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새 연재 필자 인터뷰

2026년 2월 8일 진행된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전체 465석 중 316석(단독 과반 및 2/3 이상)을 확보했다. 외신들은 이를 ‘역사적 압승’으로 표현했다. 이 선거 결과로 다카이치 내각의 독주 체제가 굳건해졌고, 자민당은 단독으로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했다. 이른바 ‘전쟁 가능 국가로서의 일본’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학보 위클리가 유불란 교수(일본학과)의 「일본은 왜 ‘전쟁국가’가 됐는가」라는 새로운 교양 연재를 선보이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새 연재는 4월부터 월 1회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유불란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일본정치사상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서울대 등에서 강의하다가 2024년 3월 1일부로 방송대에 부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동아시아 내셔널리즘의 형성과 변화』 등이 있다. ‘일본정치사상사’를 전공한 전문 연구자로서 유 교수의 시선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전쟁’의 기원을 분석하는 데 탁월하다.
그는 “흔히 쇼와 시기(1926∼89)의 극심한 국내외적 혼란은 군부 독주나 비합리적인 정신주의의 결과로서 설명된다. 반면 메이지 시대(1868∼1912)는 서구 제국주의가 지배하던 19세기 국제질서 속에서 비서구 국가로서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합리적 시기로 묘사돼 왔다. 그러나 이러한 통설은 과연 충분한 설명일까?”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이번 연재는 일본이 어느 순간 ‘전쟁을 선택한 국가’가 됐다기보다, 애초부터 전쟁 경험을 통해 국가의 존립, 성공, 통합을 사유하도록 구조화된 ‘전쟁국가’였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기원을 쇼와가 아니라, 오히려 ‘밝은 시대’로 불리어 온 메이지에서 찾고자 한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연재를 앞둔 유불란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이번 연재는 일본이 어느 순간
‘전쟁을 선택한 국가’가 됐다기보다,
애초부터 전쟁 경험을 통해 국가의 존립, 성공, 통합을

사유하도록 구조화된 ‘전쟁국가’였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기원을 쇼와가 아니라,
오히려 ‘밝은 시대’로 불리어 온 메이지에서 찾고자 한다.

 

 


