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곳곳에 깃든 설문
대할망(이하 할망)의 파편적 전승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경이로운 흔적이 은폐된 혹은 잠자고 있는 위대한 여신에 대한 알록달록한 우리네 상상력을 간질인다. 파편화된 할망에 대한 기억은 이 여신의 행적이 신화적 서사를 엮어갈 수 있게 하는 구심력으로 작동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한라산은 할망의 산좌(山座)이면서 신좌(神座)였다. 할망은 거인신이어서 언제나 한라산 백록담을 베개 삼아서 누워 있거나 앉아있기도 했다. 땅을 비롯해 수다한 오름들을 만들고도 모자라 자신이 낳은 오백 형제가 영실기암이 됐다고 하는 신화적 설정도 덧붙여 놓았다. 일반적으로 위대한 창조의 여신에게는 산좌라는 것이 필요했다. 성스러운 산정에서의 ‘앉아있음’과 ‘누워있음’의 행위는 ‘소유함’의 행위이고, 온전한 의미의 ‘왕좌(王座)’이면서 ‘신좌(神座)’를 확정한다. 이집트 초기 숭배의식 속에서 위대한 어머니 이시스를 ‘소재지, 왕좌’로 칭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다채롭게 전승된 할망의 행적
산좌를 향한 할망의 노정은 한라산에 베개를 만들 요량으로 가다가 치맛자락에서 흙이 떨어져 오름이 됐다고 하는 것이나, 백록담에 앉아 빨래를 하다가 뾰족한 산꼭대기가 불편해 떼어내어 던지니 산방산이 됐다고 하는 것에서 그 자취가 더듬어진다.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가 관탈섬이나 섶섬에 닿았다고 하는 전승에서 할망은 움직임을 극히 배제하는 거인 여신의 형상을 뚜렷이 했다. 한편으로 앉아서 빨래하는 형상에서는 산정에 앉은 둔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두 다리가 이 여신이 움직이는 형상을 띨 것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앉은 자세의 둔부가 부동(不動)의 형상이라면, 두 발은 대지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산 아래로 내려온 할망의 행적들은 더욱 다채롭게 전승되는데, 설문대하르방(이하 하르방)이 느닷없이 나타나 할망의 남편이 됐다가 할망이 지닌 수렵과 어로의 특별한 기능을 시현하는 데 기여하고는 종적을 감췄다는 전승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할망은 창조의 위대한 여신이자 수렵과 어로의 신이고
직조의 신이며, 중앙권력의 비유인 나주 목사가 두려워 달아나게 하고,
차귀도의 바위가 되어 버린 오백 장군의 막내에게
매 한 마리를 보내어 제주의 인재 출현의 맥을 끊으려 하는
고종달(호종단)의 배를 차귀도에서 침몰시킨
제주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하루는 하르방이 배가 고파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할망은 한라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대변을 보고 오줌을 갈기라고 일러준다. 하르방이 그리하니 멧돼지와 노루 등이 비바람(대변과 오줌)을 피하려고 들어간 곳이 드러누워 있는 할망의 하문 속이어서 모두 잡혔다고 하는 내용이 그것이다. 또한 하르방은 할망이 일러준 대로 우도(소섬) 옆으로 가서 고기를 섭지코지 쪽으로 몰면 섭지코지 쪽 바다에 앉았던 할망이 하문으로 그물을 치듯이 에워 잡아 그걸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예사 사람들과 달리 두 거인신에게는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획기적인 어로 방식이 필요했을 터이고, 제주 사람들에게는 생계를 위한 수렵과 어로의 방편이 할망과 하르방으로 인해 인간 세상에 생존을 위한 초보적 문명의 하나로 전달된 내력쯤 된다. 육지의 짐승을 사냥하려고 하르방이 자신의 남근으로 나무를 두들기면서 오줌을 세게 갈기라고 하거나 하르방이 성기로 물고기를 몰아오게 하는 다른 전승을 보면 수렵과 어로의 방편이 할망과 하르방의 교구 행위의 비유적 표현으로도 볼 여지를 남겨둔다. 그렇지만 창조의 여신이 행한 수렵과 어로 방식의 시현은 이면적으로 자신이 동물들과 물고기의 수호신이자 사냥과 어로의 신적 기능을 아울러 감당하고 있음을 증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할망의 ‘속옷 지어 입기’ 역시 신화적 상상력을 한껏 자극한다. 위대한 여신인 할망에게 속옷이 필요했을까. 할망은 스스로 직조의 신으로서 직능도 아울렀는데 말이다. 이에 관해서라면 성산면 성산리 일출봉의 많은 바위 가운데 가장 높이 솟은 바위에 다시 큰 바위를 얹어 놓은 듯한 기암을 할망이 길쌈할 때 접시불(또는 솔불)을 켜기 위한 등잔으로 썼다고 하는 등경돌이 뚜렷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옷 지어 입기의 주체가 일반 제주민으로 전이된 상황이 흥미롭다.
속옷 입기의 신화적 상상력
할망은 홀로 직조를 하고 바느
질하던 창세의 거인 여신이었다가, 별안간 연육(連陸)을 대가로 제주도민에게 100통이 소요되는 옷을 지어달라고 요구한다. 연육의 요청은 제주 사람들이 할망에게 먼저 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거인 할망에게는 옷이 없었다는 것이다. 제주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명주를 모았으나 99통밖에 안 되어 속옷은 완성되지 못했고, 할망은 다리를 조금 놓아 가다가 중단해 버렸다. 그런데 할망의 속옷 지어 입기가 갖는 의미는 단순하게 종결되지 않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가 하는 점에 닿아 있어 제주의 신화적 맥락을 풍성하게 한다.
