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정년퇴임 교수의 고별강연

지난 1월 27일 오후 2시 혜화동 방송대 디지털미디어센터(DMC) 4층에서 열린 ‘안병국 교수 고별강연’은 그가 근래 행한 강연의 최종 버전으로, 자신과 남은 동료 교수들 그리고 제자들에 대한 당부를 담아 새삼 눈길을 끌었다. 그는 과연 어떤 내용의 강의를 전달한 것일까.

고교 1학년 학생이 축하 공연한 사연
오문의·김성곤·장호준·변지원·방금화·김나래·원혜련·장희재 교수와 동문 제자들과 재학생들이 참석한 고별강연은 손정애 교수의 사회로 시작됐다.
축하 공연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이서율 양의 해금 연주가 청중을 사로잡았는데, 오래전 안병국 교수가 인천에서 출석수업을 할 때 엄마를 따라왔던 애기가 훌쩍 커서 ‘엄마를 가르쳤던 교수님’의 퇴임을 축하하기 위해 자원했다고 한다. 인연은 이어져서 새로운 길을 만드나 보다.
이어 변지원 교수가 안병국 교수의 이력을 정리해 보고했다. 변지원 교수에 따르면, 안 교수는 34년 전인 1990년 4월 1일 ‘만우절’에 방송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그의 나이 32세 때다. 이후 학생부처장, 학보사 주간, 인천지역대학장, 기획처장, 경기지역대학장을 두루 역임했다.
중국시와 관련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중국명문감상』,『기초한자』,『초급한문 등의 교재와『맹자 한문 문법의 구조 분석』,『당시사 연구』(편역) 등의 학술서를 썼다. 퇴직 교원으로 정부 포상 옥조근정훈장 대상자로 추천됐으며, 3월부터는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로 추대될 예정이다.
실제 나이보다는 10년 정도 더 젊어 보이는 동안(童顔)의 안 교수는 특유의 위트와 유머, 촌철살인의 화법으로 고별강연 내내 객석을 들었다 놨다 했다. 그는 자신의 고별강연 제목을 ‘방송대 행복한 동행’으로 명명했다. 안 교수는 ‘동행’을 ‘서로 지켜주고 함께 한다’는 뜻으로 풀어내면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 중문학과는 선후배와 스승을 생각하는 그런 끈끈한 끈이 있는 곳 아니겠습니까?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그런 끈이 많이 끊어졌지만, 오늘과 같은 자리를 계기로 사제지간 또 선후배 간에 이런 모임과 정을 나누는 기회가 앞으로 계속됐으면 합니다. 동행은 오늘 제가 가장 말하고 싶은, 그리고 저를 이렇게 여러분에게 소개할 수 있는 가장 축약된 어휘가 아닌가 합니다.”

사제지간, 선후배 간에

좀더 긴밀하게‘단결’하는 일이 필요하다.
선후배가 서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각 지역에서 모이고,
이렇게 학생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학과 교수들이 달려가
좋은 지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서로 지켜주고 함께한 34년의 의미
안 교수는 고별강연을 △걸어온 과거 회상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담론 설명 △자신과 학과, 제자들에 대한 부탁 순으로 진행했다. 걸어온 시간이 34년이 넘는 장대한 과정이다 보니 신임 교수로 부임하던 1990년의 의미 맥락에 한정해 강연을 풀어갔다. 자신의 임용을 반대했던 학과 선배 교수가 들려주던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 선배 교수님은 한 달 뒤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분이 들려준 말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맴돌고 있어요. 무슨 말을 하셨냐 하면 우리 제자들과 방송대를 사랑하고 잘 봉사해 달라는 말씀이었어요. 그분은 아주 긴 시간 방송대에 재직했기에 방송대가 얼마나 훌륭한 학교인지를 알고 계셨던 거죠. 지난 34년을 저 역시 방송대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동행했던 것 같아요.”
안 교수는 1990년 7월 25일 부산대학교로 첫 출석수업을 갔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부산대 인문대학 강의실은 거의 산꼭대기에 있었기에, 양복을 입고 7월 폭염 속을 걸어 강의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온몸이 물에 빠진 듯 젖어 있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그는 깜짝 놀랐다.
“제가 왜 놀랐을까요? 강의실에 250명의 학생들이 꽉 들어차 있었어요. 강의실 문을 열었을 때 어디 사우나실 문을 연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강의실을 꽉 채운 학생들의 열기가 얼굴에 확 와 닿았어요. 그때 선배들은 그렇게 공부하고 있었던 거죠.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죠.
안 교수는 이쯤에서 자신의 전공과 관련한 내용으로 전환했다. 논어 제1편 제1장 제1단락(학이편)의 저 유명한 구절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을 소개한 그는, 논어를 수백 번 읽으면서 깨달은 내용을 덧붙였다.
“이 구절은 유가사상의 강령인데, 시작을 어떻게 하죠? 학(學)으로 시작해요. 그렇죠. 여기에 주목하셔야 해요. 그리고 끝을 뭐로 맺죠? 군자(君子)로 매듭을 짓잖아요. 이 ‘학’으로 시작해서 ‘군자’가 되는 것이 논어 전체의 핵심 강령인 셈이죠. 군자는 오늘날 인격과 덕을 갖춘 사람을 의미합니다. 배움을 통해 인격과 덕을 갖추는 것, 우리 방송대인에게 익숙한 것 아닌가요?”

