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출신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만 두 차례 수상한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감독이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 개막작 「토리와 로키타」로 초청받아 처음 내한했다. 레드카펫 입장 현장. 사진 제공=전주국제영화제
현재 국내에는 300개가 넘는 영화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그중 3대 영화제를 꼽는다면 명실상부하게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 장르물로 특화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그리고 독립영화와 실험영화의 산실이 된 전주국제영화제가 있다.
영화제의 성격이 다르듯 개막작은 단지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기능을 넘어 올해 영화제의 성격을 짐작하게 하는 가늠자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 선택한 개막작은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의「토리와 로키타」다. 영화라는 장르의 외연을 넓히고자 노력한 전주국제영화제의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하는 탁월한 선택이다.
30년 동안 함께 영화를 만들어온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형제는 다큐멘터리로 시작해 극영화에 이르기까지, 현대 유럽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며 동시대 사회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독자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해 왔다. 저임금 여성 노동자에 관한 영화「로제타」(1999)와 도둑질로 생계를 잇는 부부를 그린「더 차일드」(2006)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만 두 번이나 수상했다.
칸 영화제 75주년 특별상을 수상한「토리와 로키타」는 아프리카에서 벨기에로 건너온 두 아이 토리(파블로 실스)와 로키타(졸리 음분두)의 이야기다. 남매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며 쉼터에서 함께 지내는 두 사람. 토리는 체류증을 받아 학교를 다니지만 로키타는 면접을 통과하지 못해 합법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카메룬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부치기 위해 분투하지만, 돈은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마약 배달을 하게 되지만, 번번이 브로커에게 돈을 빼앗기고, 위조 체류증을 미끼로 로키타는 마약 농장으로 향한다. 홀로 남은 토리는 로키타를 찾아 나선다.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다르덴 형제 감독을 만나「토리와 로키타」와 형제 감독의 영화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토리와 로키타」는 가정의 달인 5월 10일 개봉한다. <KNOU위클리>는 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이슈 인물을 소개하는 ‘파워 인터뷰’ 지면을 신설 운영한다.
전주=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토리와 로키타」 포스터. 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토리와 로키타」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으셨나요
우연히 한 신문 기사를 읽었어요. 수백 명의 미성년자 이주민 아이들이 유럽으로 온 뒤 알게 모르게 사라져버린다는 내용이었죠. 아이들이 음성적으로 계속 사라지고 있고, 미래가 어둡다는 기사였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어린아이들이 계속 사라져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마약 배달을 하고, 농장에서 재배도 해요. 취재는 어떻게 하셨나요
경찰 마약반에서 일하는 친구가 몇 있는데, 도움을 받았어요. 이들이 대마 재배지에서 갱단을 잡았을 때 찍은 사진을 몇 장 보여줬고요. 그 사진들을 바탕으로 대마 농장 세트를 만들었습니다. 최대한 실제와 비슷하게요. 대마 농장의 전경, 대마를 키우는 과정에 투입되는 노동 현장을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건 이 친구들 덕분이죠.
로키타가 히치하이킹을 시도할 때 태워주려다가 남동생이 있다고 하니 그냥 가버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로키타가 남자가 아니라 어린아이라고 말해도 그냥 도망가요. 동정심에 멈춰 섰지만, 남동생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함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도망가는 거죠. 일반적인 우리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어요. 사실 그 다음에 로키타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자동차가 아마 우리 사회의 모습 같습니다.
전문 배우보다 비전문 배우, 인지도가 낮은 배우를 선호하더군요. 「토리와 로키타」에서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파블로 실스(토리 역), 졸리 음분두(로키타 역)을 캐스팅 하셨죠
그렇습니다. 두 주인공 모두 한 번도 연기해 본 적 없는 비전문 배우죠. 처음에는 저희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우려도 많았어요. 하지만 항상 하던 대로 하자고 생각해 모든 컷을 5주 동안 연습했습니다. 두 주인공이 모든 액션 씬과 이동 씬으로 서로 합을 맞출 수 있도록 연습했고, 처음 가졌던 걱정은 금방 사라졌어요. 연기를 한 번도 안 해본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초반에는 어려운 난관이지만 저희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캐스팅은 마치 ‘내기’와 같은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냈기에 ‘내기’는 성공적인 게 아니었나 싶네요(웃음).
「토리와 로키타」는 이민자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럽 사회에서 이민자 문제는 사실 오래된 이야기죠. 영화로 만드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민자 문제가 새로운 게 아니란 건 알고 있습니다. 이민자 이슈는 1세기가 넘은 진부한 문제일 수 있어요. 이미 저희 형제가 이민자 문제를 다룬 영화도 두 편이나 찍었고요. 오래된 이슈라 해서 다루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토리와 로키타」는 이민자가 주인공으로 나온 첫 번째 영화입니다. 유럽에서도 이민자로 미성년자들이 먼저 오는 건 최근 사례인 거 같아요. 이론적으로 봤을 때 어쩌면 이것도 새로운 주제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걸 「토리와 로키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보통은 남편이 먼저 오고 그 다음은 부인 그리고 아이가 마지막에 오는 경우인데, 그게 좀 달라진 거죠. 또 하나 덧붙이면, 아이들이 밀항해서 유럽으로 넘어오고, 새 나라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이질감과 향수병 같은 것들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토리와 로키타」 스틸컷. 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감독님들은 빈곤 문제, 소외된 이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을 꾸준히 견지하고 있죠. 계속해서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실 우리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영화 중심에는 소외계층 인물들, 아이들이 존재하죠.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존재감을 우리의 영화를 통해서 드러내고 싶은 게 아닌가 싶네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요. 사실 우리 영화는 여러 인물의 탄생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그게 우리의 역할인 거 같아요. 「토리와 로키타」에서 주목한 점 역시 두 아이가 베냉에서 온 실존 인물처럼 보이게끔 하려는 거였죠.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아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그 난관을 헤쳐 나가는 걸 느끼도록 하려고 했어요.
영화는 처음부터 주인공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카메라도 흔들리고요. 분명 불친절한데 관객들을 계속해서 자리에 앉게 하고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느껴져요
흥미롭네요. 직전 인터뷰에서 영국 평론가가 “다르덴 감독들 영화를 보면 분명 첫 장면부터 보더라도 왠지 극장에 늦게 들어온 거 같은 느낌을 받는다”라고 말했거든요(웃음). 어쩌면 우리 영화에는 다큐와 스릴러를 약간 섞은 거 같은 느낌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다 보니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도 이런 식으로 항상 찍으려고 노력하는 거 같기도 하고요.
「토리와 로키타」 포스터. 사진 제공=영화사 진진
「토리와 로키타」에서는 결국 미성년 이민자의 우정을 강조했습니다
「토리와 로키타」에서는 지금까지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두 아이의 우정을 그려내고자 했던 거죠.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있더라도 끝까지 지켜내는 숭고한 우정을 말하고 싶어서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의 우정은 어른의 세상보다 훨씬 고결합니다.
「토리와 로키타」로 ‘적이 아닌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요즘 전 세계가 편견과 전쟁을 벌이는 거 같은데요. 한국 관객에게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친구가 되는 걸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외국에서 오는 난민이 결국 적이 아니라는 걸요. 빼앗기 위해 오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도 현실에서는 난민 문제가 훨씬 복잡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분명 규제도 필요하고, 모든 난민을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알지만, 난민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니 처음부터 선입견을 갖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