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세상을 바꾸는 방송대 사람들

“또 학생이야?
모두 가난했던 60년대. 공부해야 살 길이 열린다는 말을 들었던 시절이다.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은 고교 시절을 친구들과 밤을 지새우면서 공부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하면서도, 친구들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정을 키워 갔다. 그 중 한 친구가 후일 칸트 철학의 대가가 된 백종현 서울대 명예교수(철학과)다.

 

1970년 경희대 의대 치과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 와서도 공부를 많이 해야 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대학 생활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살기로 결심했고, 실천으로 옮겼다. 마치 공부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무작정 공부에 매달렸고 매진했다.

 

“또 학생이야?”
“예, 아저씨. 또 접니다.”

 

늘 이른 새벽 도서관의 수위를 깨우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래서 매일 ‘또?’라는 소리를 들었다. 문을 닫을 때도 항상 마지막에 남은 학생은 그였다. 어지러운 시국이었지만, 휴강이든 아니든 상관 없었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은 항상 도서관이었다.

 

영등포와 강남 아이들 치아 비교해 보고 제도적 차원 고민 시작해
치과 개원 얼마 후 영등포초등학교에서 학생 신체검사를 위탁받아 교의 활동을 시작했다. 첫날부터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의 치아 상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썩은 이 한두 개는 예사였다. 반면 비슷한 시기 강남에 있는 초등학교로 교의 활동을 나갔는데,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썩은 이나 염증을 가진 어린이를 찾기가 힘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이고 소집단적인 차원의 봉사활동을 뛰어넘는 보다 장기적이고 폭넓은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그가 의사가 된 직후 제도적 차원의 문제 해결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첫 걸음이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그의 치과는 점점 환자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방송국과 가깝다 보니 당시 최고 가수였던 현철, 송대관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이 단골이 됐다. 특히 송골매의 보컬로 활동했던 구창모의 소개로 얼떨결에 TV에 출연하게 되면서 병원은 승승장구했다.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의 단골손님으로, 방송 3사를 종횡무진하며 얼굴을 알렸다.

 

1985년부터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로 지냈다. 10년 가까이 인연이 깊어지면서 정치적인 조언을 하거나 시사 문제를 토론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1992년 대선에서는 방송국 인맥을 이용해 김대중 당시 민주당 후보 홍보를 자처하기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참패한 김대중 당시 후보가 영국으로 떠나며 정치계와는 당분간 거리를 두게 됐다.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다시 대선에 도전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진료는 줄였지만,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돕는 등 사회 활동으로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야 하는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DJ의 네 가지 가르침
2004년 열린민주당 후보로 나선 그는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17대 국회의원(부안)으로 당선됐다. 당선이 되고 가장 기뻐해준 사람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동교동으로 불러 무려 다섯 시간을 초선 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가르침은 네 가지였다. 첫째, 정치는 오롯이 정책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 둘째, 정책의 전문성을 이루기 위해 상임위원회를 바꾸지 말 것. 셋째, 언론을 쫓는 정치인이 아닌, 언론이 따르는 정치인이 될 것. 넷째, 아무리 바빠도 공부하는 의원이 될 것이었다.

 

의사 출신 의원이 많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만, DJ의 충고를 새기며 그는 전문성을 인정받아 초선 시기 4년간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04년 국회에 입성한 후 그동안 공부해왔던 저출산고령사회에 대한 대비를 위해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과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발의했다. 그의 입법 활동은 거침이 없었다. 17대 국회에서만 총 35건의 법률안을 발의했고, 이중 12건이 국회를 통과했다. 공약 대상 시상식을 주최하는 법률소비자연맹은 그를 18, 19대 국회의원 공약 이행 평가에서 우수 국회의원으로 연거푸 선정하기도 했다.

 

안전한 먹거리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그는 2021년 3월 15일 농수축임산물의 수급·안정부터 유통구조 개선, 수출진흥, 식품산업 육성을 책임지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신념으로 현장을 누비며 식량안보 강화와 농어민 소득증진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결과 식량 전략 비축기지 건설 검토를 위한 예산이 2022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는 성과를 거뒀고, 최근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6년 만에 A등급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는 “의식주 중에 먹는 것은 대체가 불가능한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라면서 “곡물의 80%를 수입해 먹는 우리나라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식량안보를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가 화두”라고 강조했다. 그는 비축기지 조성지역으로는 새만금 간척지가 최적지라고 단언했다. 그는 “새만금 간척지는 쌀, 밀, 콩의 주산지이며 농산물 저장·가공 수요도 많고, 식품제조업(클러스터), 유관기관 인접 등 배후 기반을 갖추고 있다”라면서 “해상 운송이 용이하고 수심이 깊어 대형 선박의 접근이 가능한 항만 건설을 통해 동북아 식량 허브로 육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4차 산업혁명 등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식품산업 데이터 유통, 거래 생태계를 구축하는 ‘농식품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농식품산업 5개 분야에서 188종의 데이터를 개방했고, 전국 도매시장가격을 비교하는 ‘농산물 물류정보’ 등 거래소 고유 혁신서비스(3종)도 제공하고 있다. 올해는 본격적인 플랫폼 정착을 위해 데이터 개방을 295종으로,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도 6종으로 확대·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 달라져”
김춘진 사장은 방송대와 2010년에 연을 맺었다. 그가 다시 공부하기 위해 방송대를 찾은 건 “늘 공부하라”고 말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이다. 법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다. 졸업은 2014년으로 조금 늦었다. 3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법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방송대를 찾았다고 했다. 재학 중에는 OUN 테마 특강 ‘기후변화에 따른 보건의료 정책의 방향’을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개교 50주년을 앞둔 방송대에 “지금은 온라인으로 강의하는 학교도 많아졌기 때문에 방송대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평생교육 관점에서 방송대가 우리가 살아가는 평생에 걸쳐 재충전하고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도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결국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면서 “제가 방송대에 와서 훌륭한 교수님들과 동문들을 만나 의미 있는 일들을 많이 했던 것처럼, 후배들도 방송대에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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