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지평을 넓히는 방송대인

박인주 제니엘 그룹 회장은 7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위로 누이 둘이 있으니 실질적으로는 장남이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머리가 비상했던 그는 경북 포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를 짓던 부모님 슬하를 벗어나 부산으로 ‘유학’을 떠났다. 태광산업에서 일하던 누이 집 방 한켠에서 숙식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앞가림을 했다. 모 회사 경리부장의 자녀를 과외하던 중 그의 눈에 들어 졸업과 동시에 취직했고 돈도 제법 벌었다. 그러다 군생활을 김포공항에서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확 트였다.

 

“공항에서 군생활을 하다 보니 외국인 사업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제대하고 1982년에 대한항공 자회사에서 일하며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겪으면서 외국도 많이 다녔죠. 보스턴에 갔을 때였습니다. 공항에 있는 작은 물류회사였는데 매출이 어마어마하더군요. 들여다보니 직원이 풀타임 근무자가 아니더라고요. 가정주부부터 하버드생까지 자기 신분과 일할 수 있는 시간을 기록하면, 그걸 데이터화해서 일을 배분해주는 구조였어요. 30년 전에 공유경제의 시작을 접한 거죠.”

 

국내 아웃소싱 산업의 선구자
‘아웃소싱’(기업 업무 일부를 제3자에 위탁해 처리하는 방식)의 개념이 머리를 강타한 사건이었다. 미국 등 선진 각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아웃소싱을 활용한 인재파견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맨파워·켈리·올스텐스사 등 인재파견업 선두기업들이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하는 100대 서비스기업에 들어갈 정도였다.

 

고민하던 박 회장은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 아닐까요? 한 사람이 500만 원을 버는 것보다, 부인도 일하고, 아이들도 일하면서 1천만 원을 벌면 더 부유해지겠죠. 이런 시스템이 사회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모든 사람이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1996년 제니엘을 설립했습니다.”

 

‘인재를 통한 가치 경영’. ‘일하고 싶은 사람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행복한 사회 구현’은 제니엘의 핵심이다. ‘제니엘’의 사명은 ‘Zenith Business Elite’. 최고의 업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CI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해 미래지향적 기업가 정신을 담았다.

 

시작은 신용카드 배송이었다. 은행원이 고객에 신용카드를 전달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오토바이 10대를 구입해 최단 시간에 고객에게 신용카드를 전달했다. 입소문이 나며 카드사들의 요청이 줄을 이었고, 순식간에 서울시 모든 구를 접수했다. 아웃소싱을 활용한 최초의 신용카드 배송이었다.

 

오토바이 10대로 시작해 1만3천여 명 직원 일하는 회사로 성장

기세를 몰아 아웃소싱 업체로는 처음으로 한미은행(현 씨티은행) 채권관리 아웃소싱도 수주했다. 당시 금융권은 채권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퇴직경찰이나 전문조직을 동원한 강압적인 채권회수 방식은 사회적으로도 물의를 일으켰다. 박 회장은 컨설팅을 통한 채권 해결방법을 제시했다. 6명의 텔레마케터와 방문직원을 철저히 교육해 현장에 투입했고, 자체 직원 실적의 3배를 달성했다. 제니엘은 1년 만에 13개 은행의 채권관리 직원을 아웃소싱하며 도약의 길을 걸었다. 박 회장은 “콜센터의 시초였어요. 은행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에 국세청, 경찰청도 콜센터를 도입했죠. 주부와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늘려준 계기가 됐습니다”라면서 “넷플릭스나 아마존, 에어비앤비처럼 아웃소싱 산업은 앞으로 무한대로 확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제니엘의 성장을 지켜본 한동우 전 신한그룹 회장은 “아웃소싱의 개념조차 생소하던 1996년, 박 회장은 한국의 고용시장에 대한 혜안을 갖고 제니엘을 설립해, 신한은행 카드 배송업무부터 연체관리 등을 협력해 오늘의 신한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 중추적인 줄기 역할을 했다”고 평한 바 있다.