학보 위클리 교양면에 새로운 연재를 선보일 예정이신데요. 이번 연재를 구상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그래, 한일관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본을 연구한다고 하면 대개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일본에 관한 많고 많은 사안 중 제가 구체적으로 무얼 연구하는지와 무관하게, ‘일본’을 입에 담는 순간 곧바로 외교 차원의 해법부터 요구받는 상황이 반복되곤 하죠. 아마도 이런 반응이야말로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는 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차분히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서보다 그때그때 우리 필요에 따라 꺼내 쓰는 하나의 수단처럼 소비되어 온 건 아닐까요. 이에 한편으로는 지난날의 상처만을 강조하면서 일본을 어떤 고정된 가해자처럼 그려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간 갈등은 일단 덮어두자, 이 급박한 정세 속에서 ‘현실적’으로 사고하라며, 협력의 필요성만을 강조하는 식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거듭해서 밀려오는 극단적인 단순화의 파고 속에서, 이 모든 문제가 애초에 왜 일어나게 됐던가 같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은 점점 더 아득한 일이 돼버리곤 합니다.
이번 연재를 통한 우리의 여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어째서 우리는 일본을 손쉽게 선악의 이야기로 만들거나, 아니면 필요에 따라 적당히 덮어버리는 식으로 다루는 걸까요? 왜 이 땅에서의 일본 담론은 복잡한 역사적 맥락과 모순은 걷어낸 채, 그저 어떤 한두 장면을 부각시키면서 마치 교훈이라도 되는 양 소비하는 것일까요. 일본을 비판하는 일은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비판이 사실에 대한 냉정한 검토와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감정적인 자기 확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흐를 때, 오히려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할 힘을 잃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동안의 일본에 대한 비판이 ‘감정적 자기 확신을 강화했다’라고 보시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된 데에도 어떤 사정이 있지 않을까요
사실, 일본을 이렇게 다루게 된 배경에는 우리 사회 특유의 역사적인 경험이 자리 잡고 있지요. 굳이 설명할 것도 없겠지만, 우리는 식민지와 전쟁, 분단을 겪으며 집단적 위기와 생존의 불안을 경험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경험은 자연스럽게 힘과 성공, 물질적 성장에 대한 강렬한 열망으로 이어지게 됐죠.
이 과정에서 식민지 경험은 ‘그저’ 외부의 억압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혹시 1920년대의 이런 신문 연재만화를 보신 적이 있는지요? 요컨대, 이른바 외국물 좀 먹었다고 시건방지게 구는 그런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풍자하는 그런 내용인데요(아래 그림 참조). 식민지 시대 만화라 그림체나 어투가 좀 어색하긴 해도, 이른바 ‘선진국’으로부터 가져온 진보와 성공의 잣대에 기대어 저가 얼마나 잘 이를 구현하고 있는지 으스대는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런 풍자가 비단 1920년대에 접어들어 처음 나온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유길준이라고, 조선 최초의 관비 유학생으로서 이후 개화기 조선을 대표하는 지식인이 된 이가 있지요? 그런 그가 자신의 유명한 『서유견문』(日本 交詢社, 1895)이란 책에서 근대화 후발주자가 개화를 추진해 나가는 데서의 자세를 품평하며 이리 발언합니다.
“입엔 양담배나 물고, 가슴엔 외국 시계를 차며, 의자에 걸터앉아 외국 풍속에 대해 떠들거나 외국말 말마디나 지껄이는 자가 어찌 개화인이라 할 수 있으랴. 이는 개화의 죄인도, 원수도 못 된다. 그저 개화라는 헛바람에 날려서 마음속 주견도 없는 한낱 개화의 성치 못한 이라.” 앞서 만화와는 30여 년의 격차가 있건만, 마치 같은 장면을 보고서 서술한 듯 딱 들어맞지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오늘날 우리들의 시선으로, 당시 서구 및 일본발의 밝디밝은 신문명의 빛에 홀려, 주체성도, 정체성도 잃게 된 저런 선배들에 대해 비판하기란 쉬운 일입니다. 또한 그러다가 저들이 이후 빠져들게 된 부역 행각에 대해선 당연히 지적해야 마땅하고요. 하지만, 여기서 그와 함께 주목해 봐야 할 것은, 이러한 행태가 후발주자로서 이 땅의 근대화 과정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었던 그림자와 같았다는 점입니다.

이 땅의 우리들 마음속에는 식민지의 고난을 거치며
문명과 미개라는 저들의 기준이 깊이 스며들어,
각자의 내면에서 임화가 언급한 갖가지 ‘어떤 이’들이 온통 뒤섞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열등감과 수치심,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는 강한 욕망이
아주 복잡하게 얽힌 채 남게 됐고요.
그리고 이와 함께 일본은, 가해자이자 경쟁자 이상으로
이런 우리의 불안과 욕망을 비추는 거울로서 한국 사회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후발주자의 한계’를 언급하셨는데, 국문학계에서도 일찍이 임화의 ‘이식문학론’이 논란이 됐습니다만, 어쩌면 이게 어떤 ‘이중의식’이라는 식민성을 내장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어둠이 깊어가던 1938년 시점에서, 시인 임화는 일본으로 향하며 이리 외칩니다. “예술, 학문, 움직일 수 없는 진리… 그의 꿈꾸는 사상이 높다랗게 굽이치는 도쿄. 모든 걸 배워 모든 걸 익혀 (중략) 나는 슬픈 고향의 한밤, 홰보다도 밝게 타는 별이 되리라.”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겠지요. 그가 또 다른 시에서 노래한 대로, “아무렇기로 청년들이 평안이나 행복을 구하여 이 바다 험한 물결 위에 올랐겠는가?” 
하지만 저들을 배운다는 건 그저 이런저런 전문 지식의 습득 차원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이상으로 저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내 것으로 체화시켜 나가는 과정이기도 할 터입니다. 그러면서 ‘저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기울수록 자연 ‘우리’는 희미해질 수밖에 없고요. 이 과정은 매국노와 애국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훗날 대표적인 일제 부역자가 된 윤치호 같은 이가 ‘민족의식’을 상실한 조선의 지식인들을 “외국 교육으로 망가진 동양인은 썩은 계란보다 더 고약하다. 미국이나 유럽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이유로 미국이나 유럽의 모든 영예가 자기 것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 인간은 잘난 척하고 우쭐대며 건방진 서양식 말투로 나불댄다.” “그는 토착적인 거라면 그게 뭐든, 딱히 나쁘지 않더라도 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전부 멸시한다”라고 비난했듯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건너간 채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돌아오자 죽어 갔다.
어떤 사람은 영영 생사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아픈 패배에 울었다

