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지평을 넓히는 방송대인

육군 제3사관 19기로 1982년 소위로 임관해 3군단 참모장, 보병학교 교수부장, 55사단장, 합동참모본부 민군작전부장, 수도군단장과 지상작전사령부 부사령관, 8군단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탁월한 작전지휘 역량과 조직관리 능력을 갖췄다는 평을 받아왔다. 현재는 육군의 정책연구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돼 근무하고 있다.
요즘 부쩍 쓰이는 말로 ‘OO부심’이란 말이 있다. 일부 명사 뒤에 ‘~부심’을 붙여 그것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과 열정을 일컫는 신조어다. 8군단장 직책을 마지막으로 수행하고 지난해 2월 전역한 이창효 예비역 중장도 ‘군부심’이 대단하다. 전역 이후에도 육군의 정책연구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돼 38년간의 군 생활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고 있다. 그런 그에게는 또 하나의 부심이 있다. 바로 ‘방송대부심’을 갖고 있는 것. 사실 그가 방송대에 자긍심을 갖게 된 것은 몇 년이 채 안 됐다고 한다. 류수노 방송대 총장을 검정고시 총동문회에서 우연히 만나 얘기를 나누다보니 류 총장이 방송대 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지역별 동문회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러면서 모교인 방송대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에 새기게 됐다. 방송대를 통해 배움의 길을 연 이 동문은 용인대 통일안보정책학과 석사를 취득할 수 있었고, 지금은 같은 대학에서 경영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배움의 길 열어준 방송대
이 동문에게 방송대는 배움의 길을 열어준 통로였다. 당시 제도로 보면 3사를 졸업할 경우 전문대학 졸업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좀더 공부를 하고 싶다면 4년제 대학 3학년에 위탁생으로 편입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으나 시기를 놓쳤다. 그런 바람에 직업군인의 길을 가면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방송대가 최상의 선택이었다.

이 동문의 원래 꿈은 직업군인이 아니었다. 3사 생도 시절에 훈육관이 어느 날 각자 인생의 좌우명을 작성해 보라고 했는데 이를 계기로 생각이 달라졌다. 며칠 간 고민하다가 ‘조국을 위해서는 목숨을, 친구를 위해서는 의리를, 사랑을 위해서는 정열을’이란 내용으로 작성했다. “이것을 책상에 붙여놓고 매일 눈으로 보고 뜻을 느끼다 보니 국가안보에 대한 생각도 새로워지게 됐어요. 이런 가운데 전술학과 일반학 등을 배우는 과정에서 흥미로움이 느껴지는 부분도 생기더라고요. 게다가 야전에 근무 중인 선배님들의 성공적인 군대 생활도 접하면서 장교로서 직업군인의 길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은 것 같아요.”

이후로 5년여 시간이 흘렀다. 이 동문이 방송대에 입학한 시점은 88올림픽 전 해인 1987년. 소위 임관 후 전방 생활을 마치고 대위 계급장을 달고 해안중대장 직책을 수행하고 있었다. 공부를 빨리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이듬해에 올림픽이 있어서 대테러 대비 해안작전과 경계강화 등으로 상당히 바쁜 과업들을 수행해야 했어요. 공부를 계속 하지 못하고 중단하게 됐죠. 이후에도 소령 진급하고 전방사단으로 나가 대대, 연대, 사단의 작전 관련 과업 위주로 가장 바쁜 직책을 수행하게 되다 보니 도저히 공부할 여건이 안 되더라고요.” 마침내 1999년 10월, 중령 진급하고 후방 지역으로 이동해 대대장으로 보직 임명을 받으면서 다소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군대와 경영학의 만남, 어떤 시너지 낼까?
사실 그가 경영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기업가정신을 배워 부대조직 운영에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업 운영의 성패는 오너의 역할이 중요한데 군에서도 지휘자나 지휘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당시 그가 품었던 생각이다. “사람이 조직경영의 필수 요소이면서 사람에 의해 조직이 탄생되고 운영된다고 보거든요.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군에서도 유형전투력에 해당되는 장비, 물자, 병력 등이 있는데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병력이에요.” 다시 말하자면 아무리 우수한 장비를 갖추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병력이 조직화되고 팀워크가 발휘돼야 유사시 승리할 수 있으므로 경영학에서 배울 수 있는 조직관리나 인사관리 등을 접목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학업과 직장을 동시에 잡아야 하는 그의 방송대 생활은 어땠을까? 국민의 안전과 국가를 수호하는 군인 입장에서는 방송대 졸업장을 따는 과정이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군인 특유의 정신력과 열정을 발휘해 공부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중간고사를 보는 기간이었어요. 일요일이 시험날이었는데 금요일에 유격훈련을 마치고 40km를 밤새 행군해서 토요일 아침에 부대로 복귀하는 일정이었죠. 마지막 시험공부를 해야 했는데 그럴 수 없었어요. 대대장이라고 지휘관 차량에만 타고 장병들만 행군시킬 수 없었던 까닭이죠.”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완주를 하려면 장병들과 함께 걸으면서 힘든 전우들의 사기를 북돋워줘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시험 볼 예상문제와 답안을 만들어 행군을 하면서 틈틈이 보는 것이었다. “제 모습을 본 인사장교가 같이 행군하면서 말을 걸었던 때가 떠오르네요. ‘대대장님, 지금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지금도 대대장 시절 함께 동고동락하며 끈끈한 전우애를 나눈 이들과 가끔 모임을 할 때면, 당시 행군하며 공부하던 그 열정에 감동했다는 얘기를 나누곤 한답니다.”

독학으로 공부하면서 힘든 때도 많았다. 당시 가장 힘들었던 과목 중 하나가 ‘재무회계’였다. 용어들이 생소할 뿐만 아니라 숫자로 표현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등을 들여다봐야 했는데 혼자 이해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 하지만 당시 자녀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어서 낮에 일하고 밤에도 공부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지금도 흐뭇하다고 했다. 

자기개발 원하는 ‘직업군인’ 주목해야
그는 방송대의 미래를 위한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방송대 학과별로 가르치고 있는 과목이 학생들에게 어떤 효용성을 줄지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래 먹거리 산업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지금 학생들이 향후 무슨 직업을 갖게 될지, 학문적 지식을 직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등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어요.”

입학지원자 감소에 따른 대학의 생존 문제도 방송대 동문이자 경영학을 공부한 그가 염려하는 대목이다. 방송대와 같이 원격교육 중심의 수업을 하는 사이버대학과 차별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입학생을 기다리는 수동적 홍보방식에서 벗어나 고객(학생)들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전략을 짜달라고 주문했다. 그가 몸담은 군대에서도 잠재적 입학자원이 많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군에서도 부사관들이 고등학교나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오는 인원이 꽤 많아요. 자기개발을 위해 학위를 받고자 노력하는 직업군인을 공략하면 어떨까 싶어요. 대학을 운영하는 총장님이 직접 부대를 찾아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이들에게 작은 혜택을 준다면 직업군인들도 방송대를 많이 선택할 것으로 믿습니다.” 


3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