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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학기말이다. 한 학년, 한 해를 정리하는 2학기 종강을 앞두고 내 과목을 수강하는 학우들에게 기말 페이퍼 주제를 공지하고 기말평가 범위를 재공지한다. 지난 학기 튜티였던 분들의 단톡방에서는 기말시험과 관련된 걱정과 함께 시험 준비를 위한 스터디 논의가 오간다. 기말시험과 기말과제를 마치고 나면 한 학기를 보낸 결과가 남는다. 그 결과를 보고 아쉬움과 함께 다음 학기를 기약하기도 하고,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뿌듯해지기도 한다. 기말시험을 보거나 기말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시절이 오래 전에 끝났으니 그런 긴장감은 사라졌지만 2학기 말이면 한 해를 돌아보고 정리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몇 년 전 새롭게 결심한 나만의 한 해 약속이 있다. 강의와 연구 외에 매년 두 권씩의 저작을 출판하는 것이다. 시집, 소설 번역, 시 번역 등 영역을 불문하고 해마다 두 권을 출판하겠다는 계획은 내 생각에도 다소 무리 같아 보였으나 지난 4년 동안 나는 그 계획을 어기지 않고 꾸준하게 실천해 왔다.

 

올해도 연말을 앞둔 이번 달에 두 번째 시집과 우리시를 영역한 영시집을 출간했다. 내년 전반기에는 지난 2년 6개월 동안 월간지에 연재한 「영시해설」을 묶어 낼 계획이며, 하반기에는 블로그와 잡지에 정기적으로 연재해 온 60여 편의 우리시 영어 번역을 묶어 출간하려고 한다. 두 권의 번역을 끝내고 준비 중인 케이트 쇼팽의 세 번째 단편소설 번역집, 마찬가지로 두 번째 『종소리』 출간 후 번역 중인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연작 가운데 세 번째 『벽난로 위의 귀뚜라미』도 내년, 내후년 연이어 나올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케이트 쇼팽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극본집 출간도 준비하고 있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매년 두 권의 저작을 출간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처음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면서 하고 싶은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 해야 할 일들과 하게 되는 일들이 이어지면서 나의 계획이 계획으로만 끝나지 않게 돕고 있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꾸준히 이루어 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갖게 됐다.


고등학교 졸업 후 포스코에서 노동자로 근무하면서 내가 꿈꾸고 그려왔던 모습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 즉 가르치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러나 그 꿈은 꿈으로만 끝날 수도 있었다, 내가 방송대를 몰랐더라면.


1986년, 지금은 내 두 딸의 엄마가 된 사람의 권유로 우리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한 것은 내 꿈을 향한 첫 걸음이었다. 영어 공부와 함께 영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더 넓은 학문과 문학의 세계로 나아가는 꿈을 꾸었고, 함께 공부하는 선후배들로부터 큰 격려와 자극, 동기부여도 함께 받았다. 5년 동안 여름·겨울 출석수업을 받을 때마다 숙소를 얻어 5일 내내 함께 머물며 수업을 같이 듣고 시험공부를 하던 그때, 공부는 힘겨움보다 큰 즐거움과 보람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졸업 후 회사를 퇴사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동시에 영문학과 조교로 4년 간 근무했다. 꼭 30년 전, 1992년 8월이었다. 혈혈단신 서울에 올라온 내게 혜화동 영문학과 사무실은 고향 같은 곳이었다.

가까이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교수님들의 열정적인 연구와 강의 모습은 이후 내가 따를 길이었고 본보기였다. 경제적으로도 그 시간이 있었기에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까지 큰 어려움 없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후 조교를 마친 후 강사로서 첫 강의를 시작한 1996년 이후, 그리고 2005년 튜터 제도 시범운영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튜터 시스템이 정착되는 시간을 함께 하면서 많은 후배들을 가르치고 함께 공부하며, 이들이 성장하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가장 많이 변화하고 성장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다시 한 학기, 한 해를 정리하면서 방송대에서 보내는 지금 이 시간을 통해 또 다른 자신으로 변화하고 성장해 갈 많은 후배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이뤄갈 꿈을 응원한다. 30년 쯤 전의 내가 나에게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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