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방송대 농학과 진학한 동양철학자 최문형 박사

농학공부를 하다보면  농부가 되는 욕심이 생길 수도 있겠다.
이 공부를 통해 더 많은 분들에게 식물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

지구상 어떤 존재가 식물과 같은 행복을 줄 수 있을까.

나는 그들과 더욱 가까워지는 길목에 도달했다.

 

2014년 1학기 4.8%에 머물렀던 석·박사학위 소지자들의 방송대 입학률은 해가 바뀔수록 꾸준히 증가했다. 2018년 1학기 9.4%까지 증가했던 이들은 2019년 1학기 10.7%로, 10%대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이른바 전문가들의 방송대 노크가 확대되고 있는 신호다.
최근 농학과에 진학한 최문형 성균관대 겸임교수(57세)도 전문가들의 방송대 진학이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와 이어져 있다. 동양철학 전공자인 그는 『유학과 사회생물학』·『식물처럼 살기』 (성균관대출판부, 2017)를 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을 지낸 그가 언뜻 보기에도 전공과 거리가 꽤 있어 보이는 ‘농학’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교롭게도 두 책 모두 생물학과 관련이 있다. 책 발간 이후 지자체와 아카데미 등에서 특강을 하고 칼럼도 쓰게 됐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하다 보니 밑천이 딸렸다. 고등학교 때 생물을 배우기는 했지만 거의 잊어버렸다. 최근 책을 쓰면서 다시 혼자서 시작한 공부라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싶었다. 남들은 내가 식물전문가인 줄 아는데 양심에 걸렸다.”


전직 부장판사 권유로 2학년 편입
‘밑천’이 떨어졌고, 더 이상 ‘식물전문가’로 남들 앞에 나서는 게 불편해졌을 때, 그는 우연히 한 모임에서 방송대 농학과에 편입한 분을 만났다. 전직 부장판사고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는 분인데 자신의 활동 분야와는 전혀 다른 농학과 공부가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자랑했다. 최 학우는 이때 처음 방송대에 농학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역시 공부하고 싶어도 시간과 비용 등이 부담스러웠던 터라 듣는 순간 ‘여기가 내 자리다!’ 하고 바로 결정을 했다. 3학년보다 2학년부터 시작하는 게 유익하다는 ‘그 선배님’의 권유대로 2학년에 편입했다.
각오도 좀 했을 것 같았다. 농학과 경쟁률이 높아 걱정도 했다는 그는 이제까지의 공부는 주변의 영향 속에서 한 것이지만, 방송대 농학과 선택은 순전히 자신의 독자적 결정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출발이 삐걱거렸다. 코로나19로 대학 강의를 ‘인터넷 강의’로 바꾸다 보니 시간에 쫓기게 됐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사태로 대학들이 모두 인터넷강의로 들어가니 정작 학생으로서는 공부할 시간이 없어졌다. 한 달여를 멍하게 보내고 정신을 차려 공부계획을 짰다. 방송대 공부는 대단한 의지력이 밑받침돼야 가능한 것 같다. 의지 면에서 딸리는 나에게는 어려운 공부다”라고 말하는 그는 “마음에 부담이 컸었는지, 얼마 전에는 농학과 교수님들을 만나 변명까지 하는 꿈을 꿨다. 시간이 없어 그렇지,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라고 사정을 했다. 그런데 표정들이 안 좋으셨다”고 귀띔했다.
그런 그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공부에 소홀해져서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겠냐고.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벌써 한 번 지나갔다는 것이다. 이번 학기 대학의 인터넷 강의 준비로 숨차서 농학과 공부를 제대로 못하게 되자 다음 학기에 입학할 걸 그랬다는 후회를 했다. 지금 학습 진도도 처져 있다.
“하루 종일 강의안 만들고 강의 찍고 긴장하고 피곤하다가도 학생이 되어 배움의 시간으로 들어서면 신선해져서 쌓인 피로가 풀린다. 방송대 농학과에 입학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아직 지역별 스터디에 참여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하는 최 학우는 “열정적인 교수님들과 친절한 튜터님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학업에 필요한 사항은 이메일을 통해 몇 번이고 알려주신다. 인생이란 게 도전의 연속이 아닌가, 각자의 사연을 안고 씩씩하게 공부하는 학우님들과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용기와 힘을 얻는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아주 잠깐만 쉬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외부자’로서 방송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오랫동안 일반 대학에서 강의해왔던 최 학우는 ‘오랜 세월을 거쳐 구축한 탄탄한 인프라’와 ‘우수한 교수진’을 강점으로 꼽았다. 저렴한 학비도 솔깃했지만, 그를 사로잡은 것은 ‘유비쿼터스로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것을 ‘방송대의 최대 장점’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강의 제작을 ‘강제 경험’했던 그는 방송대 원격강의의 매력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편안함과 자연스러움, 핵심만 짚어서 시간 내에 소화해 알려주는 노련한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적용할 수 있었다. “교양과 전공 강의에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모셔 와서 협동강의를 하는 것도 인상적이고 유익했다. 역시 방송대 강의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방송대 협동강의 인상적이고 유익”
질문을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동양철학 전공자인 그가 농학과에서 공부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식물과 동물의 생태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했다. 인간과 식물과 동물이 생명체로서 공유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상세히 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공부가 깊어지면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적 학술서를 하나 더 저술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식물처럼 살기’를 넘어서 ‘식물이랑 살기’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농학 공부를 하다 보면 농부가 되는 욕심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이 공부를 통해 더 많은 분들에게 식물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 지구상 어떤 존재가 식물과 같은 행복을 줄 수 있을까. 나는 그들과 더욱 가까워지는 길목에 도달했다. 앞으로의 나의 행보는 그들이 알려줄 것이다.”
확실히 그는 공부와 일에 욕심이 많아 보였다. 그런데 그 욕심에 때가 묻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농학과 공부에 힘입어 『식물처럼 살기』에 이은 어린이용 동화 『꽃이 되고 싶은 미미』(가제) 집필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햄스터와 식물이 주인공이고 개미와 파랑새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화인데, 이 동화를 출간한 후 지속적으로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쓰고 싶다고 밝혔다. 번역서 작업도 한창이다. 인도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쓴 심리학 관련 책이다. 최 학우는 “인도에서 이미 100만부 이상이 팔린 책이다. 세상과 외부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힐링하며 행복과 성공에 이르는 지침서”라고 살짝 소개했다. 부모를 위한 교육지침서도 완성할 예정이다. 이 책에도 동식물과 자연의 원리에 대한 농학과 공부가 배어나올 것이다.
그는 최근 ‘서울로 아트포레스트’의 제안으로 ‘식물처럼 살기’의 대중화를 다각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농학과 공부는 내게 든든한 자산과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라고 최 학우가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가 비로소 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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