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ㆍ취업   AI시대 경력 관리

 프로 직업인, 그리고 워킹맘으로서 커리어와 인생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인생 어떤 타이밍에 공부하겠단 마음이 들어 방송대에 들어왔는데, 생업과 공부를 병행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럴 땐 학교 울타리 밖의 생생한 자극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일하는 쌍둥이 엄마인 김은주 씨는 ‘토종 한국인’이었다. 22년 디자이너 커리어를 가지고 구글 본사에 입성했다. 그의 분투기를 들어보자. 김민선 기자 minsunkim@knou.ac.kr 디자이너는 ‘질문하는 역할’기술이 인간을 위해 품격 있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되물어보고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구두쇠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소녀는 구두쇠 DNA를 그대로 물려받아 훗날 성인이 돼 21세기를 살아갈 때 그 누구보다 악착같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자신의 적성을 찾을 때까지 여러 직장을 거치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 구글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까지 올랐다. 김은주 구글 수석 디자이너를 지난 6월 29일 위민후코드서울 주최로 열린 ‘WW코드 서울 테크 라운지’ 행사(서울 동작구 스페이스살림)에서 만났다. 테크 라운지는 국내·외 IT 기업에서 10년 이상 커리어를 이어오는 업계 선배의 노하우를 들어보는 주최 측의 정기 행사다. 여성 IT 종사자 및 학생 100여명이 김 씨의 특강을 듣기 위해 모였다.김 씨는 본업의 일터에서 에너지가 고갈됐을 땐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다시 에너지를 채운다고 한다. 이날처럼 강단에 서서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전파하는 연설가로도 활동하고, 자신의 삶을 소개한 책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도 출판해 스스로를 증명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가 평생 도전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뿌리에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굉장한 구두쇠였다. 아버지는 11남매 중 하나였다. 11명을 먹여 살리려면 할아버지도 구두쇠가 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세상 모든 돈에는 주인이 있고 그 주인에게 힘이 있다고 가르치셨다.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데 경제적 독립이 안 된 채 부모든, 배우자든, 누구든지 간에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 내 인생의 주권 일부분을 내줘야 하는 ‘교환’이란 생각을 크게 갖고 있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이 됐다. 그래서 직장 생활 중 일이 굉장히 힘들 때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까지는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내 길을 가겠다’는 첫 결심그는 처음 들어간 직장이 사실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고 했다. 어떻게든 적응해보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자신만의 길을 가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아름다운 이별을 고했다.“처음 갔던 직장은 조선일보 자회사 디지틀조선이었다. 그때는 신문사 사이트가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 역할을 했었다. 그런데 가보니 기자들만의 서클이 있었다. 나는 아웃사이더였던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성 직원들이 흡연하러 가서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모르겠는데, 돌아와서는 ‘우리가 남이가’ 수준으로 친해져 있곤 했다. 어떨 땐 내가 하기로 했던 프로젝트가 그들에게 가 있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을 많이 했다. 작정하고 그들의 회식을 따라간 적이 있었다. 새벽 3시가 됐는데도 마칠 생각을 안 했다. 그때 나는 더는 못하겠다며 포기할 게 아니라 생각의 전환을 이뤘다. 내 길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화여대 정보디자인과를 졸업한 김 씨는 그렇게 국내에서 3년의 직장 생활을 뒤로 한 채 27세에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Excuse me’도 못할 만큼 영어 실력도 부족했다. 이후 삼성전자, CJ제일제당, 모토로라 등을 거쳐 현재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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