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의 유교권 국가인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들은 출산엔 당연히 결혼이 전제돼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최근엔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3년 전 방송인 사유리 씨가 모르는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한 후 일본으로 가 아이를 낳은 스스로의 사례를 공개하면서, 비혼출산 개념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각종 조사에선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할 수 있다는 응답이 높아졌다. 이번 커버스토리 ‘인구의 미래’를 통해 인구를 바라보는 시각을 재점검한다. 1면에서는 저출산의 해법으로 논의되는 뜨거운 감자 ‘비혼출산’에 대해, 2면에서는 정현숙 방송대 교수(일본학과)가 말하는 한국의 인구 감소가 문제인 진짜 이유, 3면에서는 팽창하는 세계 인구에 대해 알아본다.
김민선 기자 minsunkim@knou.ac.kr
비혼출산이 출산율 견인한다는 아이디어
결혼이 아닌 동거를 택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고, 비혼출산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트렌드에 부흥한 탓인지 어쩌면 비혼출산이 출산율을 증가시키는 방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주장이 속속 나오고 있다.
6월 20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인구정책으로서 비혼출산 어떻게 봐야 하나’를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김영철 서강대 교수(경제학과)는 OECD 주요국의 혼외출산한 비중과 합계출산율의 관계가 어느정도 비례함을, 즉 비혼출산이 많을수록 전체 출산율이 높다는 자료를 제시하며 인구정책으로서의 비혼출산의 가능성을 피력했다. 2019년 기준 OECD 통계에 따르면, OECD 국가들의 평균 합계출산율은 1.61명인 반면 한국은 0.92명을 기록했다. 2018년 OECD 평균 혼외출생율은 41.5%, 우리나라는 2.2%였다.
김 교수는 “OECD 국가들이 혼외 출생을 통해 신생아 수의 약 40%를 보충한다고 할 때, 우리나라는 비혼자들을 통한 출생의 대부분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라며 “만약 한국이 OECD 평균 수준의 혼외 출생율을 보인다면 1.55명이라는 합계출산율을 도출할 수 있고, 이는 최근 OECD 평균인 1.61명에 상당히 근접한 값”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최근 방한한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학과 명예교수도 “합계출산율이 1.6명을 넘는 국가 중 비혼 출산율이 30% 미만인 국가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유럽식 비혼출산의 배경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북유럽 국가의 경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책적으로 비혼출산이 허용됐던 게 아니었다. 이들 국가들은 산업화 이후 출산율 감소 문제를 겪었는데, 가톨릭적인 가정 문화의 해체, 피임약 발명, 자동차 산업의 발전 등 사회 변화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시민들의 가치관 변화를 이끌었다. 특히 비혼 동거·비혼 출산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지면서 출산률 증가에 기여했다.
김영철 교수는 “동거는 서구의 오픈 마인드(개방적) 문화의 유산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서구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었다. 가톨릭 문화로 인해 보수적인 가정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1970년도 비혼 출산 주의가 확산하면서 지난 30~40년 사이에 거대한 변화가 있었고 그로부터 25년이 지나니 비혼 출산이 30~40%까지 증가한 국가들이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같은 세미나에 참석한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예상치 못하게 인구 구조를 변화시켜왔음을 짚었다. 그는 “18세기 중반에 (가톨릭 정신에 반하는) 비정통성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오늘날로 말하면 청소년들 사이에 결혼하지 않은 채 이뤄진 성관계가 증가해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1960년대 이후엔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먹는 피임약이 발명됐다. 기혼남녀가 자녀 수를 제한하는 걸 돕기 위해 애초에 발명됐으나 미혼 남녀들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자동차 산업의 발달이 합쳐져 젊은 남녀가 마음껏 이동하며 성관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도 변화하며 ‘왜 꼭 결혼해야 하냐, 결혼하고 성관계 해야 하냐, 그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혼해도 되고, 혼외출산을 해도 된다’란 생각이 생겼다”라며 “청소년 사이의 첫 번째 혼외출산에 이어 이같은 두 번째 혼외출산 증가 추세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했다. 인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들이 유럽만이 아니고 한국, 동아시아 사회에서도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피임약, 자동차 발명 등이 우연찮게 인구 구조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동거 제도도 의외의 효과를 거뒀다. OECD 국가들에서 동거 제도가 허용된 것은 동성 커플들 때문이었다. 비혼 동거 커플이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유럽 국가들이 이를 법제도화 한 것은 2000년경부터다. 프랑스에서 1999년 신설된 시민연대협약(PACS)이란 이름의 동거법, 스웨덴에서 2003년에 제정된 동거법, 영국에서 2004년 제정된 ‘시빌 파트너십법(Civil Partnership Act) 등이다. 김영철 교수는 “동성 커플들에겐 혼인을 허락할 순 없어 대신 가정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가 나왔는데, 여기에 이성 커플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우연 찮게 동거 제도가 탄력을 받게 됐다”라고 강조했다.
