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진로   

박동욱 대학원 법학 석사

나는 생존 경쟁에 치열한, 본능적이고 이기적인 경제 물신(物神)형 인간이었기에 공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 공부란, 승진을 위해 마지못해 하는 수단으로써, 형식적인 업무지식을 쌓는 연수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교육기관에 근무하는 두 딸의 강권(?勸)과 오랜 동안의 은행 근무에서 묻어온 돈 냄새도 지워볼 심산으로, 낯선 방송대 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에 지원하게 되었다.
서류전형은 통과하였으나 면접에서 한 교수가, 석사 공부가 조금은 힘들 수 있다며 60대 중반인 나의 체력상태를 물었다. 차라리 석사 전형에서 떨어지고 여행이나 스포츠댄스로 인생 후반기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애써 괜찮은 듯 “다행히 부모님의 유전자 덕택으로 공부할 정도의 건강은 지키고 있다.”라고 에둘러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강경선 교수는 “법학은 인간으로서 권리와 의무 그리고 인간들로 구성된 국가와 사회의 정의를 다루는 학문이다”라고 강조하였다. 그의 말은 무언가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시대정신에 맞는‘주권자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 법학은 분명히 배워볼 가치가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택한 물신주의 신세를 마냥 만시지탄(晩時之歎)하며 후회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을 다잡았다.
이런 심경 변화는 다시 공부하고 싶은 염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석사과정 내내 열정을 가지고 젊은 세대들과 어울려 발제하고 토론을 통해 법학을 배울 수 있었다. 방송대 대학원은 비록 내가 6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차별 없이 학문의 장을 열어주었다. 이것은 헌법 제31조에서 정하고 있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면서 지혜의 시대에 동참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나이’라는 물리적 이유만으로, 돌봄의 대상으로서 노인을 인식하는 것은 현대사회 구성원의 응집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제는 노인들도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세대와 선순환 고리를 만들고 하나의 평등한 인권을 가진 민주시민의 한 주체로서 ‘선배 시민’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 나는 우리 대학원에서 이렇게 새로운 노인상을 정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덕성을 높이는 정의로운 국민이 되려면 계속 공부해야 함을 깨우치게 됐다.
이와 같은 연유로 나는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다. 학위를 받을 수 있을 때면 아마 70세가 넘을지도 모르겠다. 이 공부를 마치면, 잠시 휴학했던 방송대 사회복지학과에 복학해 공부를 계속할 것이다. 개인적 목적으로 했었던 공부가, 결국엔 나에게만 수혜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주권자적 인간으로 변할 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방송대 대학원에서의 공부를 통해 이기적인 물신주의자의 ‘탈’을 벗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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