할망의 ‘속옷 지어 입기’가 실패로 귀결됐다고 하는 전승의 의미는 문면의 의미를 뒤집어 보는 발칙한 시도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충남 해안지역의 갱구할머니 전승을 견주어 보는 것은 흥미롭다. 갱구할머니는 키가 커서 제대로 된 옷을 해 입고 싶은 게 소원이었다. 항상 나뭇잎으로 겨우 음부를 가릴 정도였다. 거인 할머니는 왕에게 이 소원을 간청했고, 왕은 1년 치 삼남(三南)의 공포(貢布) 모두를 주었다. 그것으로 옷을 해 입은 할머니가 좋아서 춤을 추자 삼남 지방이 그 옷에 가려 햇빛을 보지 못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추방당한 거인 할머니는 주리고 목이 말라 흙을 먹고 바닷물을 마시다가 설사를 했는데, 갱구할머니의 이 배설물이 우리의 강산이 됐다고 한다. 육지의 생성 과정이 농경 이후의 순서로 착종된 특별한 사례인데, 손진태의 『조선민담집』(東京, 鄕土硏究社, 1930)에 실려 있는 충남 해안 지방의 신화다.
과연 할망과 갱구할머니는 좌절한 여신들인가. 갱구할머니는 추방을 당했으나 제주의 할망은 추방당하지 않았다. 옷을 지어 입는 행위는 창조의 위대한 여신이 징표처럼 지녔던 거대한 젖가슴과 음부를 은폐하는 행위와 직결돼 있다. 할망은 나신의 거대한 여신이었음을 아울러 확인할 수 있다. 신좌에서 내려온 할망에게 덧씌워진 것은 위대한 여신의 나신이 아니라 예사 여성의 구체적 형상이요, 일상적 생활의 재현이었을 수 있다. 물론 길쌈을 하는 여신의 형상은 일본의 아마테라스 오오카미(天照大神)에서 보듯이 신적인 권능의 표지이지만 직조의 여신이 되는 순간, 그 여신에게는 봉헌해야 할 상위의 신이 설정돼 창조의 위대한 여신과는 점점 거리를 두게 된다.
나신으로 음부를 드러내고 앉아있던 이시스가 오시리스와 결혼한 이후에도 여전히 나신으로 앉아서 아들 호루스에게 수유하다가, 옷감 짜기를 여인들에게 가르치고 자신은 스스로 옷을 입고 신좌에 앉음으로써 독립적이고 원초적 여신이었던 그가 아내신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험난한 노정이 시작됐다는 건 우연의 일치일까.
옷은 여신에게 있어 여신의 원초적 형상을 지워나가는 수단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여신상에서의 음부 노출은 의심할 바 없이 성례의 의미를 지닌다. 길고 헐거운 겉옷인 로브를 들어 올려 나신을 드러내고 있는 여신, 겉옷을 뒤로 젖힌 상태로 나신을 드러내는 여신, 한쪽 다리 위로 흘러내리는 소매 없는 헐거운 겉옷은 나신을 감싸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나신을 되레 부각하는 여신의 형상 등에서 설문대할망의 속옷 입기가 원초적 여신의 형상에서 일탈해나가는 과정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난나의 하강」이라 불리는 두 편의 연결된 수메르 시 중에서 두 번째 노래는 여신 이난나가 불가피하게 남편인 두무지를 대신해 지하세계에 머물러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난나가 지옥의 여왕인 동시에 생명의 여왕인 에레슈키갈의 청금석(靑金石) 궁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도시를 일곱 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성벽의 일곱 개 문을 지나야 했다. 문을 지날 때마다 문지기가 불러 세워 옷을 하나씩 벗도록 했는데, 마침내 에레슈키갈 앞에 당도한 이난나는 자신을 보호해줄 그 어떤 것도 없이 발가벗은 상태가 된다. 이난나의 사체는 긴 못에 꽂힌 채 공개된다. 그러나 다른 신들의 도움으로 되살아난 이난나는 대지 위로 복귀한다. 집에 다다른 이난나는 자신의 남편인 양치기 두무지를 지하세계로 축출하고 대지의 권좌를 차지한다.
숙명의 옷 벗기와 여신으로의 회귀
이 부분에서 유의할 것은 이난나가 ‘지하세계 하강→나신(옷을 벗음)→죽음→재생→대지의 여신으로 복귀’라고 하는 과정이다. 죽음을 경험하고 대지의 여신으로 복귀하는 여신의 노정에 필연적으로 ‘나신’의 형상이 드러난 것은 위대한 여신의 원초적 형상으로의 회귀 과정과 연관된다. 남편인 두무지가 있어 이난나는 나신을 감싸는 옷을 입어야 했던 아내신이었지만,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본래의 독자적인 위대한 여신으로 회귀하면서 자신을 제약했던 숙명의 그 옷을 벗어 던져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할망은 창조의 위대한 여신이자 수렵과 어로의 신이고 직조의 신이며, 중앙권력의 비유인 나주 목사가 두려워 달아나게 하고, 차귀도의 바위가 되어 버린 오백 장군의 막내에게 매 한 마리를 보내어 제주의 인재 출현의
맥을 끊으려 하는 고종달(호종단)의 배를 차귀도에서 침몰시킨 제주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99필이 마련됐으나 1필이 모자라 속옷 지어 입기가 실패하고 섬과 뭍을 잇는(연육) 도중에 주저앉은 사정은 ‘제주에 99곡(谷)만 있어 100곡이 되지 못한 지세가 되레 육지에서 호랑이가 들어와 살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전승과 이어져 섬 제주가 육지의 정치와 신앙 권력의 침윤에 맞서 독자성을 지속하면서 당당하게 살아온 시련의 노정기를 증언하는 ‘결핍 모티프’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