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우리 시대를 일구는 문화·예술인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 그리운 친구여…” 바로 가왕(歌王) 조용필의 노래 「친구여」의 한 대목이다. 한국인의 심금을 절절하게 울리는 이 노래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가 방송대 동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방송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2015년 방송대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하지영 동문(본명 하명숙·65)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83년 조용필 5집 곡「친구여」를 통해 작사가로 데뷔한 뒤, 조용필의 노래「여행을 떠나요」「미지의 세계」「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어제 오늘 그리고」「들꽃」등 14곡에 가사를 썼다. 그에게 ‘조용필 전담 작사가’라는 애칭이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내공은 잇따른 수상이 증명해준다. 1983년 KBS가사대상 입상(「친구여」), 1985년 KBS가사대상 은상(「들꽃」), 1987년 아름다운노랫말상(「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2004년 대한민국연예예술상 ‘작사상’, 2016년 한국가요작가협회 ‘작사가상’, 2017년 대한민국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을 연달아 수상했다. 그런 그가 2020년 11월에 시집『꿈을 만드세요』(문화발전소)를 펴냈다.

설거지하다 떠오른「친구여」의 가사
그가 걸어온 삶과 그의 꿈을 이해하려면 한 가지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꿈’이다. 「친구여」에서는 ‘하늘에서 잠자고’ 있던 꿈이었지만, 시집에서는 ‘꿈을 만드세요’로, 자신 있게 권유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 왜 우리에게 잠자는 꿈을 불러내 그걸 현실로 만들라고 말하는 걸까?
“어느 날 저녁 남편이 데모 테잎을 모니터링하며, 작사가가 써오는 가사들이 계속 맘에 안 들어 녹음 마무리를 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다음 날 아침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첫 소절에서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가 불현듯 떠 올라 수필을 쓰게 됐는데, 가사가 없단 말에 멜로디에 맞춰 함축해서 표현해봤죠. 「친구여」의 노랫말은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그는 오랫동안 꿈을 접고 살아왔다. 홍대 미대에 입학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일찍 결혼해 시부모를 모시고 살며, 남편의 사업을 도우며 두 자녀를 대학까지 마친 뒤에야 잊고 살았던 자신의 꿈을 돌아보게 됐다. 방송대와의 첫 인연은 교육학과였다. 전문 상담사가 되고 싶어 발을 디뎠지만, 졸업한 해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 소망은 이어지지 못했다.

 

