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화에서 신화로’ 연재하는 박종성 교수(국어국문학과)

〈KNOU위클리〉가 문화면 월간 연재 기획으로 ‘신화에서 신화’를 177호부터 새롭게 선보인다. 필자는 비교신화 연구에 매진한 박종성 교수(국어국문학과)다. 디지털시대인데 왜 신화일까? 박 교수는 “신화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무력화하는 새로운 영역”이라고 말하면서 “신화의 사유와 토대를 근거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예측하고 선취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연재에 앞서 박 교수를 만나 주요 내용과 신화의 의미를 들었다.

신화는 아주 오랜 옛날

인간 의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발상의 전환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신화적 상상력은 실현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세상은 디지털시대로 깊이 접어들었는데, ‘신화’로 눈을 돌린다는 게 조금 질박해 보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신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흔히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분별해 말하는 게 일반적이죠. 그런데 디지로그라는 용어도 등장하면서 경계를 인식하되 경계를 넘어서는 특별한 인식의 틀에 관한 관심도 필요하다고들 합니다. 신화는, 다소 거칠게 말하면, 공존 불가능한 대립적 자질들의 공존을 시도하고 성취하는 사유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편으로 신화는 비(非)현실계과 비(非)초월계 사이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특별한 틀을 가진 대상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현실을 토대로 초월을 말하고, 초월을 근거로 현실을 말하는 것으로도 신화를 바라볼 수 있는데요. 다만 연구자들이 이런 현상에 관해 설명의 방편으로 현실/초월이라는 분별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피한 한계일 수도 있고요. 이 공간적 인식을 굳이 용어로 표현하면 ‘Elsewhere’ 정도가 될까요? 
신화라는 것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무력화하는 새로운 영역이고, 혹여 이른바 포스트 아날로그, 포스트 디지털의 영역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사실 저도 명확하게 개념을 규정하기 어렵습니다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예측하고 선취(先取)하는 데 긴요한 영역이 바로 신화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화 또한 사실주의(realism) 문학의 원천이기도 한 셈입니다. 이 점이 긴요합니다.

오랫동안 비교신화 연구를 해오셨습니다. 한국창세서사시의 신화적 의미에서부터 몽골의 장가르, 헝가리의 민족기원신화 등 다양한 연구 결과를 내놓으셨는데요. 신화에 매달린 이유는요
저는 어렸을 적부터 마야·잉카제국 탐험기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와 같은 책들에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 제가 인문학을 하지 않았다면 천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생각하곤 합니다. 국어국문학과에 원서를 내게 된 데도 신화에 관해서 막연하면서도 버릴 수 없는 욕망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고미술사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유학이 필수인 학문이어서 경제적 이유로 뜻을 접었던 씁쓸한 기억도 있습니다(웃음). 학부 2학년이 되면 학번 순서대로 지도교수가 확정이 되는데, 저는 희한하게도 우리나라의 신화 연구의 개척자이시면서 일가를 이루신 서대석 선생님의 지도학생으로 배정됐어요. 일종의 숙명이랄까, 그런 것이죠. 이후 학부 2학년 때부터 선생님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것을 허락받고 나서 당시로서는 구해보기 어려웠던 귀한 책들을 한껏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이 과정이 저를 일견 강박적으로 신화에 집착하게 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위클리의 새 연재기획 ‘신화에서 신화로’에서는 주로 어떤 내용을 탐색하실 계획인지요
신화는 아주 오랜 옛날 인간 의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발상의 전환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가장 알기 쉽게 예를 들면, 하늘을 날고자 하는 비현실적 욕망이 이카루스의 좌절을 딛고 현실이 됐듯이, 신화적 상상력은 실현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신화는 철저하게 인간 상상력의 생산물이지만 그 신화를 전승하는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적 내력, 경제 토대, 자연지리적 환경과 인문지리적 정보, 주변 민족과의 대립과 우열 관계, 사상(事象)에 대한 집단의 인식, 사회 조절의 규범 같은 것이 용해돼 있기에 각 전승 집단의 총체적 현실을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이런 점들은 신화, 신화적 전승 혹은 신을 포함한 영웅의 서사시를 통해 인간들이 어떤 서사적 구성을 하고 표현의 방식을 일궈내는가 하는 것과도 연결돼 있는데요. 가장 단순하게는 이런 양상이 그 민족의 역사이고 문학이고 신앙이고 세계에 관한 인식을 이룹니다. 앞으로 연재에서는 이런 점을 짚어내려고 합니다.

