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 과학자들이 연구한 의료 인공지능(AI)의 성과는 논문에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의료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발전해있다. 그 도구는 의료 소프트웨어로 구현된다. 연구 단계를 넘어 실제 병원에 납품되고 있다. 의료 AI 소프트웨어들이 경쟁하며 일명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가 일궈지고 있다. 기존 의료 소프트웨어 기업이 AI를 접목하기도 하고, 시작부터 의료 AI 소프트웨어를 들고나오는 스타트업들도 쟁쟁한 투자를 받으며 힘을 받고 있다. 의료 AI 기술이 어떻게 소프트웨어로 구현됐으며, 이를 통해 얼마나 의사들의 업무를 경감하고 환자 소비자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김민선 기자 minsunkim@knou.ac.kr
“기존엔 CT 판독 눈 아파
하루에 환자 3명만 가능했는데
AI가 보조하니 피로도 줄고
정확도도 사람만큼 따라줘”
환자는 작은 결절 하나를 발견하고 놓치느냐 마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성인들 중에서도 정기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초기 진단을 잘못 받아 큰 병으로 악화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환자를 대하는 의사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하루에도 수백장의 흑백 X레이 촬영 결과물을 확인한다. 업무량이 늘어날수록 오진할 위험도 높아진다.
흉부 CT 특화 AI로 폐암 예측 ‘척척’
특히 폐암은 전 세계적으로 사망률 1위의 암종으로,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폐암으로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병변인 폐 결절 검출 분석은 폐암 예방을 위한 첫 단계다. 그러나 실제 임상 현장에서 흉막에 붙어있는 결절·혈관·심장 등 다른 구조에 붙어있는 결절로 인해 다른 폐질환 증상이 있는 환자에서 폐 결절을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폐 결절을 찾아내기 위해 가장 먼저 시도되는 것이 X레이다. 사람의 몸을 투시해 어떤 질병이 있는지 간단하게 살펴볼 수 있는 조영 매체다. 여기서 실제로 어떤 질병이 있을 것으로 추정돼 추가로 심도 있는 검사가 요구될 경우 CT를 촬영하게 된다. X레이 사진은 단면만 보이지만, CT로는 여러 겹의 사진을 남겨 장기를 입체로 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폐 결절과 같은 질환은 CT로 찾는다. 흑백으로 된 CT 결과 영상을 영상판독전문의가 매의 눈으로 판독한다.
CT와 관련한 대표적인 의료 AI 기업으로는 폐 분야에 특화한 ‘코어라인소프트’가 있다. 미국 FDA의 허가를 획득한 국내 대표 의료 AI 업체다. 코어라인의 ‘LCS PLUS’라는 상품은 폐 부위에서는 폐암과 만성폐쇄성폐질환(폐기종), 심장에서는 관상동맥석회화 등 총 세 가지 질환을 찾아낼 수 있다.
LCS를 접목한 한 병원의 영상판독전문의에 따르면, 맨눈으로 확인하던 결절 판독을 LCS가 보조해줘 업무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의사만큼 결절을 정확히 잡아낸다. LCS 도입 전엔 영상판독전문의가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는 3명뿐이었다. 여러 장의 사진을 마우스 휠을 굴려 휘리릭 넘기며 결절을 찾아내는 까다로운 업무다. 정적인 결과인 X레이 판독을 주 업무로 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들도 하루 300장 정도만 확인한다고 하는데, 입체 정보인 CT 판독전문의는 더 높은 피로도를 호소할 수밖에 없다. 이때 AI를 접목한 의료 소프트웨어는 마치 의사가 2명 있는 효과를 낸다.
코어라인소프트의 상품은 환자들에게 시각적으로 질병의 유무와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입체 그래픽도 구현한다. 환자들에게 정식 소견을 전달하는 진료과 전문의는 폐 모양 입체 그래픽을 통해 더욱 쉽게 환자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 결절 별로 위치와 부위 사진, 결절 범주 등을 자세히 목록화 할 수 있게 됐다. 의사, 환자 모두 결절을 추적 관찰하기 용이해졌다.
의료시장에서 조기진단과 병행적 발견 또는 2차 소견(Incidental Findings)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코어라인소프트는 현재의 상품들이 집중된 검진 솔루션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다양한 질환에 대한 제품개발 및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저선량 흉부 CT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상병변들을 동시에 스크리닝 할 수 있도록 간질성폐이상, 대동맥류 분석, 골밀도평가, 지방간, 폐색전증 등 포트폴리오를 확장시키는 데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심정지·유방암도 AI로 예측
폐뿐 아니라 심정지를 예측하는 기술을 가진 ‘뷰노’라는 기업도 있다. 뷰노가 개발한 ‘딥카스’는 입원환자의 기본적인 생체 활력 징후 데이터를 활용해 환자의 24시간 내 심정지 발생 위험도를 제시하는 솔루션이다. 지난해 선진입 의료기술로 확정돼 비급여 시장에서 판매 되고 있다.
또다른 의료 AI 소프트웨어 기업 ‘루닛’은 여러 영상 판독 보조 기술을 보유했다. 딥러닝 기술을 통해 영상 촬영물 판독에서 놓칠 수 있는 인간의 시각적 한계를 보완, 보다 정밀한 진단을 돕는 소프트웨어다. 크게 흉부 X레이 영상에서 10가지 이상소견을 검출할수 있는 ‘루닛 인사이트 CXR’과 유방촬영술 영상으로 유방암 의심부위를 검출하는 ‘루닛 인사이트 MMG’로 나뉜다.
이 기업은 바이오마커(몸 안의 변화을 알아낼 수 있는 생체지표) 솔루션인 ‘루닛 스코프’ 기술도 보유했다. 조직병리 판독을 보조해 바이오마커 발현율을 정량화하거나,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발굴해 치료제의 반응을 예측하는 식이다. 최근 의료 동향이 맞춤형 치료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관심이 집중된 상태다.
영상판독전문의 “실제로 도움 된다”
의료 AI 소프트웨어를 사용해본 영상판독전문의들은 이 소프트웨어들이 업무에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흉부 의료 AI 소프트웨어를 도입한 병원의 한 영상판독전문의는 “처음 도입 1~2년 동안엔 의료 AI 보조 솔루션이 정말 도움이 될까 의심하기도 했는데, 반복해서 사용해보니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특히 뼈와 뼈 사이나 폐가 심장과 겹치는 경우에는 AI 솔루션과의 교차 판독으로 재차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AI 분석 결과 문제 없다고 나오지만 의사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고, 반대로 AI는 문제가 있지만 의사는 정상이라고 판독할 때가 있다”라며 “그럴 때는 가장 보수적으로 문제가 있는 쪽으로 판별하며, 이처럼 작은 결절도 지나치지 않게 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다른 영상판독전문의는 의료 AI 소프트웨어가 업무에 도움이 된다면서도, 병원이 이 소프트웨어 구입에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솔직히 숨만 헐떡거려도 0.2mm는 하얗게 변하는게 병변일까 싶은데 (너무 세밀하게 찾아내는 AI 성능 때문에) 20년 이상 흡연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생각해봤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정식 연구 결과는 아니지만)‘어떤 때는 이 결절이 폐암으로 발전하진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이를 빗나간 환자가 한 두 번 있었던 거 같다”라며 “다만 아직까지 이런 AI 분석 솔루션이 투자 대비 얼마나 장기적으로 큰 효율이 있을지는 궁금증이 남는다”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