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정진성 교수(일본학과) 고별강연

25년을 방송대와 함께한 정진성 교수(일본학과)가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지난 3일 혜화동 대학본부 열린관 대강당에서 고별강연회를 가졌다. 일본학과 동료 교수들과 학부 학우, 대학원 원우들이 함께 만든 자리였다.
강연장과 식순은 소박했다. 개회사와 약력소개, 학과 교수·학부 대표·대학원 원우 대표의 회고, 정진성 교수 활동 동영상 소개, 기념 강연, 기념패와 꽃다발 증정, 단체사진 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어디에도 ‘특별한’ 수식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날 고별강연이 진행된 대강당에는 묘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이 긴장감은 정 교수가 재직 내내 보여줬던 지적 자극과도 연결된다.

긴장감과 숙연함 가득
동료 교수들의 회고는 정 교수와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복기이면서도, 그 시간 속에 새겨진 ‘정진성’이란 학자, 교육자에 대한 헌사였다. 25년을 정 교수와 함께한 이영 교수는 “정년 하시더라도 학과와 관계를 이어가며 좋은 영향을 끼쳐주시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일본학과 25년 지기인 이애숙 교수는 그를 가리켜 ‘한결같은 선비의 모습’을 보여준 학자이자 교육자라고 회고했다. 정진성 교수보다 1년 늦게 부임한 이경수 교수는 그를 가리켜 ‘향기 나는 분’이라고 평했다.
“존경하는 정진성 교수님…”하고 회고를 시작한 정현숙 교수가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자 제자들은 뜨거운 박수로 응원했다. 사공환 교수는 “정진성 교수님은 굉장히 날카롭고 통찰력 깊으면서도 포용력이 크신 선생님이셨다”라고 회고했다. 일본 정치를 전공한 강상규 교수도 회고 중간에 말을 멈추고, 복받치는 감정을 다스려야 했다. 강 교수는 “원칙과 섬세함의 균형을 가지고 삶을 살아오신 멋진 분이시다”라고 말했다. 우오즈미 야스코 객원교수는 “학과에 꼭 계셔야 하는 귀한 분”으로 기억했다. 김보경 학과장은 “학과에서 함께한 시간은 짧지만, 교수님의 퇴임이 잘 실감되지 않는다”라며, ‘포스트 정진성’을 강조하면서 더 열심히 연구하고 교육하겠다고 말했다.
학우 대표로 무대에 올라 회고를 전한 김홍정 학우는 “학과 사랑, 제자 사랑으로 늘 우리들의 버팀목이 돼 주셨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일본학과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교수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대학원 지도 학생 대표로 회고를 한 김정임 원우는 “교수님은 일본을 보는 사고의 깊이와 폭을 넓혀주셨다. 문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해박한 지식은 늘 지적 자극이 됐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좋은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한다”라고 인사했다.

“일본에 대한 작은 호기심도 소중”
배재대 일본학과에 재직하다가 1997년 7월 방송대에 부임한 정 교수는 “방송대 일본학과는 개설 이후 한국의 일본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학과와 일본언어문화학과가 일본학 연구의 중심이 되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1997년 일본학과의 골격을 만들고, 이후 연구와 교육에 앞장섰던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25년 방송대 일본학과 교수 생활을 정제한 30분의 고별강연은 ‘일본학’, ‘일본이해’라는 키워드로 압축된다.