비혼출산 좋다…출산율 증가는 ‘글쎄’
유럽의 비혼출산 배경이 우리나라와 같은 동아시아 국가와는 다르다는 점, 더불어 ‘출산율이 높은 국가는 비혼 출산율이 높다’란 명제를 단순히 뒤집는 식의 발상으로는 인구정책으로서의 비혼 출산을 말하기엔 성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즉, 나머지 환경은 그대로인데 비혼 출산만 법적으로 가능해진다고 출산율이 높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게 기혼 가족에 버금가는 복지를 제공하고, 가부장제를 필두로 기혼 가족에 대한 차별을 멈춰야 비로소 프랑스 등 북서유럽의 ‘비혼출산으로 출산율 견인’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해진다는 시각이다.
일례로, 서울에 거주하는 31세 직장인 여성 김 씨는 비혼주의자이면서 최근 연인과 동거를 결심했다. 비혼출산을 지지한다는 김 씨에게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느냐’, ‘동거인과 같이 살아보다가 나중에 결혼하기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느냐’고 물었다. 김 씨는 “비혼·비출산 하기로 오래 전부터 결심한 것이라 이번에 동거하다가 생각이 바뀔 것 같지 않다”라고 말했다. 비혼출산으로 출산율이 높아질 것 같냐는 질문엔 “출산율이 높아질진 모르겠지만 비혼출산의 길이 열린다면 고려해볼 여성은 많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2021년 9월에 발표한 「서울시민의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 현황 및 정책 과제」에서도 비혼출산에 대한 수용도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사회 인식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57.0%), 응답자의 47.9%는 우리사회가 비혼 출산을 현재보다 더 포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해당 조사는 서울시민 2천명을 대상으로 비혼 출산, 재생산권리 보장,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인식과 관련 정책 수요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있다. 이 조사에 ‘출산율’이란 키워드는 거의 나오지 않아, ‘출산율 향상’을 직접 목적으로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김영철 교수도 비혼 출산과 출산율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히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비혼출산이 가능한 사회로 간다면 출산율이 높아질 수 있을까, 경제학적 측면에서 인과성을 추론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충분한 데이터가 없어 결론은 못 내렸다. 비혼출산율이 높은 국가에서 출산율이 높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미혼이든 기혼이든 아이를 낳은 뒤 상황이 나쁘다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모든 유럽 국가에서 보면 비혼 출산율이 높지만, 비혼·기혼 구분의 의미가 있는지는 면밀히 보고 이야기해야 할 거 같다”라며 “(비혼출산율과 전체 출산율 사이 상관관계에 대해) 노르딕 국가·지중해 국가 등의 차이도 있으며, 결국 다양한 삶을 포용하는 게 출산율 상승을 불러온 것이다. 비혼출산이 의미 없다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상징 중 하나로 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