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정년퇴임하는 이해주 교수(교육학과)

“1997년 시간강사로 서울지역대학에서 강의했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해요. 아기를 업고 강의실 맨 뒤에서 수업을 듣는 여학생이 있었어요. 공부하고 싶은 마음과 아이를 봐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제가 알기에 가슴이 찡했었지요. 답안지를 보니 제 농담까지도 적혀 있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스펀지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방송대라는 걸 느꼈죠. 이런 학생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제가 학생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도 ‘공주’였거든요. ‘공부하는 주부’요.”(웃음)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서야 박사과정을 시작했던 이해주 방송대 교수(교육학과)가 2월 29일 퇴임을 앞두고 있다. 1999년 방송대에 부임해, 서울지역대학장을 마지막으로 25년 방송대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퇴임을 앞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시원 섭섭하다”라며 해사하게 웃었다.

 

평생교육사 그리고 평생교육프로그램개발 경진대회
방송대에서 한 여러 일들 중에 평생교육사 자격증 과정을 설치한 것은 이 교수에게 가장 큰 보람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다. 학제가 바뀌고 방송대가 교사자격증을 발급할 수 없게 되면서 만든 대안이다. 하지만,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따도 ‘써먹을 데가 없다’는 학생들의 말에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평생교육은 학교 밖, 제도권 교육의 틀을 벗어나 소외된 학습자들에게 교육을 제공해,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출발했죠. 사실 폼나거나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었기에 가시밭길을 걷는 학생들에게 매우 미안했습니다. 그래도 분명히 제가 아는 건, 우리 사회가 평생교육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따뜻해지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변한다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학생들이 활동할 방법을 고심하다가 ‘평생교육프로그램개발 경진대회’를 기획했다. 경진대회가 올해로 20돌을 맞으며 수상한 프로그램으로 지역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는 제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방송대평생교육사협의회로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랜 기간 자원봉사로만 활동하던 학생들이 스스로 길을 개척하며 지역활동가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믓하다고 한다. 

학생의 학습에도 관심을 가졌다. 중도이탈률이 50%가 넘던 시기, 이 교수는 학습스터디(동아리)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함께 공부하면 졸업할 수 있다며, 학생들의 스터디 활동을 독려했다. 이어 선배들이 후배들의 학습을 돕는 ‘멘토링 사업’도 제도화했다. 장시원 당시 총장도 적극 지원했다. 

 

교육과학대학장을 하면서는 학과 교수진들과 함께 ‘실습지도교수제도’를 만들었다. 당시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문 활동가들이 거의 무료 봉사처럼 실습지도위원으로 위촉됐었다. 그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학생 40명당 실습지도위원 1인’이라는 규정이 만들어져 학교차원에서는 실습지도교수제도를 만들어야만 했고, 이들에게 실습비 수당 지급이 가능해졌다.

 

이 교수는 “우리 과 학생들은 훗날 투터가 되는 것이 꿈이고 그 튜터들의 꿈은 자신의 지역에서 실습지도교수가 되는 거예요. 이들을 중심으로 지역 평생교육활성화가 이뤄지도록 구조화했고, 그것이 전체적으로 학습과 일로 선순환작용을 하고 있다고 봐요. 교육학과의 성공 비결 중 하나겠죠?”라며 웃었다.

 

낡은 노트 빼곡히 채운 이름들
이 교수는 방송대에서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고 강조했다. 그냥 대학학위를 얻고자 교육학과에 들어왔던 학생 중에 박사까지 따고 교수가 된 제자가 10명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현장에서 평생교육 실천가로 활동하는 이들까지 치면 훨씬 많다. 그는 이들을 ‘스승 같은 제자’라고 표현한다.