한국문화의 핵심은 배움의 열정
그런데 논어에 담긴 유가사상의 강령은 중국에서 건너왔다. 안 교수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이것을 어떻게 우리 것으로 만들었을까. 중국을 자주 방문했던 안 교수는 최근 청도에서 목격한 중국인들의 모습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공원에 나와 있는 중국 노인들 90%가 ‘카드놀이’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 한국인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공부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다른 민족과 달리 배움에 대한 열정,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는 것에 엄청난 열정을 지니고 있거든요. 우리 방송대를 보면, 이런 배움에 대한 열정이 굉장하거든요. 이런 점에서 오늘날 현대의 우리 문화가 이렇게 배움의 열정을 각인하게 된 데는 방송대의 공헌이 컸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안 교수는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라는 논어 술이편의 한 구절을 빌려 자신의 은퇴 이후 삶의 지향점을 설명했다. 34년을 열심히 연구하고 가르쳐 온 삶(발분망식)이었고, 이렇게 공부하고 가르치는 즐거움에 세상 번뇌마저 잊었는데(낙이망우), 돌아보니 어느덧 늙어버린 것도 모를 정도로 늙었다(부지노지장지)는 그의 설명은, 남은 시간도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안 교수의 강연은 자연스럽게 마지막 부분으로 접어들었다. 나이 들어서도 놓치지 않는 배움의 열정, 그 열정을 지피는 역할을 ‘방송대’가 계속 맡아서 끝까지 가줘야 한다는 당부였다.

학과와 제자들에 대한 당부
방송대 중어중문학과는 학과 창설 이래 지금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정치적 환경 변화 등으로 학생 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 떠나는 교수 처지에서는 이보다 더 마음 아픈 일은 없으리라. 그래서 사제지간, 선후배 간에 좀더 긴밀하게 ‘단결’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후배가 서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각 지역에서 모이고, 이렇게 학생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학과 교수들이 달려가 좋은 지식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성곤 교수는 떠나는 선배 교수에게 ‘安根榮枝’라고 쓴 글귀를 증정했다. ‘안병국 교수가 내린 뿌리에서 많은 가지들이 무성하게 자라난다’는 뜻이다. 안병국 교수가 내린 뿌리에서 더 많은 꽃가지들이 영글기를 기대한다.


2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1
댓글쓰기
0/300
  • juic***
    안병국 교수님의 수업을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학생입니다.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고 떠나가시는 것이지만 아쉽기만 합니다. 명예 교수님으로 계시면서 좋은 것 많이 가르쳐주세요 올 해 중급한문 시험을 너무 엉망으로 봐서 속상했지만 제가 저지른 일이라 받아들이고 다음 학기에 다시 학습하기로 하였습니다. 서예도 해보고 한자를 배우기도 했지만 그 때는 미처 몰랐던 가치들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참석해보고 싶던 자리이나 가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기사 감사합니다.
    2024-02-06 18:14:13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