이입도 많이 됐고요. 김영옥 배우가 말한 방에서 기저귀 채우는 씬이 저도 기억에 남아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아픈지 몰랐다는 게 참 눈물 나더라고요. 요즘은 자식들도 다 부모와 함께 살지 않고 떨어져 살잖아요. 세상이 이렇게 변하긴 했지만, 참 놀랍기도 하고, 착찹하기도 하고….
영화 결말에서 다소 관객들이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영옥 영화에서는 은심이랑 금순이가 그런 상황에 부닥쳤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봐요. 현실에서 올곧은 부모라면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 자식 먼저 생각하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연명치료는 남은 자식들에게 치명적 불행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주변에 아이가 사고가 나서 6~7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지인이 있어요. 코로 영양분을 넣고…. 엄마야 아이를 사랑하니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도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잖아요. 꼭 명심하세요!
나문희 우리 나이가 돼 보면 살고 죽는 게 그렇게 큰 거 같진 않아요. 살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지만, 혹시 내게 어떤 사정이 닥친다면 그것 또한 과감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죠. 남편이 아픈 걸 봤잖아요. 그렇게 건강하던 사람이 어느 날 등산길에 쓰러져서 7개월을 병원에 있다 갔죠. 내가 남편 속으로 대신 들어갈 수는 없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은 듭니다.
「소풍」스틸컷.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두 분이 임영웅 가수 콘서트장에 간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나문희 저 임영웅씨 찐팬이잖아요.(웃음) 누가 표를 주길래 간 거예요. 마침 「모래 알갱이」도 우리 영화에 주고 했으니 간 거죠. 거기 편지 쓰는 코너가 있어서 썼는데, 다행히 내 사연이 채택된 거지 뭐예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불러주는데, 어찌나 내 이야기 같던지…. 아, 이것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에는 꼭 필요하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니까요. 나보다 훨씬 공부 많이 한 사람들도 와서 임영웅 씨한테 미쳐 있어요. 임영웅씨의 세계는 달라요. 여러분들도 가면 그렇게 될 거야.(웃음)
두 분의 연기는 그야말로 물흐르듯 자연스러워서 ‘연기신’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듭니다. 비결이 뭔가요?
김영옥 그렇게 봐 주면 고맙긴 하죠. 그런데 나나 나문희 씨나 사실 데뷔하고 TV, 영화에서 큰 주목을 받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래도 전에 라디오에서 외화 더빙을 엄청 했는데, 그때 연기를 많이 배웠어요. 나랑 나문희 씨 둘이서 거의 모든 주연을 꿰찼을 정도니까요.
나문희 어렸을 때는 배가 고팠죠. ‘일용엄니’ 역할 하면서 돈 벌어야겠다는 생각이었고. 김영옥 씨가 말한 것처럼 외화 더빙을 하면서죠. 마릴린 먼로, 글로리아 스완슨 같은 배우들 더빙을 하면서 잘 한다는 소리를 좀 들은 거 같아요. 마흔 넘어서는 나한네 ‘요술봉’이 생긴 거 같아요. ‘뾰로롱’ 하면 내 안에서 캐릭터가 ‘툭’하고 튀어나오는.(웃음)
두 분 연기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김영옥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내 연기의 원동력은 돈’이라고 했었는데.(웃음) 물론 돈이 힘이 되지만, 건강이 최고입니다. 올해로 제가 86세, 결혼 63주년인데요. 분에 넘치는 건 안했던 거 같아요. 술, 담배는 안 하려고 노력했고요. 그런데 요즘 나이가 드니 그렇게 독주가 좋아요? 고량주나 소주 빨간 뚜껑?(웃음) 많이는 못 마시는 체질인데, 한 잔 마시면 기분 좋아서 더 달라고 하니 손주가 말리죠.
영화 「소풍」은 80대들의 이야기긴 하나, 비단 80대에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젊은 관객들에게, 아니면 인생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김영옥 내가 그럴 자격이 있나…. 음, 내 큰 결심 중 하나가 이혼 안 하기로 한 건데, 여기 다 들어 있어요. 이혼하는 사람이 용단을 내린 거 같지만, 끝까지 사는 사람이 더 큰 용기를 낸 거예요. 물론 피치못할 상황으로 이혼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요즘 젊은 친구들 보면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는다고들 해요. 예전에 해외여행을 갔더니 젊은 부부가 애 둘을 업고,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다니는 거예요. 거기에 얼마나 충만한 행복이 있어요? 애들이 기억을 못 한다 해도, 인생은 그렇게 남들 사는 것처럼 다 해보면서 사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할 수 있을 때 저축 많이 해서, 좋은 곳에 여행도 많이 다니며 즐기세요!(웃음)
나문희 나를 위해 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저는 마음 운동과 몸 운동으로 구분해서 실천하는데요. 기도하거나 요가 하는 시간은 마음 운동을 하는 시간이죠.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오후에 집에 들어가서 자전거를 타며 밖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기도 하고요. 몸 운동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하는 거죠. 남편이 요양원에 있을 때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어요. 그런데 내가 빨리 못 타니까 버스기사가 뭐라고 하길래 째려봤지.(웃음) 노인들이 천천히 버스 타도 기다릴 줄 아는 넉넉한, 편안한 마음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아프다고 무조건 요양원에 보낼 것이 아니라, 진짜 아픈 사람만 요양원 가야 하는 거잖아요.
「소풍」스틸컷.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혹시 노년기를 맞은 분들께 하고 싶은 말도 있으세요?
나문희 나도 굶어봤고, 알뜰하게 살아봤죠. 그런데 「소풍」에서처럼 자신에게 못 쓰고, 자식에게 한없이 다 퍼주는 건 절대 하면 안 될 거 같아요. 자신이 먼저 기준을 세우고 질서를 지켜야죠. 자식 입장에서 처음에는 좋겠지만, 그게 습관이 될 수도 있잖아요.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길 바랍니다. 자신을 위하다가 만약 남으면 그냥 놓고 가면 되잖아요? 그걸 권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관객이 「소풍」을 보고 어떤 걸 느끼면 좋겠나요?
김영옥 건강하게 늙으시란 말을 하고 싶어요. 살면서 조금이라도 젊으면 그때부터 정말 건강을 생각해서 지킬 것들을 잘 지키시면 좋겠어요.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라도 건강히 사세요. 건강을 잘 다스리는 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을 위한 방법이에요.
나문희 절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영화와 비슷한 상황인 분들도 많을 텐데, 거기까지 가기 전에 부지런히 운동하고, 열심히 사시고, 그다음에 어느 나이가 되면 그냥 집에만 있는데, 집에서 나와서 문화생활도 좀 하면서 건강히 사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