50대 후반에 ‘중학교 때 꿈’ 재발견
그즈음 방송대에 문예창작 관련 대학원이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정말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되묻게 됐다. “제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중고등 시절 그림 잘 그리는 아이, 시 잘 짓는 아이로 통했답니다. 모교에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저 자신에게 되물었어요. 정말 꿈이 무엇이었냐고. 문예반에서 글을 쓰던 즐겁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죠.”
그의 석사학위 논문 「조용필 대중가요에서 노랫말의 역할과 특성 연구―박건호, 하지영, 김순곤, 양인자를 중심으로」는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왔다. 아무도 연구하지 않았던 분야였기에 그의 논문은 출간 이후 자주 ‘인용’되는 선행 연구 논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꿈이란 자신이 살고 싶은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꿈은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하지만 꿈이 뭔지 모르기도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해서,
나는 안 된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좌절하기도 하지요.
그럴 때 필요한 게 평생학습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논문도 논문이지만, 하 동문에게 더 즐거운 일은 유명 레코딩회사 대표로 있는 남편이 그를 따라 방송대 영문학과에 편입하고 이후 대학원 영상문화콘텐츠학과까지 마쳤다는 것이다. ‘부부 동행’에서 ‘지식 동행’까지 이어진 셈이다. 두 사람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서, 세월을 따라 항해해 왔다.
사람들은 그가 작사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을 두고 우연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주어진 환경과 바쁜 일상 속에서도 그는 늘 글을 쓰는 걸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시상이 떠오르면 글로 남겨뒀다. 그런 작은 돌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날 스스로 빛을 발산하게 된 것이다.
“5집 「친구여」의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노랫말을 사람들이 따라 부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꾸는 꿈들이 하늘에서 잠들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그래서 적절한 멜로디를 만났을 때 쓴 게 9집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의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을…’이었어요. 그런데 오랜 세월 살다 보니 그 말이 정말 힘든 인생의 약속이란 것도 알게 됐죠.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게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원치 않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 그래서 꿈은 ‘만들어야 한다’고 저 나름대로 결론을 짓게 됐어요.”
하 동문의 시집 『꿈을 만드세요』는 이렇게 세상에 나오게 됐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꿈은 마음에 새 계절과 새 달력을 안겨준다. 시집의 표제작인 「꿈을 만드세요」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 푸르고 하얗던 마음 정열로 불태워 // 새 희망 사라진 채 / 나이 들고 늙어갈 때 / 꿈을 꾸세요 // 꿈을 만나세요 / 꿈을 만드세요”
다시 질문을 던졌다. 작사가가 됐고, 문학 공부도 하게 됐고, 시집도 냈으니 어느 정도 꿈을 이룬 게 아니냐고. 그는 앞으로도 계속 꿈을 만들어가겠노라고 대답했다. “앞으로 문학 공부를 더 깊이 하고 싶어요. 포기한 미술의 꿈을 그리며 사진 공부도 계속할 것이고요. 자연과 사물, 이미지를 통해 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는 의외의 대답을 덧붙였다. “꿈을 다 이뤘다고 해도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단지 살아가는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이제는 꿈을 이루고 싶다는 것보다 꿈을 내 품에 늘 안고 사는 게 꿈이 됐어요. 꿈을 잃는다면 그것은 인생이 끝나는 것 아닐까요?”
올해 66세가 되는 하 동문은 2016년부터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 원래는 2020년 5월에 개인전을 열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로 한 해 더 미뤘다. 그간 써왔던 글과 사진을 묶어 단행본도 낼 계획이다.
“꿈이란 자신이 살고 싶은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꿈은 어려운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삶이 다 다르듯이 꿈도 자기에게 맞는 게 있어요. 하지만 꿈이 뭔지 모르기도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해서, 나는 안 된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좌절하기도 하지요. 그럴 때 필요한 게 평생학습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방송대가 곁에 있다는 건 축복”
하 동문은 지금도 무엇인가 몰랐던 걸 배우는 게 즐겁다고 말한다. 생활에 쫓기면서도 방송대 공부를 거뜬히 해낼 수 있었던 것도 ‘배우는 걸 즐기는’ 그의 성격이 작용했다. 온라인으로 공부하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일반 대학에선 불가능한 방송대만의 ‘특별한 매력’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슬하에 1남 1녀를 둔 하지영 동문. 아들 이현국 씨는 영국 허더스필드대에서 뮤직 테크놀로지 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벌써 문하에 여러 박사를 배출했다고 한다. 딸 이현애 씨는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로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며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방송대를 선택한 이들에게 이런 당부를 빠뜨리지 않았다.
“평생학습은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주는 최선의 선물입니다. 남을 의식하지 마세요. 이왕에 배우는 거 즐겁게 배우세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방송대가 우리 곁에 있다는 건 큰 축복입니다. 방송대 공부는 결코 쉽게 할 수 없습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마세요. 이슬에 젖듯 책에 젖어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고 말과 행동에 자신이 생깁니다. 힘들었던 과정들마저도 자랑스럽게 추억되며 보석처럼 소중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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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yil***
    멋지십니다. 저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막상 글을 써 보니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니 또 발동이 걸립니다. 늦었다고 생각 하지 않고 늘 도전하면서 꿈을 키워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또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용기를 갖게 합니다. 꿈을 갖게 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1-02-28 02:18:40
  • lsge***
    1996년 고1 교고서에 실린 최초의 대중가요라고 되어 있네요. 귀한 기사 잘 모니터링했습니다. 감사헙니다
    2021-01-07 11:08:12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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