연재하실 목차를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전 그리스로마 신화의 그 ‘신화’와는 조금 다른 내용들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탐색하는 신화는 그리스·로마의 것도 있지만, 한국, 폴란드, 아프리카, 몽골 등의 신화가 주를 이룹니다. 기존의 신화에 대한 이해에도 서구중심주의가 작동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탈서구적 신화의 지평에 기댔을 때, 어떤 기대를 가질 수 있을까요
어떤 학문이든 서구중심주의 학문, 흔히 학문 1세계의 연구성과들에 큰 혜택을 입게 됩니다. 신화의 경우에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고 보고요. 그런데 탈서구적 신화 연구가 서구의 신화와 연구성과를 부정하고 배타적으로 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흔히 그리스·로마 신화의 다채로운 내용들과 연구성과들은 다른 신화를 연구하는 데 지침이 되기도 하고 자극제가 되기도 하니까요. 다만 우리가 거듭 되짚어보아야 할 점은 서구의 신화 연구가 신화 연구의 절대적 규범으로 작동하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를 시작할 즈음엔 이런 시각을 담은 기존의 연구서가 저에게 일종의 입문서 노릇을 했던 것도 영향이 있었다고 봅니다. 서구 중심의 신화와 연구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더 많은 지역의 신화와 영웅서사시에 관심을 뒀다고 하는 편이 타당하겠죠.
이를테면 유럽 전역에 전승되는 건축물 축조와 같은 다채로운 신화, 전설과 같은 텍스트들을 연구할 때 그 기원이 그리스에 있기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 어느 쪽이 그리스에 가까운 것인가를 따지고 논쟁해 가장 가까운 쪽의 전승이 다른 지역의 전승 자료보다 가치의 등급에서 우월하다고 확정하는 선례가 있었어요. 어느 지역의 동일한 유형의 전승 자료들은 그 영향 관계와 가치의 우열 관계를 따지기 이전에 각각의 지역에서 어떤 식의 변천이 일어나고, 어떤 점이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가를 궁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신화 혹은 신화적 전승의 자료들은 각각 지속과 변천의 내력이 있음을 거듭 살피고 이 결과가 전승의 과정에서 살아 숨을 쉬는 신화의 속성을 오롯이 드러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느 한쪽에 원천과 기준을 확정해 놓고 일방적 결론에 접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모든 서사시의 불변의 규범으로 확정하고 다른 지역의 대단한 장편 영웅서사시들을 ‘초원의 일리아스’ 혹은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서사시’ 등의 명칭으로 통용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몽골의 『장가르』나 티베트의 『게사르』, 키르기즈 민족의 『마나스』, 세르비아의 『마르꼬 끄랄례비치』와 같은 영웅서사시는 『일리아스』의 규범을 절대적으로 확정한 후, 재단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거든요. 물론, 그리스의 서사시가 서사의 전개 과정, 장면의 구성과 표현 등에 있어서 높은 수준의 문학적 성취를 이른 시기에 이룬 점은 마땅히 인정해야 하지만 구비전승의 장편 영웅서사시의 일반론을 전개하는 데 『일리아스』 등을 기준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란 겁니다. 최근에 우리 대학의 이준석 교수께서 『일리아스』의 원전 번역을 새롭게 해서 출간했는데요, 이런 성과는 신화와 영웅서사시에 관심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연구의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에게 ‘박종성표 신화 세계’를 제공하실텐데, 이번 연재에서 독자들이 좀더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면요
순차적으로 연재될 각 민족 혹은 국가의 신화들이 지면 관계상 다양하게 다른 신화들과 비교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만, 관심을 가진 독자들은 개별적인 신화들을 견주어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던 신화들을 자신만의 독법으로 비교하고 대조하는 관점을 가져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신화의 특정 대목 해석에 있어 다른 신화의 사례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을 주목해 주시면 좋겠어요. 신화를 신화로 해석해 보는 가장 기본적 관점을 가다듬어 보는 것이죠. 물론 모든 신화를 이렇게 볼 수는 없겠지만요. 물론 연재하다 보면 지면의 제약으로 이런 점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분명 있기도 합니다.

신화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 좀 더 공부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해 ‘신화 공부’를 안내한다면, 어떻게 출발하면 될까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신화에 대해 그저 막연한 상상력의 산물이기만 하다는 생각을 넘어서서 다가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면서 어느 신화는 가치가 있고 어느 신화는 그렇지 못하다 하는 일방적 태도는 신화의 실상을 애초부터 편견을 통해 들여다보는 실수를 저지르기 일쑤입니다. 더불어 편견 없이 다채로운 신화들을 경험하면서 각각의 신화들이 나에게 던지는 현재적 의미에 대해서도 자기 나름대로 적극적인 독법을 시도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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