-임화, 「현해탄」 중에서

그리고 물론, 임화가 지금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던 “희망과 결의와 자랑을 욕되게도 내어 판 이”도 있었구요.
이렇듯, 이 땅의 우리들 마음속에는 식민지의 고난을 거치며 문명과 미개라는 저들의 기준이 깊이 스며들어, 각자의 내면에서 임화가 언급한 갖가지 ‘어떤 이’들이 온통 뒤섞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열등감과 수치심,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는 강한 욕망이 아주 복잡하게 얽힌 채 남게 됐고요. 그리고 이와 함께 일본은, 가해자이자 경쟁자 이상으로 이런 우리의 불안과 욕망을 비추는 거울로서 한국 사회에 자리 잡게 됩니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뤄냈지만, 이런 성공의 반면에는 권위주의적 문화와 치열한 서열 경쟁, 약자를 향한 배제와 같은 문제가 여전히 상존해 있습니다. 사실, 이 후자 쪽 문제는 단순한 도덕적 실패 같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저런 놀라운 성공을 추동해 온 독하디 독한 성공열의 다른 쪽 면이라 해야겠지요. 그래서, 우리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오늘 우리가, 해방 후 우리 사회가 입각해 온 저 독특한 정신 구조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어떻게 고착된 건지, 나아가 이때 결정적 영향을 미친 제국 일본 특유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두루 살펴봐야 합니다. 그저 ‘일본은 있다, 없다’식의 단순화된 우격다짐이 아니라요.

단순히 ‘일본은 있다, 없다’ 식의 우격다짐을 넘어서 제국 일본 특유의 가치관 세계관 형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씀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이것도 일본 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19세기 이래 세계질서의 변동과도 연결되는 것이겠죠
예, 그렇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이 연재를 제국 일본이 그린 정치사적 궤적을 연대순으로 정리해 보는 그런 자리로 삼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제국 일본을 특징짓는 ‘전쟁국가’ 식 사고방식이, 전지구적 차원으로 무한경쟁의 가치관이 확산하던 19세기 이래 세계질서의 격변 속에서 어떻게 형성된 건지를 차분히 살펴보려 합니다. 이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는데, 여기서 ‘전쟁’이란, 그저 무력 충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주목해 볼 부분은 물리적 충돌 배후에 자리 잡은 경쟁과 생존의 논리가 국가와 사회, 나아가 개개인의 생각과 가치관 속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가 쪽이죠. 이 질문은 일본의 근대화를 이해하기 위한 질문인 동시에, 한국의 근대를 이해하기 위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이 연재는 ‘일본이 왜 전쟁을 거듭했나’ 그 자체보다, 우리 시대 특유의 ‘경쟁과 생존’의 극한 논리가 어떻게 사회적 상식이 됐는지 저들을 통해 추적해 보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거울’을 꼼꼼히 들여다봄으로써, 종국에는 우리 사회의, 우리 자신의 막막하기만 한 무한경쟁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려는 것이지요.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라는 의미에서의
전쟁국가의 외관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 뿌리에 자리하던
생존과 우월을 향한 강박, 제로섬 식 경쟁을 전제로 사고하는 세계관까지 함께
사라졌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전후 일본은 경제성장을 통해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회복했고,
‘경제대국’이란 또 다른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혹시 이건 전쟁 대신 경제경쟁이 중심 무대가 됐을 뿐, 경
쟁을 통해 국가의 가치를 증명한다는 사고방식 그 자체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지요.

