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소확성,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과

줌맘리딩클럽의 회원들은 매일 아침마다 줌으로 독서 토론을 진행한다(아래 중앙이 김 동문).

새로운 지적 자극이 오면

몸이 저절로 반응하고 있었다.

어떤 현상을 접하면

라고 스스로 묻는다든가,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다.

몸으로 공부를 한다고나 할까?

 

나는 가난한 집 6남매의 큰딸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보증으로 돈을 모두 날리고 늘 가난에 시달리며 살았다. 동생들은 학교에 다녔지만, 나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마치고 중학교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또래 친구들은 중학교에 다니는데 나는 남의 집에 가서 일해 돈을 벌어야 했고,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인 16세부터는 봉제 공장에서 일했다.

 

집중력 떨어질 땐, 심호흡 습관

결혼하고서도 그리 편안한 삶은 아니었다. 두 살, 네 살짜리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남편이 갑자기 걷지 못하게 됐다. 병원에 갔더니 고관절 무혈성괴사라고 했다. 군에서 다친 곳이 악화한 것이었다. 아이 둘에 집안일과 생계까지 책임을 떠안게 된 내 삶이 너무 버거웠다. 만약 이때, 어렸을 때부터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려고 했던 습관을 유지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그 풍파를 이겨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20대 시절에 땄던 양장·봉제 기능사보 자격증으로 수선집을 운영하며 어찌어찌 아이들을 다 키울 수 있었다. 또한 남편의 건강도 조금은 회복됐다. 어느 정도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자 반백 년이 다 된 내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나는 늘 배움에 목말라 있었다. 결혼하기 전,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학교에 진학했지만, 졸업장을 받지 못한 것이 한스럽기도 했다. 언젠가는 제대로 마음껏 공부해보겠다는 예전의 다짐이 떠올랐다. 일단 컴퓨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을 땄다.

 

그 후, 평생 한으로 남았던 받지 못한 졸업장을 받기 위해 중졸·고졸 검정고시에 도전했다. 낮에는 수선 일을 하고, 밤에는 가게 문을 닫고 새벽까지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거의 40여 년 동안 학교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나만의 공부 습관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낮에는 일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할 수가 없었기에 일단 최대한 몰입해서 빨리 일을 끝내자고 생각했다.

 

공부에 대한 한과 배움에 대한 열정만으로는 공부 습관이 잡히지 않았다. 체력적인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면 가게 문을 닫고 인터넷 강의로 수학과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소진된 체력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럴 땐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다고 해서 체력이 다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1~2시간 정도 더 공부할 수 있는 집중력을 얻는 데는 좋은 방법이 됐다.

 

심호흡만으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때는 동경하던 방송대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다양한 카테고리를 눌러보기도 했다. 이를 통해서 방송대 소식뿐만 아니라 한 학기의 학사 일정 패턴을 알게 됐고, 반드시 대학에서 공부해야겠다는 동기도 생겨났다. 이것은 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또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10개월을 공부한 끝에 중졸·고졸 검정고시에 모두 합격했다.

 

대학 공부는 스터디 참석

2013년 드디어 방송대 생활과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 공부는 역시 중·고등학교 공부와는 차원이 달랐다. 단순히 암기해야 할 부분도 있었지만, ‘라는 질문에 대답을 내리지 못하면 서술형 출석수업시험을 치를 수도, 중간 과제물을 해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형성된 공부 습관 중 하나가 바로 나보다 잘하는 사람에게 물어보기.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 나타나면 그냥 책을 덮거나, 혼자 끙끙대다가 포기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흐지부지하는 것이 싫었다.

 

대학 4년 동안 매주 목요일 스터디에 참석해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동기들은 참 착했던 것 같다. 웬만하면 귀찮을 법도 한데, 내가 이해될 때까지 끝까지 설명해 줬다. 중간·기말 시험 기간에는 1주일씩 가게 문을 닫고 독서실에 가서 공부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4년 만에 방송대를 졸업할 수 있었다. 쉬운 일이 아닌데 대견하다며 주위 사람들이 나를 칭찬했다.

 

주위에서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에게 미안해서 계속 학업을 이어나가지는 않았다. 암투병하다 1년 전에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너희 엄마가 대학원 공부도 시작했으면 아주 잘했을 것이라고 한 말을 아이들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대학원에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독서하는 습관이 완전히 몸에 스며들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새로운 지적 자극이 오면 몸이 저절로 반응하고 있었다. 어떤 현상을 접하면 라고 스스로 묻는다든가,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공부를 한다고나 할까? 이런 공부 습관의 힘으로 나는 사회복지사, 상담심리사, 장애인활동지원사, 요양보호사 등의 자격증을 하나둘 취득했다. 시력이 더 감퇴하면 수선집을 접고 사회봉사 분야로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방송대 공부로 형성된 이런 공부 습관으로 나는 코로나가 시작되던 1년여 전부터 새벽 독서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 오픈 카톡으로 알게 된 줌맘리딩클럽은 줌으로 하는 독서모임이다. 한 달에 보증금 3만 원을 내고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5분 동안 발표하는 독서 모임이다. 처음 신입 회원으로 참가했을 때 100퍼센트의 참석률로 전액을 환급받았는데, 이제는 오랜 멤버가 돼 연회비 11만 원을 내고 참석하고 있다.

 

졸업 후엔 아침마다 독서토론 모임

지난번에는 류수노 총장님의 에세이집넘어져도 괜찮아에 관해 발표했다. 류 총장님의 삶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장면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그러자 클럽 회원 중에 한 분이 자기도 방송대를 졸업했다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나는 그분에게넘어져도 괜찮아한 권을 선물하기도 했다. 습관은 참 무서운 것 같다. 공부하는 습관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자격증도 따고 지역사회 봉사 활동도 나갈 수 있었을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습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인 것 같다. 이런 습관이 없었더라면 나는 공부도, 방송대 졸업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고,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공부하기 힘들다고 방송대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많이 힘들겠지만,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습관되면 괜찮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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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150***
    방송통신대학교가 나의삶을 바꾸었다.
    2021-12-22 20:41:03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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