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지평을 넓히는 방송대인

“면이라는 게 참 예민해요. 별거 아닌 것 같아서 대충 밀가루 반죽해서 뽑으면 될 것 같은데, 갈수록 어렵거든요. 특히 면을 좋아하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밀가루의 글루텐 때문에 혹은 당뇨 같은 질환 때문에 먹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이 드실 수 있는 건강한 면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칼국숫집 딸, 100억 매출 생면제조업체 대표 되다
경북 영양 출신인 권 동문은 어린 시절 부친을 여의었다. 모친이 재래시장 한편에서 국수, 국밥 장사를 하며 오남매를 길렀다. 선생님을 꿈꿨던 소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20대에는 어묵 유통업에서 일을 시작했다. 틈틈이 모친의 칼국숫집 일을 도우며, 시장 안에서 다른 상인들이 판매하던 어묵도 눈여겨봤던 덕분이다. 그렇게 제품 유통에 대한 현장 경험들을 쌓아가던 그는 생면에 눈을 떴다. 면 종류에는 생면, 압축식 가공 공정의 숙면, 면을 건조해서 말린 건면 등이 있다. 생면은 반죽한 상태로 만들어진 면으로 다른 가공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면의 식감이 다른 면들에 비해 부드럽고 쫄깃함이 더하고 조리도 2배 이상 빠르다. 이것이 1990년대, 건면 일색이던 시장에서 그가 생면에서 희망을 찾은 이유다.

 

“소득수준 향상과 함께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먹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도 급변하게 되었죠. 이에 따라 우리나라 외식업이 상당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는데 그 중 면에 관련된 외식업과 시장세는 가파른 성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라면 일색인 면 시장의 한계가 보였어요. 다양성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성향을 고려해보면 라면과 건면을 탈피한 맞춤형 생산의 생면이 면 시장을 주도할 수 있겠다는 것을 직감했죠.”

 

그의 예상대로 생면 시장은 급성장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들도 건면에서 생면으로 취급 품목을 전환했다. 2년여의 준비 끝에 1994년 제면공장과 함께 ‘다선유통’을 설립했다. 하루 서너 시간만 자면서 제품 개발과 거래처 확보에 매진했다. 면 제조과정에서 한 번의 실수가 생겨 생산 일정 전체를 망치면, 납품을 기한 내에 마치지 못하기에 밤낮없이 고된 날들의 연속이었다. 서른 중반을 넘겨 만난 남편은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다선에서 제품 연구개발과 공정 담당으로 힘을 보탰다.

 

생면 판매가 급증하면서 다양성을 요구하는 고객들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면서 그는 ‘맞춤형 소량생산’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대량으로 면을 생산하는 대기업과 달리 수제방식 병행을 고수하는 그의 방식은 현장에서 통했다. 작은 분식점부터 외식업체, 대기업까지 다선에서 생산한 제품을 납품하는 곳은 현재 7천여 개가 넘는다. 그는 소량 제작 주문에도 최선을 다한다. 고객에겐 자가제면을 하다 기계에 손이 끼어 다칠 수도 있으니, 자가제면한 면 못지않게 질 좋은 면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면을 만들 시간에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더 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모두가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들이다.

 

“저 역시 작게 시작했고, 그때의 절실했던 마음을 기억해요. 정말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만족시키는 면을 공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 보내면, 그 마음을 고객도 느끼는 것 같아요.”

 

어음 거래를 하던 사업 초기에는 제품을 납품하고도 제때 수금하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어 마음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국내 1위 외식사업자로부터 제품 생산을 의뢰받을 정도로 제품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주식회사로 전환한 생면·제조유통업체 다선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경기도 이천에 1,355㎡(410평) 규모의 제조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량 일괄생산 및 식당·업체별 맞춤형 소량생산이 가능한 두 개의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초창기 하루 100kg이었던 면제품 생산량은 20톤으로 늘었다. 우동과 메밀국수, 막국수, 칼국수 등 생면제품 외에도 다른 제품들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칼로리가 낮고 소화가 잘되는 보리국수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30년 동안 지켜온 ‘최고의 식품을 정석대로 만들자’라는 소신이 다선 제품들에 스며 있다. 또한 코로나19 사태 이전 불황에도 1인 가구 급증에 따른 ‘가정간편식(HRM)’과 ‘밀키트’ 수요 또한 급성장할 것이라는 예상하여 이에 필요한 생산설비를 완비하고 지속적인 증설 등의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 방송대”
어느 정도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못 다한 공부에 대한 미련이 커졌다. 이번에도 공장을 듬직하게 지켰던 남편이 그를 도왔다. 서류를 준비해 그 대신 방송대에 입학원서를 내고 온 것. 2013년 경영학과에 입학하면서 방송대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식품산업 외길을 걸었지만, 어렵게 일군 회사를 어떻게 성장시킬까를 배우기 위해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주변에서는 “왜 들어가기는 쉬워도 졸업하기 어려운 학교에 갔느냐”며 성화였다. 평일에는 도저히 짬을 낼 수 없어, 스터디에 가입해 주말을 온전히 공부에 바쳤다. 그가 성수동에서 스터디를 하는 5시간 동안, 남편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을 데리고 한강 공원에서 땀 흘리며 놀았다. 2018년, 논문을 제출하고 그리던 졸업을 했다. 여세를 몰아 지금은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방송대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을 ‘학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계속 만나고 싶어 함께 공부하고 있다. 서울총동문회, 전국총동문회, 경기총동문회 등에서도 활발하게 교류하며, 방송대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권 동문에게 방송대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 곳이다. 그는 “방송대 입학 전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많았어요. 학교를 다니며 여러 선배, 학우들을 만나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됐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씩 변했죠. 그전까지는 무엇이든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면, 방송대에서 경영을 공부하고는 마케팅적 관점에서 시장의 변화에 민감해지려 했고 이에 따른 상황대처능력을 키우게 되었어요. 그리고 회사를 좀 더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효과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지 초점을 맞췄죠. 그리고 회사 내 중요한 조직관리를 위해 인재 육성을 위한 고민과 이에 따른 직원 복리후생 등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을 하게 됐고요”라고 말했다.

 

개교 50주년을 앞둔 방송대에 대한 주문도 뚜렷했다. “저희 때는 정보가 없어서 방송대를 못 왔다면, 지금은 방송대를 모두 알죠. 또 못 배워서가 아니라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방송대에서도 여러 학과를 옮기며 공부하는 학우들도 많아요. 그래도 아직 사각지대에서 소외된 학생이 많다고 봅니다. 특수학교라든가, 소외된 곳의 아이들에게 방송대를 적극 홍보해서 그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역할도 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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