그렇다면 이번 연재에서는 선생님의 문제의식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요
본 연재는, 이런 문제의식을 네 개의 흐름으로 펼쳐 보고자 합니다.
우선, 일본 근대를 둘러싼 가장 익숙한 도식부터 다시 따져 물어봐야 하겠지요.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는 흔히 ‘밝은 메이지’와 ‘어두운 쇼와’로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제국 일본’ 시절을 바라보곤 합니다. 확실히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보자면, 메이지의 성공과 쇼와의 파국이란 구도는 이해하기도 쉽고 설득력도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도식화는 일본의 근대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있기도 하죠. 왜냐하면 쇼와의 파국을 이렇게 그저 일본 군부의 폭주나 시대적 광기 같은 일시적인 일탈로 설명해 버린다면, 메이지의 성공이 남긴 구조적 유산은 보이지 않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첫 번째 흐름은 바로 이 통설을 잠시 멈춰 세우는 데서 출발합니다.
둘째로, 자, 그런데 여기서 저 메이지의 ‘성공’이란 것은 구체적으로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요? 19세기의 제국주의적 세계질서 속에서 일본은 생존을 위해 강병부국을 선택했고, 전쟁을 통해 마침내 염원하던 국제적인 인정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결정적 계기가 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에 대해, 이를 그저 군사적인 성과로서가 아니라 국민적 통합을 이뤄내 국가적, 민족적 위기를 돌파해 낸 집단적인 성공 경험으로서 기억하게 됩니다.
이 같은 경험은 국가적 성취를 곧 대외 경쟁의 승리와 동일시하는 감각을 강화했고, 이는 점차 사회 전반에 걸쳐 상식처럼 고착돼 갔습니다. 이와 함께 대외적 성공과 국내 차원에서의 결속 ‘방식’은 이후 일본에서 하나의 ‘성공 방정식’으로서 자리 잡습니다. 제국 일본의 전쟁국가화, 즉 경쟁과 충돌을 국가 운영의 전제로 삼는 사고방식은 이로부터 비롯된 겁니다. 이에 두 번째 흐름에선 이 성공의 논리가 어떻게 등장해, 국가 차원에서는 물론, 대중들의 가치관 속으로까지 스며들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셋째로, 이와 같은 성공 방정식의 연장선상에서 쇼와의 파국을 다시 읽어내 보고자 합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은 흔히 일컬어지듯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몇몇의, 특정 집단만의 ‘광기’의 산물이었을까요? 메이지 때의 저 승리의 기억과 그로부터의 성공 방정식의 고착화는 이후 1945년 8월의 패망에 이르기까지 제국 일본의 국가적 진로 설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서의 성공열이 그 밝기만큼이나 긴 그림자를 드리웠듯, 제국 일본의 저 성공 방정식 역시 마찬가지의 부의 유산을 드리우게 됩니다. 그래서 세 번째 흐름에서는 쇼와의 파국을 메이지의 성공에서 비롯된 하나의 역설적인 귀결로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이상에 더해,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패전을 끝으로 일본에서 ‘전쟁국가’는 종언을 고한 것일까요? 예, 물론 일본은 익히 알려진 대로 헌법 제9조로 상징되듯 ‘평화국가’를 선언했습니다.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 나라, 전쟁을 하지 않는 나라라는, 세계사적으로도 보기 드문 국가 정체성을 내세운 것인데, 그리하여 이로써 적어도 형식상 전쟁국가의 시대는 막을 내린 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봐야 합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라는 의미에서의 전쟁국가의 외관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 뿌리에 자리하던 생존과 우월을 향한 강박, 제로섬 식 경쟁을 전제로 사고하는 세계관까지 함께 사라졌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전후 일본은 경제성장을 통해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회복했고, ‘경제대국’이란 또 다른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혹시 이건 전쟁 대신 경제경쟁이 중심 무대가 됐을 뿐, 경쟁을 통해 국가의 가치를 증명한다는 사고방식 그 자체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지요.
네 번째 흐름에서는, 그래서 전후 일본이 스스로를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해 왔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패전 이후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과정에서 저들은 과거의 전쟁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또 이야기해 왔을까요. 전쟁국가가 단순히 무력 충돌의 문제가 아니듯, 평화국가 역시 군비를 줄인 나라라는 정도의 의미가 아닐 터입니다. 평화국가로 거듭난다고 말하려면 경쟁과 우월을 당연한 전제로 삼는 사고방식과도 결별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평화국가를 자처하는 일본이 과연 과거 전쟁국가 시절의 가치관과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지, 정말로 그것과 결별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하겠지요.

