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대 명저 106선 해제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이면서, 숨을 쉰다”라는 인상적인 문장에서 시작되는 최인훈의 『광장』은 해방 이후의 한국 문학사를 빛낸 중요한 작품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60년 10월 <새벽>이라는 잡지에 처음 발표된 이 작품의 부피는 얄팍한 책 한 권 분량에 불과했지만,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무게와 독자들에게 안긴 충격은 심대한 것이었다. 『광장』의 기념비적인 의미는 해방 이후의 격동하는 역사에 대한 문학의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비롯되고 있다.  『광장』은 1960년 4월 혁명이 불러일으킨 축제적 분위기 속에서 발표됐다.『광장』의 등장으로 한국문학 현장에는 분단문학이라는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고 자신만의 확고한 위상을 수립하게 됐다. 그동안 단편적인 형태에 머물렀던 분단이라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은 최인훈의 『광장』에 이르러 마침내 온전한 의미의 깊이와 넓이를 갖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분단문학이라는 새로운 이정표 광장』 이후로 이병주의 『지리산』과 이문열의 『영웅시대』, 조정래의 『태백산맥』 같은 성격이 다양한 장대한 이야기들이 차례로 쓰였다. 한반도에서 민족 분단이라는 역사적 상황이 지속하는 한, 분단의 문제는 우리의 관심사에서 결코 멀어질 수 없다.  해방 이후로부터 한국전쟁 종전 직후의 시기에 걸쳐 있는 남과 북의 분단 상황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광장』의 주인공은 ‘이명준’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서울의 한 대학 철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한편, 대학신문에 자작시를 투고하기도 하는 다정다감한 청년이다.  명준은 해방 직후 북으로 넘어간 아버지 때문에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 월북한 아버지가 평양의 대남방송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명준은 부친 건으로 일본 강점기에 좌익을 탄압하던 특고 형사로부터 모욕을 당하면서 남한의 체제에 대해 회의를 하게 돼 결국, 인천에서 밀수선을 타고 월북한다. 여기서 남과 북이라는 두 개의 각각 다른 이념과 체제를 경험하는 주인공의 문제의식은 ‘광장과 밀실’의 비유로 제시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이란 자신의 밀실에서만 살 수 없기에 그 존재는 광장과 이어져 있으며 정치는 바로 그런 인간의 광장 가운데 한 곳이다.명준의 눈에 비친 남한의 ‘정치의 광장’은 쓰레기더미와 같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남한에서 “그들이 가장 아끼는 건, 자기의 방, 밀실뿐”이다.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라고 탄식하는 명준에게 남한 사회는 텅 빈 광장만 존재하는 ‘광장이 죽은 곳’이다. 그렇다면 남한을 버리고 떠난 그가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여기고 찾아간 북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가. 명준이 직면한 북한은 ‘잿빛공화국’이었다. 그곳은 그가 애초에 꿈꾸었던 인민의 공화국이 아니었다. 북한 사회는 “혁명과 인민의 탈을 쓴 여전한 부르조아 사회”이고 “광장에는 꼭두각시뿐 사람은 없었다.” 개인의 생각과 의견이 당과 인민의 이름으로 압살되는 그곳은 개인의 밀실을 허용하지 않는 획일화된 통제사회이다.  평양의 <노동신문> 편집부에서 기자로 근무하는 명준은 집단농장의 실상을 보도한 자신의 기사 때문에 개인주의적이면서 소부르주아적인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자로 내몰리고 결국 자아비판을 강요당한다. 명준이 판단하기에 북한에도 혁명은 없었다. 북한이라는 사회는 주체적인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붉은 군대가 가져다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북쪽의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 피 묻은 셔츠와 울부짖는 외침은 없다. 그건 혁명의 광장이 아니었다.” 작가의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는 밀실과 광장의 비유는 두 개의 체제를 각각 지탱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에 대한 폭로를 통해 남과 북의 실상을 고발하는 의미를 띠고 있다. 이 이야기에 덧붙인 작가의 말은 『광장』이 드러내고 있는 이데올로기 비판의 의미와 전망을 한층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1961년판 서문」) 제3의 길 ‘중립국행’의 의미광장』에서 밀실과 광장을 넘나드는 주인공 명준이 보여주고 있는 모험적 여행의 성격은 좌절과 패배의 형식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고 있는 패배의 형식은 더욱 깊은 차원의 음미를 요구하고 있다. 이야기의 후반부 마지막 대목에서 명준은 전쟁이 시작되자 서울에 진주해 남한 인사를 심문하는 압제자로 등장하지만, 곧 당의 명령에 따라 낙동강 전선에 나아갔다가 전쟁포로가 된다. 그리고 휴전과 더불어 전쟁포로 신분의 이 주인공은 남과 북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 앞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 행이었다. 주인공 이명준이 나아간 중립국행이라는 자리는 그가 직면했던 절망감의 표현이자 『광장』이 안고 있는 한계로 볼 수 있다. 역사의 현장에 자신의 온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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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ds0***
    '광장'은 고전의 반열에 든 작품이란 생각이 듭니다. 최인훈 선생이 애정을 가지고 여러 번 고쳐 쓴 작품이기도 하고요. 김원일 선생의 대부분 작품은 분단을 직접 겪은 가족사의 이야기가 많다고 보여집니다. 황석영 선생과 더불어 박영한 선생의 '머나먼 쏭바강'도 전쟁의 한복판에서 몸으로 쓴 소설입니다. 소설 공부를 하면서 직접 지도를 받던 두 분의 작품이 소개가 되어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몇 자 적어봅니다.
    2020-12-05 13:40:38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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