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도서관은 없다. 그림과 책 창고형 도서관 말이다. 아마존에 책이 없듯이 도서관은 정보공장(information factory)이어야 생존할 수 있을 성싶다. 미래에는 교수 연구실에 누가 책을 쌓아놓을까 싶은 생각이 든 건 정년퇴임을 앞두고 연구실에 있던 책을 ‘무게로 달아(by volume)’ 폐지 처분하면서다.
구글 ‘톡투북스(talk to books)’에 들어가서 키워드를 입력하면 전 세계 원서가 그대로 뜬다. 누가 책을 살까 싶은 생각을 하게 하는 세상이 됐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명문 프렙 스쿨(prep school)인 쿠싱 아카데미는 도서관에서 책을 모조리 없애겠다고 오래전 발표했다. 문화적 격변의 이정표다. 도서관에 가보면 책장을 넘기는 사람보다 컴퓨터 스크린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오늘날 도서관은 인쇄물에 대한 접근성보다는 인터넷 접근성을 더 중시한다.
하지만 인터넷이 집중하고 사유하는 능력을 갉아먹고 있는 듯하다. 내 정신은 이제 인터넷이 떠먹여 주는 대로 정보를 받아들이려 한다.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는 정보의 급류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사고의 깊이는 주의력의 강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상은 변해서
퇴임 교수들이 애지중지 모았던 전공 서적을
도서관은 더 이상 받지 않는다.
오로지 폐지로 버려진다.
우리가 아는 도서관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하고 11년 후인 1450년 구텐베르크 성서를 출판했다. 1470년에는 처음으로 고전기 텍스트가 인쇄됐다. 인쇄술이 대대적으로 확산하던 시절인 1500년에는 단순히 읽고 쓸 줄만 알아도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롭게도 읽고 쓰는 능력은 필수가 됐을 뿐 아니라 전문성을 인정받기도 어려워졌다. 문자 해득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필경사들은 밥줄이 끊기고 말았다.
세계 최초이면서 세계 최대의 학술 도서관은 기원전 3세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졌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사망하자 그리스 장군 프톨레마이오스는 스스로 왕위에 올라 이 위업을 이뤘다. 도서관을 만든 이유는 지중해의 지적 중심지인 아테네를 능가하기 위해서였다. 책을 찾기 위해 아테네에 정박한 모든 배를 뒤져 전부 압수했다. 마침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소장한 두루마리 수는 무려 50만 권(오늘날의 책 10만 권에 달하는 분량)에 육박했다.
도서관장인 제노도토스는 최초로 책을 알파벳순으로 정리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시인이자 도서관학자였던 칼리마코스는 최초로 모든 그리스 문학작품의 자세한 서지 정보(저자, 저자에 관한 간략한 소개, 저작물, 책장 번호)를 제작했다. 그가 저술한 『피나케스(pinakes)』는 도서관에서 필수 참고 목록으로 사용했다. 단, 당시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갖춘 사람은 전체 인구의 20~30%에 지나지 않았음에 주의하고 봐야 한다.
고대 초기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일반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왕이나 왕을 모시는 예언가나 주술사가 신성한 말씀을 참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시설이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그 당시도 지식은 권력과 직결돼 있었다. 대중이 이해할 수 없어야 했고,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어야 했다. 그 후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종이와 잉크의 등장, 쉽게 쓸 수 있는 알파벳 도입, 그리고 사제 같은 지배계급이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도서관의 통제구조를 혁파하게 된다.
벨럼(vellum)은 고대 프랑스어 ‘벨렝(velin)’, 즉 송아지 가죽 또는 독피지란 뜻에서 온 유대어로 오늘날 책, 책의 권, 부피 등을 나타내는 볼륨(volume)의 어원이다. 이것은 글쓰기나 인쇄가 가능한 매끄럽고 오래가는 포유류 가죽을 뜻한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종이를 일컫는 다른 말이 ‘양피지(parchment)’다.
서기 5세기에 소문자가 발명돼 공간이 절약되고 읽기 편하게 단어 사이를 띄웠으며 구두법이 사용됐다. 8세기로 넘어갈 무렵에는 소문자 필기체가 표준이 됐다. 벨럼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아낄 방법을 찾아냈다. 이교도의 텍스트를 긁어내고 그 위에 기독교 텍스트를 다시 써넣는 일(palimpsest)이 비일비재했다. 키케로의 『국가론(De Rupublica)』은 일부만이 현재까지 전해지는데, 그 이유는 서기 400년경 제작된 필사본에다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구약 시편에 관한 글을 누군가가 덧썼기 때문이다. 오늘날 디지털 이미징 기법인 다중 스펙트럼 이미징 기술은 텍스트 복원작업을 가능하게 한다. 이 기술이 오히려 도서관에서 책을 퇴출하고 있는 역설을 낳고 있다.
종이책의 발명은 세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인쇄술로 대량의 종이책을 찍어낸 것은 과학혁명의 필요조건이기도 했다. 장서 규모와 비례하는 도서관의 크기는 대학의 권위를 떠받치는 상징이라 여겼다. 세상은 변해서 퇴임 교수들이 애지중지 모았던 전공 서적을 도서관은 더 이상 받지 않는다. 오로지 폐지로 버려진다. 우리가 아는 도서관은 종언을 고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도서관이 역사를 잇는 이성의 맥(脈)이자 영혼의 진료실이라 믿는다. 제2 인생 30년 세월을 보낼 오아시스다.
방송대 교수·행정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