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들에도 우리나라 방송대(총장 고성환)와 같은 원격교육 기관인 ‘개방대학(Open University)’들이 있다. 이들은 1987년 아시아원격교육협의회(Asian Association of Open University)를 구성해 매년 원격교육에 관한 연구성과를 공유해왔다. 올해는 AAOU 상임이사교인 방송대 개교 50주년을 맞아 AAOU 주관, 방송대 주최로 제주도에서 제35차 AAOU 연례회의가 열렸다. ‘원격대학의 새로운 노정(路程)’을 주제로 열린 이 연례회의는 지난 11월 2~4일 제주 중문 ICC국제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됐다. 각양각색 아시아 원격교육 기관을 대표해 참가한 교수·연구자들의 발표문을 통해 최신 원격교육 트렌드를 살펴봤다.
제주=김민선 기자 minsunkim@knou.ac.kr
지속 가능한 교육을 위한 ‘과학 기술’ 강조
2일 AAOU 연례회의 첫날엔 고성환 방송대 총장, 오잣 다로잣 인도네시아 터부카대 총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최운실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KCEF) 이사장, 마샤 칸와르 커먼웰스 오브 러닝(Commonwealth of Learning) 회장이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연단에 선 인사들은 ‘IT 기술의 중요성’,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 가운데 네 번째 단계(SDG4)인 ‘양질의 교육’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고성환 총장은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포함하는 에듀테크가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다양한 디지털 기술들이 도입되고 있는데, 개인들에게 맞춤형 학습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는지 재고해봐야 할 때”라고 말하면서 “AAOU의 주제인 원격대학의 새로운 노정이란 대화를 통해 원격교육의 성장을 돌아보며 당면과제를 모색해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오잣 다로잣 총장은 “코로나19는 연구, 혁신, 온라인 교육의 발전에 국제적 협력이 더 필요함을 알게 해준 이슈였다”라며 “SDG4인 ‘양질의 교육’을 위해서 평생학습 개념을 더욱 확장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최운실 이사장은 “코로나19에 대응해온 각국의 원격대학들은 그들의 노하우를 이번 연례회의에서 공유하게 된다”라며 “빅데이터로 도출한 공통된 키워드는 협력, 무선, 메가유니버시티, 딥러닝, 빅데이터 등등으로 수렴된다”라고 밝혔다. 마샤 칸와르 회장은 “과학 기술의 발전이 교육에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환경친화적인 교육을 뜻하는 그린러닝(Green Learning)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흘간의 행사를 위해 준비한 각국의 대학·기관은 △방송대·부산국제교류재단(한국) △중국개방대학·저장개방대학·내몽골개방대학·원난대학(중국) △일본개방대학(일본) △말레이시아개방대학·와와산개방대학(말레이시아) △터부카대·텔콤대(인도네시아) △호치민개방대학·하노이개방대학(베트남) △크리슈나칸타한디크개방대학·인디라간디개방대학·네타지수바스개방대학(인도) △필리핀국립개방대학·돈마리아노마르코스메모리얼개방대학(필리핀) △트리부반대학(네팔) △알라마이크발개방대학(파키스탄) △스리랑카개방대학(스리랑카) △수코타이탐마티랏개방대학(태국) 등이다.
각국의 개방대학 및 원격교육 기관의 교수·연구자들은 6곳의 발표 공간에 참석해 연구성과를 공유했다. 한 공간에서도 참여자들이 10~20분 단위로 발표하며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첫째 날 행사에서는 AAOU 어워드 참가자들의 발표도 진행됐다.
팬데믹에 빛 발한 ‘온라인시험’의 새 과제
참가자들의 발표 중 공통적으로 등장해 눈에 띈 주제는 수만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동시에 시험을 치르는 방법이었다. 방송대는 지난해 2학기부터 태블릿 방식의 시험을 도입했는데, 다른 국가들도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 역시 컴퓨터기반시험(CBT)을 도입했다. CBT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인터넷기반테스트(IBT), 웹기반테스트(WBT), 태블릿 같은 스마트디바이스기반테스트(SBT) 등이 있다.
만약 각 가정에서 시험을 본다면 종이 낭비를 막고 공간을 따로 대여하지 않아도 돼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태블릿 방식은 특정 공간에 인원을 모아 놓고 시험을 보는 방식이다. 이들 방식 모두 SDG4 달성 차원에서도 적합한 방식으로 여겨진다. 많은 대학들이 오랜 기간 태블릿·IBT·CBT 등의 시험 방식을 도입하려했는데, 공교롭게도 2020년 초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선제적으로 준비했던 대학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은경 방송대 원격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학생들의 시험방식 선택지 확대: 종이에서 태블릿으로」를 발표해, 지난해 2학기 태블릿으로 기말시험을 본 학생들의 반응에 관한 분석을 공유했다. 이 연구원은 “CBT 방식은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주고, 공간과 시험 시기 측면에서도 유리한 점을 제공해준다”라고 봤지만, “기기 및 네트워크 오류, 커닝, 디지털 문해력 소외 계층의 적용 어려움 등 단점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태블릿 시험 결과 직장인의 경우 태블릿 방식이라 하더라도 금요일 시험을 선호하지 않았으며, 20대 학생들도 주말 시험을 원했다.
일본개방대학은 코로나19가 한창인 지난해까지 종이 시험을 고수하다가 올해 1학기 IBT 방식을 도입했다. IBT의 경우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 집에서도 시험 응시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 IBT 도입을 위해 대학은 웹 서버를 4개에서 20개로 증설하고, 저장 설비를 변경, 병목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인터넷상의 ‘가상의 대기 공간’도 마련했다. 설계상 집에서 시험을 보는 학생의 웹 접근도 학교 측의 네트워크로 몰리기 때문이다. 타카코 나카타니 일본개방대학 연구원은 “첫날 시험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990명의 학생이 시스템 오류를 겪었고, 어떤 학생은 가상의 대기 공간에서 5분씩이나 대기하기도 했다”라고 지적하면서 “다행히 시험 마지막 날에는 시스템이 안정화돼 가상 대기 공간에는 아무도 없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집에서 보는 시험이기 때문에 커닝을 막기 위해 웹 카메라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덧붙였다.
3만 명에 가까운 재학생을 보유한 말레이시아개방대학도 온라인 시험을 도입했다. 하빈더 카우르 말레이시아개방대학 연구원은 “대부분의 학습자들이 계속해서 온라인 시험 방식을 취하길 원했다”라며 “다만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 사는 학습자들의 경우 온라인 시험이 어려워, 앞으로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온라인 시험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먼저 말레이시아개방대학이 커닝에 관한 학술적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