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괴검사는 교량 용접 상태, 도시가스 배관 균열 등 산업시설을 파괴하지 않고 검사하는 기술입니다. 재질과 형상에 따라 엑스레이, 초음파, 자장, 와전류 등 다양한 검사방법을 이용하죠. 병원에 의사가 있는 것처럼 비파괴검사는 국가 주요 산업시설물에 대한 산업의사라고 할 수 있어요.”
손태순 대한검사기술 대표(69세)는 국내 비파괴업계 1세대 엔지니어 출신 CEO다. 비파괴검사 업계에 입문한 건 고3 때다. 실습을 나갔던 삼영검사엔지니어링에 취업했다가 군 제대 후 재입사했다. 1987년 대한검사기술 설립 당시 주주로 참여했다. 2005년부터는 대표이사를 맡아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고 있으며, 직원 180여 명에 연매출 150억 원 수준의 중소기업으로 키워냈다. 1971년에 첫발을 내디뎠으니 올해로 50년. 그가 비파괴업계에 몸담은 기간은 어느덧 반세기에 이르렀다.
열사의 나라에서 인정받은 기술력
국내 비파괴검사 기술 수준은 일본, 미국, 독일 등 최정상급 기술 보유국과 견줘 봐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조선소, 원자력 및 화력발전소, 석유화학공단, 방위산업체 등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한검사기술은 비파괴검사 업체로서는 드물게 1991년 부설 R&D연구소를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검증된 기술력은 신뢰감을 상승시켰고, 이는 곧 실적으로 이어졌다.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관급공사를 비롯해, 도시가스 및 열배관공사, 발전소 및 석유화학, 플랜트 공사 분야의 비파괴검사를 주도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알제리, 싱가폴, 말레이시아 등지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며 해외시장도 공략한 지 오래. 그는 “공업화를 일찍 이룩한 우리나라는 해외 발주 물량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데, 특히 열사의 나라인 중동에서 한국의 위상이 대단하다”면서 “한국인의 기술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검사 단가가 높아도 한국을 선호한다”라고 귀띔했다.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 철저하게 검사하지만, 한번 사고가 발생하면 국민 안전이 즉각적으로 위협받는 원자력 분야가 품질 확보에 가장 신경쓰는 분야다. 기능사, 기술사, 기사 등 자격증을 획득하고도 정기적으로 보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한검사기술은 직원들에게 동종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하면서 기술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비파괴검사가 국가에 미치는 중요성으로 첫째, 신규 플랜트 용접부의 결함을 기준 이하로 낮춰 신뢰성을 향상하고, 사고를 예방하며 수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사용 중인 시설물의 안전 가동을 위한 모니터링 검사를 함으로써 누설로 인한 환경오염 방지와 대형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을 꼽았다.
손 대표는 외유내강형이다. 고3 담임교사와의 담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습 갔던 회사에 같은 학교 학생 10명이 원서를 냈고, 5명이 면접을 봤다. 면접시험에 성적이 좋았던지, 공부는 중간이었지만 혼자 합격했다. 학교에 실습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뜻밖에 담임교사가 거절했다. 1년 치 공납금을 내지 않으면 실습을 보내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의 실습 월급은 1만2천 원. 당시 5천 원이던 평균 실습 월급의 두 배를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그는 담임교사를 찾아가 첫 달 월급을 받아서 꼭 낼 테니 보내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승낙을 받았다.
(지면 분량 넘치면 온라인)이때부터 시작된 기능공 인생이지만, 그는 불의한 일을 당하면 주저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연소 현장 소장으로 일하면서 대졸 사무직의 월급이 현장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회사에 월급을 시정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순해 보이지만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는 불같이 목소리를 낸 그를 두고 지인들은 ‘유비’라고 불렀다.
후배 권유로 늦깎이 방송대 공부
울산, 여수, 창원 등 지방 생활을 하면서 ‘내 인생의 마지막 대학’이라는 생각으로 1982년에 창원기능대학(현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에서 공부했지만, 2004년 후배의 권유로 방송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성남시학습관 학생회장?동문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늦깎이 대학생활을 했다. 총학생회장 시절 경기지역대학 체육대회에서는 외부 후원 없이 그의 지원만으로 풍성하게 치러냈다. 당시 매주 만났던 성남시학습관 스터디 모임 멤버들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으며, 맏형 역할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방송대가 내 삶을 업그레이드해줬다”면서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었는데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졸업할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다만 현업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염려로 방송대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은 그에게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손 대표는 봉사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다. 업계를 위해서는 2012년부터 한국비파괴검사협회장을 맡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5천여 개 법인이 소속된 서울시상공회의소 서초구상공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건 개인 시간을 빼앗기지만, 결국 나에게 복이 돌아온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한다. 늘 긍정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일까. 내년이면 고희(古稀)를 맞는 그이지만 여전히 50대로 보일 정도로 젊다. 그는 가끔 지하철을 탈 때면 역무원이 신분증을 요구한다며 웃었다.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회사 영업부에서 수주를 받았다는 전화가 올 때가 있다. “회장님 선견지명”이라는 직원들에게 그는 “자네들 덕”이라며 공을 돌린다. 입찰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절대 직원을 탓하지 않는다. 그는 “리더는 직원들이 종이 한 장 왜 안 아꼈느냐고 간섭하면 안 돼요. 알아서 하라고 자유를 주고, 물어보면 경험을 이야기해 주죠”라며 “열심히 봉사한 만큼 하늘이 알아주는구나 하면서 하늘 보고 절 한 번씩 하죠”라고 말했다. 한 업종에 반세기를 바치며 국가 주요 산업시설물들의 안전과 품질을 확보하는 데 중추적인 산업의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으며,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신기술 창출 및 실용화로 국가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그는 지난해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쟁이는 굶어죽지 않는다”
34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대한기술검사지만, 청년 세대가 중소기업을 꺼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한검사기술은 제조업이 아닌 기술용역업. 그는 “업무 특성상 외근을 가면 장비를 짊어지고 현장을 다녀야 해요. 다리 검사는 밤에 기차가 다니지 않을 때 4시간을 하고요, 지하철은 운행을 끝낸 새벽에 굴속에 들어가서 레일을 점검하죠. 이런 거 안 해도 먹고 살 게 많은 데 왜 하느냐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비파괴업종은 기술서비스용역업이라 정부에서 외국인 노동자 채용을 금하고 있어 청년 세대의 유입이 순감하고 있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옛말에 ‘쟁이는 굶어죽지 않는다’고 했어요. 우리 업계에도 80세 노인이 현역으로 일할 정도로 고령자가 많아요. 자격증, 면허증이 있으니 오히려 대우받죠. 사무직은 보통 50대 중반이면 퇴직하는데, 우리는 정년이 없는 직업입니다. 건강하기만 하면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도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어요.”
코로나19로 산업 전 분야가 타격을 받고 있다. 비파괴업계도 올해 목표를 보수적으로 낮춰 잡았다. 하지만 손 대표는 멈추지 않는다. 현재 개발 중인 기술로 더 큰 도약을 차분히 준비 중이다. 그는 ‘스스로 최선을 다하자’는 좌우명에 따라 살면 행운이 올 것으로 믿는다. 준비된 손 대표의 지치지 않는 도전이 지금 행운을 부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