 

1996년 설립된 아웃소싱 전문기업 ‘제니엘’은 IMF 한파를 단기필마로 돌파하며 성장 가도를 달렸다. 현재 제니엘그룹은 의료·콜센터·제조생산·유통·물류 아웃소싱, HR컨설팅, 교육컨설팅, 고용지원서비스, 헤드헌팅 등 토털 아웃소싱을 하는 종합 인재고용서비스 기업으로, 11개 법인 계열사와 1개의 비영리재단에서 총 1만3천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연매출은 4천160억 원. 구직자와 구인기업 간 맞춤형 다리를 놓아온 제니엘이 길러낸 인재들은 삼성, 현대차, 포스코, 한국전력, 우리은행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부터 중소기업까지 500여 개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25년 업력 동안 부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직원 일부가 신용카드를 해외로 빼돌리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사업을 접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은행과 주변의 도움으로 이겨냈다. 그래서 박 회장은 조직이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이라고 믿는다. 제니엘 그룹 임원은 모두 그와 20여 년을 함께 한 이들이다. 제니엘의 모토가 ‘인재를 통한 가치 경영’인 대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전문가 시대 대비해 최고 인재 키워야
좋은 인재를 만들기 위한 박 회장의 경영철학은 확실하다. “앞으로는 전문가 시대에요. 미래 시대에 인재는 최고가 되는 길밖에 없거든요. 그래야 어디에 종속되지 않고 실력만으로 어디든 갈 수 있죠. 직원을 전문가로 키워야 합니다. 사람을 조직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말고, 잘 하도록 인사 이동을 통해 역량을 자꾸 키워줘야죠.”

 

2012년에 쓴 『흔들의자에서 일하지 마라』(페이퍼로드)에서 박 회장이 일을 대하는 방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흔들의자 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앞뒤 움직임은 많지만, 사실 어느 곳으로도 이동하지 않아 실속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굶주려 먹이를 찾는 짐승과 같다. 같은 시간 일해도 집중력 있게 연구하고 알아내는 어려운 일을 해낸다.”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최고의 기량을 발휘함은 물론 업무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후배를 양성하는 데 노력하는 직원에게는 ‘제니엘 명장’의 칭호를 부여한다. 2011년부터 매년 3~5명을 선정하고 있으며, 올해까지 38명이 선정됐다.

 

아웃소싱 인력 파견으로 끝이 아니다. 노무법인 ‘지상’을 통해 중소기업이나 아웃소싱 관련 기업에 산재보험, 부당노동행위 등과 관련해 문턱 낮은 노무 컨설팅도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 사원에 해외연수 장려...고용노동부 장관상 수상

약한 이웃에 대한 관심도 잊지 않았다. 2011년 고용 취약 계층인 장애인의 안정적인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해 ‘제니엘플러스’를 설립했다. 처음엔 사무보조, 카드 분류 배송 등 단순업무를 수행하는 20여 명 안팎의 장애인 사원이 고작이었지만, 헬스키퍼, SNS 홍보, 카페테리아 사업에 진출하면서 83명의 중증 장애인을 포함해 102명을 고용하고 있다(2019년 기준). 장애인 우수 사원 해외연수 등 장애인에게 자립과 자활 기회를 제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에는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인증을 획득했다. 이 밖에도 여성 취업을 지원하는 ‘아산여성새일센터’, 청년과 중장년층의 취업을 돕는 ‘제니엘푸른꿈일자리재단’ 설립 등으로 지난해 제10회 행복더함 사회공헌 캠페인 고용노동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박 회장은 인공지능과 바이오기술을 융합한 노인 거주단지 제니엘타운을 중심으로,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글로벌 아웃소싱 기업으로 도약을 꿈꾼다. 2030년 목표는 매출 5조다.

 

“방송대는 친정집”
박 회장은 방송대 설립 초기 행정학과에 지원했다가 1983년 경영학과를 다시 찾았다. 때늦은 공부로 매주 토요일 스터디에 참가하던 게 직장 동료들의 시기를 사 과장 진급도 동기들보다 2년 늦었다. 제니엘 성장에 조언을 준 경영학과의 백삼균 교수와 김종성 교수와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손진혁 교수(현 한국자치경영연구소 소장)는 제니엘에서 10년 넘게 직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주기도 했다. “방송대는 친정집”이라 말하는 그는 발전위원회를 창립 시기부터 지키고 있으며, 동문으로서 사회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 리더스클럽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방송대에서 받은 혜택을 조금이나마 돌려주고자, 제니엘 직원이 방송대에 등록하면 학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그가 방송대 후배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평생교육시대입니다. 가장 좋은 게 방송대 아닌가요? 이 학과 끝나면 다른 학과에서 공부하고, 끝나면 또 하고요. 한꺼번에 두 학과를 해도 되죠. 평생교육시대에, 방송대가 최고의 시스템을 갖춘 좋은 대학이란 걸 알고, 학교를 많이 사랑해주세요. 어디서든 늘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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