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세상을 바꾸는 방송대 사람들

1964년 어느 날, 꽃다운 18세 소녀는 친구들의 배웅을 위해 어두운 밤, 길을 나섰다. 집 앞에 서있던 낯선 청년이 길을 묻기에 동네 입구까지 안내를 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돌연 발을 걸어 소녀를 넘어뜨렸다. 소녀는 세 번째 넘어졌을 때, 돌부리에 머리를 부딪쳐 의식을 잃었다. 무언가에 눌렸던 몸이 가벼워지자 입 안에 들어 있던 것을 뱉었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청년이 자신의 혀를 찾아달라며 찾아왔을 때야 입 속에 있던 것의 정체를 알았다. 그렇게 가해자가 돼 6개월 동안 차가운 감옥에서 생활했다. 출소 후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수군거림으로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숨어 살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방송대 문화교양학과를 졸업한 최말자 동문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벌인 사투 때문에 50여 년간 자신을 감춰버렸던 그녀가 바뀌었다. 세상으로 나와 당당히 외치고 있다. 그 사건은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이 아니라 ‘혀 절단으로 방어한 성폭행 사건’이라고. 나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그녀는 어떤 이유로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으려 하는가?  
최 동문이 방송대 재학 시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손으로 일일이 필기한 노트. 최 동문은 이 노트와 교재를 가보로 여긴다고 한다.동학(同學), 아름다운 동행
최말자 동문과 윤향희 동문은 스터디에서 만났다. 최 동문은 커다란 노트북을 메고 2시간 거리에 떨어져 살면서도 단 한 번도 빠진 적 없이 열심히 공부 했다. 그녀는 윤 동문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최 동문의 책은 학기 초임에도 벌써 손 때가 타고 표지가 너덜거렸다. 2학년이 되자 윤 동문은 스터디 팀장을 맡게 됐다. 그러나 곧  충격에 빠졌다. 최 동문이 3학기 내내 과락을 했다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지 않았죠. 몇날 며칠 밥도 먹지 않고 졸랐지만 헛수고였어요. 그게 한이 돼 60대 중반에 중등과정을 시작해 방송대 문화교양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대학 공부는 중학교 영어, 고등학교 수학과는 달리 완전히 새로운 차원이었어요. 동영상 강의와 교재를 수십 번 보고 읽고 독수리 타법으로 과제물을 작성해 놔도 다음 날 노트북을 열어보면 남아 있지 않았죠.”      
 
문서 저장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윤 동문은 특별한 방법을 썼다.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곳이 방송대이기에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야 했다. 윤 동문은 방송대 홈페이지 로그인부터 차례로 알려줬다.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과제물 제출을 완료했을 때 최 동문은 윤 동문을 부둥켜안고 울먹였다. 먼저 졸업한 윤 동문은 최 동문을 살뜰히 살피며 계속 공부를 도왔다.  
 
배움, 삶은 버티는 것 아닌 살아가는 것
이제, 졸업을 위한 논문만 남았다. 최 동문이 선택한 논문 주제는 ‘내가 걸어온 길, 앞으로의 길’이었다. 최 동문은 과거를 더듬어 글로 정리했다. 그리고 윤 동문에게 보였다. 서론·본론·결론 같은 형식 등을 수정해 주면 될 것 같아 쉽게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그 내용이 이미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었다. 윤 동문은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당사자인 언니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와이셔츠 공장과 노점상으로 홀로 밥벌이를 하는 힘든 시기를 버텨냈죠. 그런데 방송대 공부를 통해 삶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임을 배우게 됐어요. 송찬섭 교수님의 한국사, 백영경 교수님의 여성사, 이정호 교수님의 철학사를 공부하며 나 자신과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 같습니다. 70대 늦은 나이일 수도 있습니다. 재심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죠. 그래도 전 문화교양학과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실천, 틀린 것 지적하고 인정하는 용기
“저는 언니(최 동문)의 논문을 읽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돼버린 것에 분노했어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미 50여년 전에 난 판결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 같았죠. 그럼에도 세월이 지났으니 언니 우리 잊자, 묻자, 힘들게 싸우지 말고 남은 생 행복하게 살자고 할 수는 없었어요. 문화교양학과 이정호 교수님은 우리는 인문학도고, 인문학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는데, 사회도 커다란 ‘나’ 잖아요. 잘못한 건 지적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요?”
 
최 동문은 사건이 발생한 지 56년 만인 지난 5월 6일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당시 검찰 조사에서 들었던 “가해자와 결혼하면 쉽지 않느냐”는 말과 “범행 장소에서 소리를 지르면 충분히 주위 집에 들릴 수 있었다”라는 판결문 문장은 지금도 모욕적으로 남아있다. 두 동문은 과정과 정도는 다르지만 성폭력 사건에서 여성에 대한 모욕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다며 그 잘못을 바로잡고 싶다고 한다. 권위란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면서. 
최말자(왼쪽), 윤향희 동문. 최 동문이 얼굴 공개를 원치 않아 부득이하게 장미꽃으로 가리고 사진을 촬영했다.
 
 
 

길을 찾은 학우에게

 

내가 걸어온 길, 앞으로의 길이라는 주제를 졸업논문으로 선택하면서 최 동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항상 가슴에 품어왔던 오래전 사건이 자연히 떠올랐던 듯하다. 사실 이 주제를 선택한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전체 삶을 다루면서 즐거웠던 일, 힘든 일, 보람된 일 등을 빠트리지 않고 서술하려고 하였다. 글은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충실히 반영하였고 그 즐거움과 슬픔이 글을 읽는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선생을 굳게 믿어서인지 때로는 차마 주변에 이야기하기 힘든 이야기도 적지 않다.

 

최 동문의 졸업논문도 그러하였다. 글은 아직 체계도 덜 갖춰져 있고, 역사 글에서 가장 필요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지만 뚜렷한 주제의식이 있었다. 50여 년 간 깊숙이 가둬두었던 가장 아프고 억울했던 사건을 중심 축에 두고 진솔하게 서술하였다. 그 앞뒤의 삶에서도 아픔을 겪은 그를 위로하지 못하고 더 힘들게 만들었던 환경을 담고 있다.

 

이 사건은 그의 삶을 뒤틀어지게 만들었지만 끝내 굴하지 않고 늦은 나이에 중고등과정을 거쳐 방송대에 다니면서 인문학 공부를 통해 새롭게 희망을 찾았다. 그리고 나를 찾아가는이 공부는 마침내 56년 전 멈춘 삶을 찾으려는 용기를 주었다. 이제 그가 바라던 재심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기대하지만 설혹 바라던 재심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억눌렸던 그 일을 공공의 장으로 토해내는 순간 이미 길은 활짝 열렸다. 평범한 일상의 길을 넘어 사회라는 더 넓은 길로 나오게 된 것은 그의 용기였다.

 

사족-아울러 이를 통해 개인의 역사가 어떻게 우리의 역사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50여 년 전의 사건이 그에게 국권침탈이라면, 지금의 용기는 그에게 3.1운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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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ee***
    안녕하세요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것이 침체된 요즘, 저마저도 에너지와 빛을 잃어가며 심적 방황을 겪고 있는 학생입니다. 그러다 이 글을 읽게 되었고 정말 거대한 용기와 희망을 받은 기분입니다. 과거의 아픔을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지, 나의 현재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버텨나가야 할지, 그래서 미래에 가질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지.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는데 동문님의 삶의 이야기를 읽고 정말 용기가 납니다. 어떻게 노력해나가야 할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6-16 07:28:18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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