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호시노 도모유키의 인간탐색

2년 만에 어머니와 산책을 했습니다. 86세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셔서 공동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재작년에 혼자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시설에 입소했습니다. 그 직후에 코로나가 시작됐고, 고령자 시설은 면회가 금지돼 어머니를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 작년 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체력이 떨어지고 적혈구가 감소해 혈중산소농도가 낮아져 입원하게 됐습니다.

 


말이 되어 나오는 것은,
각자의 눈앞에 있는 그 순간의
선택을 바꾸어 갑니다.
언어화한다는 것에는
그만큼 강한, 운명을 결정짓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해당됩니다.

 


2년 만에 치매 어머니와 산책
코로나 상황에서는 병원에서도 문병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치료 경과를 담당한 의사에게 결과를 들으러 갈 때마다 의사는 면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의사(意思)나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창백하고 무표정하며 말을 해도 짧은 대답 정도고, 멍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최종적인 치료 방법으로 수혈이 있었습니다. 피가 부족하니 외부에서 받는 것입니다. 효과는 극적이었습니다. 며칠 후에 만났더니 방긋방긋 웃으며 기분 좋은 얼굴로 농담을 하며 이야기를 잘했습니다. 혈액이란, 인간의 상태를 이렇게 좌우하는 것인가, 하고 놀랐습니다.
나도 빈혈 경험이 있고, 피가 부족하면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은 알고 있지만, 수혈만으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달라지는 것을 목격하니, 인간의 몸이란 복잡해 보여도 뜻밖에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년, 봄이 오니 또 빈혈이 오는 게 아닌가 불안했지만, 현재로서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만 낮에 잠을 자는 시간이 점점 늘고 있다고 시설 스태프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오미크론 감염상황이 제어되고 있는 올봄부터 짧은 시간 정도는 근처를 같이 산책할 수 있게 됐습니다.
2년간, 거의 시설 밖으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보행 능력은 현저히 약해져 버렸고 산책이라고 해도 휠체어를 타고 나갑니다. 휠체어를 밀고 어머니가 아이 때부터 익숙했던 절로 모시고 가면, 봄꽃과 초록이 아름다워서 굉장히 들떠 있었습니다. 절에서는 내 손을 잡고 10분 정도 당신 발로 걸었습니다.
어머니의 치매 정도는 생활에는 지장이 있지만 나나 여동생 등 가족을 인식할 수 있고, 옛날 일도 아직은 대체로 기억합니다. 다만, 최근의 일이나 지금 막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화는 같은 내용의 무한 반복입니다.
“도모유키는 요즘 바쁘니?”
“응, 장편소설을 쓰고 있으니까.”
“그래? 그럼, 다 되면 나도 보여 다오. 그래서 도모유키는 바쁘니?”
“응, 장편소설 집필 중이라서.”
“그래? 그럼, 다 쓰면 보여 줘. 그래서 도모유키는 최근에 소설을 쓰고 있니?”
“응, 장편이야.”
“그래? 다 쓰면 보여 줘. 기대하고 있을게. 그래서 도모유키는 최근에 바쁜 거니? 소설 쓰고 있어서?”
이런 식입니다. 이런 대화를 계속 반복합니다.
그런데 잘 보면, 반복하는 동안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바쁘니?”라는 물음에 ‘장편소설을 쓴다’라고 계속해서 대답하는 동안, 질문이 “소설을 쓰고 있니?”로 바뀌거나 한다는 것입니다.
금방 잊어버리는 것 같지만, 무언가 무의식적으로 기억에 남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속에 가서 닿는 대화라고 나는 생각하고, 어머니가 내킬 때까지 반복하는 질문에 같은 대답을 반복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명랑해지면서 기분이 맑아집니다.
산책하는 동안, 어머니의 고등학교 시절에 관해 물었습니다. 옛날이야기를 하면 달변이 되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중에 특히 마음에 남는 에피소드를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내가 입학할 때부터 남녀공학이 된 거야. 남자밖에 가르친 적이 없는 선생님들이니, 여자도 남자처럼 가차없이 공부를 시켰지.”
“아아, 그랬구나!”
“맞아. 정말 힘들었어. 남자밖에 가른친 적 없는 선생님이니까. 여자애라고 봐주거나 하지 않고, 남자처럼 엄격하게 공부시키니까, 따라가는 데 바빴지.”
“아아, 그거 참 힘들었겠네. 선생님 이름 기억해?”
“이름이 뭐였더라? 남자밖에 가르친 적이 없는 선생님이잖아. 여자도 남자처럼 엄격하게 공부시키는 거야. 따라가기 힘들었어. 매일 매일 열심히 했었지.”
즐겁게 반복하면서 어머니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해지고, 점점 고양돼 목소리도 높아졌습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인간은 자기 말에 강하게 끌리는 존재
같은 고등학교 시절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고등학교 때의 생활이 되살아나는가 봅니다. 말로 표현해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그때의 기분이나 분위기를 리얼하게 기억하고 그야말로 지금 일처럼 고등학교 시절을 다시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런 기쁨에 넘치는 에너지가 나오는 것이겠지요.
이것은 치매증이 있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 능력이 있든 없든, 인간은 자신이 지금 했던 말에 생각보다 더 강하게 끌린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부부나 연인 사이에 싸움을 했을 때, 내가 틀렸다고 어렴풋이 느껴도 상대가 “네가 틀렸다는 거 알지?”라고 압박하면 “나는 틀리지 않았어”를 반복해 버리고, 그다음은 점점 마음속으로도 자신을 정당화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 내가 틀렸나?”라고 말하면, 조금 중립적으로 자신의 잘못과 마주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상사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서 주변 동료나 친구들로부터 “괜찮아?”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괜찮아, 별거 아니야”라고 대답하면, 자기 안에서도 이것은 그렇게 큰 일이 아니야, 잊으면 되는 일이야, 하면서 덮어 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 자신의 의식을 벗어난 곳에서 상처는 곪아 갑니다.
거꾸로, “응, 괜찮지 않아. 상당히 괴롭게 느끼고 있어”라고 대답하면 무엇이 어떻게 괴로운지 생각하기 시작해 이것은 부당한 행위이고, 나쁜 것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상처는 눈앞에 보이고,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겠지요.
강연 같은 걸 할 때 정말 짧게 인사할 생각이었는데, 긴장을 풀기 위해 시작한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버리면, 결국 멈출 수 없게 되어 얘기가 길어지면서 청중을 질리게 한다든가,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최악의 예를 들자면, 음모론 같은 것을 재미 삼아 이야기하는 동안, 어느새 자신도 믿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이 되어 나오는 것은, 각자의 눈앞에 있는 그 순간의 선택을 바꾸어 갑니다. 언어화한다는 것에는 그만큼 강한, 운명을 결정짓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해당됩니다.

번역  김석희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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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lsa***
    인간은 자기 말에 강하게 끌리는 존재..!
    2022-12-20 22:52:44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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