이 연재를 통해 저는 제국 일본을 단순한 가해자,
혹은 모범국가로 도식화시키지 않고 읽기 위한 나름의 ‘틀’을 마련해 보려 합니다.
이를 통해 전쟁과 성공을 하나로 결부시켜 온 지금도 작동 중인
저 경쟁적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관점’을 제안하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틀과 관점을 적용해 볼 대상이 제국 일본만은 아니겠지요?
이 ‘일본’이라는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물음을 던져야겠죠.

전쟁국가로 치닫는 일본의 상황을 네 가지 문제의식으로 조명하셨는데 동아시아라는 틀에서 본다면, 그런 일본을 보면서 우리 자신에게도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저들 질문은 사실 우리 자신에게도 던져봐야 합니다. 패전 이후 동아시아는 냉전 질서 속에 편입됐습니다. 전쟁은 멈췄지만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군사적 충돌 대신 이념 대립과 경제적 경쟁이 전면에 등장했고, 각 국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일본은 경제성장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려 했고, 우리 역시 분단과 전쟁의 상처 속에서 산업화와 고도성장을 국가적 과제로 삼았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경쟁을 통해 국가의 성취를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은 전쟁국가적 세계관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도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제국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강해져야 한다는 논리를 우리 스스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적 결속을 강조하고, 경제적 성취를 통해 국제적 위상을 확인하려는 사고방식은 과연 어디까지 일본‘만’의 문제일까요.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 연재를 통해 저는 제국 일본을 단순한 가해자, 혹은 모범국가로 도식화시키지 않고 읽기 위한 나름의 ‘틀’을 마련해 보려 합니다. 이를 통해 전쟁과 성공을 하나로 결부시켜 온 지금도 작동 중인 저 경쟁적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관점’을 제안하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틀과 관점을 적용해 볼 대상이 제국 일본만은 아니겠지요? 이 ‘일본’이라는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물음을 던져야겠죠. 
우리는 오랫동안 ‘생존’과 ‘성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 왔습니다. 안보와 경제성장은 정당한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경쟁과 성취의 논리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게 된 건 아닌지, 우린 충분히 성찰해 왔을까요. 일본을 향한 비판이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을 돌아보는 계기로 이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확신을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는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터입니다.
이 탐구의 여정에서 저는 일본을 변명하지도, 반대로 손쉽게 악마화하지도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일본이라는 사례를 통해 우리 스스로에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근대의 성공 경험은 어떻게 한 사회의 사고방식을 구조화하고, 그 구조가 어떻게 장기적인 파국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물음을 말이죠. 여러분. 우리는 어떤 성공을 경험해 왔을까요? 그 성공은 어떤 사고방식을 남겼을까요. 우리는, 과연 경쟁의 논리를 넘어서는 다른 언어를 준비하고 있을지요.
요컨대 이 연재는 어떤 정답을 도출해 내려는 기획이 아닙니다. 일본을 거울삼아, 우리가 너무 쉽게 당연하게 여겨 온 전제들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제안에 다름 아닙니다. 이에 일본을 이해하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일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차분히 따져보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와 관련된 학부 강의(「근대일본의 선택: 전쟁」 「근대일본의 모색: 평화」 등)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이 연재 내용을 관련된 과목 공부와 연계해 읽어도 유익하겠죠? 독자들에게 연재 읽기 ‘팁’을 주시면 어떨까요
물론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다만, 이 연재를 강의의 해설서처럼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같은 숲을 바라보고 있지만 들어가는 길이 좀 다르다고 할까요. 강의는 그 숲속에서 실제로 어떤 사건이 일어났고, 그것이 어떤 정치적·국제적 상황 속에서 전개됐는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제국 일본이라는 역사적 공간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데 적합한 루트입니다.
그에 비해 이번 연재는 저 숲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려 합니다. 어떤 사건이 있었는가보다, 그 사건을 가능하게 했던 사고방식은 무엇이었는가,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성공’이라고 믿었는가에 더 주목합니다. 그래서 연재는 일본 정치사를 정리하는 자리라기보다, 그 역사 속에서 작동한 세계관을 하나의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강의를 듣는 학우 여러분이라면, 강의를 통해 사건과 맥락을 이해하고, 연재를 통해 그 사건들 배후의 사고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시는 식으로 읽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두 작업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궁극적으로 일본을 넘어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을 돌아보는 데서 만난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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