 

인터뷰 도중 갑자기 일어난 이 교수가 겉표지가 다 헤진 노트 한 권을 들고 왔다. “여기 보면, 실제로 지역에서 평생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제자들이 참 많아요. 대구에는 몇 년도에 졸업한 누가 어떤 활동을 하고, 청주에는 어떤 동문이 무슨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고, 이런 것들을 다 넘버링해서 기록했죠. 지역마다 다 있어요. 이걸 계속 늘려가는 것이 제 소망이었거든요.”

 

20년 넘게 노트에 차곡차곡 기록했던 이름들 중에는 실제 이 교수가 현장으로 찾아가 인터뷰한 이들도 많다. 아이 엄마로 살던 경력단절 여성, 학위가 필요했던 여성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 방송대에 오게 되고, ‘00엄마’로 불리다가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경험을 한다. 이후 이들은 학습동아리에 가입하고, 함께 토론하며 학습을 하면서 사회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스터디장이나 학생회 임원이 되면서 리더로서의 역할도 경험한다. 교육봉사를 시작하고 봉사활동을 통한 사회참여로 이어진다. 이들 덕분에 이 교수의 전공인 ‘시민교육’이 수년에 걸친 추적으로 도식화될 수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논문 「중년기 여성의 시민성 발달과 시민참여에 관한 연구」(〈통합인문학연구〉 제8권 2호, 2016)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인터뷰 내내 우리 사회에서 방송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방송대가 의미 있는 이유로는 ‘진짜 시민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성인이 올바른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인교육이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방송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간 썼던 논문들을 리뷰하면서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시민을 길러내야 할 것인가, 여러 준거에 의해 발생하는 차별을 불식하고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 제시를 지난달 출간한 학술서 『다문화시민교육』(에피스테메)에 담았다.

 

“방송대는 나의 전부”
평생교육원장, 교육과학대학장, 프라임칼리지학장 등 여러 보직을 거쳤지만, 서울지역대학장으로 학생들과 밀착했던 1년은 잊을 수 없다. 서울총학생회의 파행 사태 정중앙으로 들어가 한 학기를 학생들과 대화해 결국 정상화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학생회 구성원들에게 이 교수는 이렇게 당부한다. “우린 결점투성이의 존재입니다. 상대가 어떤 결점이 있다고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어요. 나 역시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닌 걸 인정하면, 상대의 단점도 포용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숙원사업이었던 ‘U3A 프로그램’(University of the Third Age) 시험 가동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고령화되는 현시점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노인문제를 방송대 지역대학 층위에서 실험해본 것이다. 8주간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거의 ‘100% 만족한다’라고 답할 정도였다.

 

이 교수는 “노년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U3A를 통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살겠다는 응답이 많았으며 학교가 졸업생에게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졸업생도 있었다고 이야기 하였다. 이러한 U3A와 같은 노년교육 프로그램은 방송대가 앞으로 고령화사회를 위해 중요한 사회적 기여를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졸업생이 다시 학교로 재편입하게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연구와 교육으로 바쁘겠지만, 후배 교수들이나 지역대학장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그래도 분명히 제가 아는 건,

우리 사회가 평생교육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따뜻해지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변한다는 겁니다

 

25년을 보낸 방송대는 이해주 교수에게 어떤 의미일까? 라는 질문에 ‘나의 전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울컥한 마음을 잠시 다스린 이 교수는 ‘내가 가진 생각, 내 인생의 꿈을 실현해 보고자 했던 학교’였다고 덧붙였다. 퇴임 후에는 지역사회교육실천본부에서 봉사할 예정이며, 개인적으로는 악기와 외국어를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방송대 일본학과 입학도 생각 중이다. 그런데 “저도 시험 보는 게 두려워서 걱정이 되기는 해요”라며 살짝 웃었다.

 

이 교수의 마무리 말이다. “후배 교수님들은 알아서 저보다 더 잘하실 테니 걱정 하나 없이 갑니다. 방송대가 우리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학교인 만큼,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더 배우고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그것이 개인적인 성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나 사회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줘서 좀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에 도움을 주는 사람, 방송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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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36***
    교수님 감사합니다!
    2024-02-25 18:10:10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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