1997년 설립된 방송대 일본학과는 애초 ‘일어일문학과’로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방향을 바꾼 결과다. 지역연구가 확산되던 1990년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학제적 연구와 교육을 강조한 것이다. 정 교수는 “방송대 일본학과 설립이 한국의 일본 연구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라고 평가한다. 이는 당시 신·편입생 모집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1997년 1천명 모집에 3천명이 지원한 것이다.
“학제적 연구를 통해 일본지역에 대한 정확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게 학과 설립 목적”이라고 말하는 그는 “정치, 경제, 역사, 언어, 문학, 사회학적 접근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영, 이애숙 교수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거듭해 학과 커리큘럼을 짰다. 그때 만든 어문학 계열과 지역연구 계열이라는 골격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현재 한국에 설치된 일본학과 가운데 학문 분야별로 연구진을 고르게 갖춘 곳은 우리 방송대가 유일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방송대 일본학과가 어째서 학제적 연구와 교육에 집중하고 있는지 이해되는 대목이다.
방송대 일본학과의 학제적 연구는 2011년 대학원 일본언어문화학과가 설립되면서 좀더 탄력을 받게 된다. 정 교수의 표현대로 ‘학제적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도약이었다. 향후 본격적인 학술세미나도 개최할 수 있을 정도로 역량이 무르익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어 정 교수는 ‘일본을 보는 자세’를 강조했다. 그 자신의 연구에 대한 성찰이자, 후학들에 대한 당부이기도 했다. 특히 일본학과에 진학하는 이들에게는 일본에 대한 작은 호기심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학과 지원자는 일본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지닌 분들이다. 이런 호기심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호기심은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뜻이다. 또한 호기심은 타자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타자를 처음부터 자신과 무관한 존재로 생각하거나, 이미 다 알고 있는 존재로 여기거나, 알 수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이들에게는 타자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타자인 일본의 어떤 작은 점에도 관심이 있다면, 대화로 나아갈 수 있다. 호기심, 욕망, 충동은 소중하다. 이걸 물고 늘어져야 한다. 타자에게 다가가는 가장 원초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타자에 관한 호기심을 지니고 질문으로 나아갈 때, 막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 교수는 이 부분까지 헤아려 이렇게 말했다. 답을 찾지 못할 때, 대게는 누군가의 말, 권위자의 말에 쉽게 기대게 된다. “그러나 권위자의 말이 본래부터 권위가 있었던 건 아니다. 권위가 있으려면, 충분한 논거와 논리를 지녀야 한다. 그대로 믿고 따르기보다 의심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노력이 중요하다.”
스스로 답을 찾는 노력과 함께 그가 강조한 것은 자기 인식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정이다. 몽테뉴의 ‘나는 무엇을 아는가?’(『수상록』)라는 말을 언급한 정 교수는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틀릴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 나도, 스스로 틀릴 수 있다는 걸 열어놓고 살아왔던 것 같다”라고 고백하면서 ‘인식의 불완전성에 대한 긴장감 유지’ 즉, 방법론적 회의주의를 당부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강조한 것이다.
끝으로 그는 일본을 이해하는 방법론으로 ‘내재적 접근’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내재적 접근, 혹은 내재적 이해란, 타자의 행동과 사고를 타자의 문맥 안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일본이란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재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내재적 이해가 무엇인지는 내재적 이해가 아닌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의 사고, 시각만으로 상대를 들여다보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태도는 타문화와 접할 때 자주 나타나는 사례이기도 하다. 전통시대 조선통신사는 성리학적 관점에서 일본을 이해하려고 했다. 내재적 이해가 아닌 또 다른 사례는, 나의 시점이 없는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나의 존재가 없는 상태에서는 상대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도 존재할 수 없다.” 그는 이 대목에 ‘일본과 대결하려는 나라는 주체’를 강조했다.

 

“타자에 대한 성찰 멈추지 말아야”

방송대 일본학과의 학제적 노력, 일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등 두 가지 큰 주제를 녹여낸 정 교수는 “고별강연이지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강연으로 들어주시면 고맙겠다. 호기심은 상대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다. 일본학과에 입학한 학우님들은 이 호기심을 키워가길 바란다. 우리 모두가 열린 자세로 일본이란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 노력을 새롭게 다져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인식의 불완전성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타자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말자는 메시지였다.
정진성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한 뒤, 일본 쓰쿠바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현대 일본경제의 이해』등의 저서와『일본경영사』등의 번역서가 있다. 「1950년대 일본의 ‘특수(特需)’와 냉전구조」 등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정진성 교수와 함께 이동국 교수(영어영문학과), 김엘림 교수(법학과), 이필렬·이혜령 교수(문화교양학과)가 2023년 2월 정년퇴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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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im***
    앗 제가 나왔네요
    2022-12-13 20:18:4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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