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화에서 신화로

중앙아프리카 콩고공화국의 은양가(Nyanga)족의「음윈도(Mwindo)」는 널리 알려진 구비영웅서사시다.

콩고 은양가族의 구비영웅서사시
음윈도의 아버지인 쉐음윈도(Shemwindo)가 몇 년 전에, ‘그가 아들을 가진다면 그 자신이 고통 속에 빠질 것’이라는 불길한 조짐이 있음을 알고 그의 일곱 아내를 동시에 임신시키고 그중에 사내아이를 낳으면 죽이겠다고 경고했다. 이후 여섯 아내는 모두 딸을 출산하지만, 한 명의 선택된 아내가 사내아이인 음윈도를 낳았다.
임신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이(神異)한 현상은 영웅의 비범한 출생 요건을 갖추는 구실을 담당한다. 모친의 오두막 문 앞에 이미 어디서 온 것인지 알지 못하는 한 다발의 장작이 있었다고 하고, 얼마 후에 집 주위를 둘러보니 한 동이의 물이 있었으며, 다시 얼마 후에 이수사(Isusa)라고 하는 식물이 집에 있었다고 했다. ‘불’과 ‘물’과 ‘작물’로 개념화되는 세 가지의 매개물이 지내 온 근본 내력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왔다고 함으로써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어미가 담당하던 집안일을 대신 수행하는 신이한 행적을 보임으로써 인간 세상에 예사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는 특별한 능력을 이미 지녔다고 하는 설정을 했다.
그런데 음윈도의 출생은 사내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쉐음윈도의 금기를 어긴 셈이 돼 음윈도에게 시련이 닥쳤다. 음윈도가 태어난 오두막집의 벽에 붙어있던 귀뚜라미가 사내아이의 출생 사실을 쉐음윈도에게 발설하자 쉐음윈도는 창과 숫돌을 들고 와서 음윈도를 죽이려 했다. 갓 태어난 음윈도가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력을 지녀 쉐음윈도의 살해 시도는 실패했다. 무덤 속에 묻어버린 음윈도가 탈출하자 북 안에 가둬 다시 강물에 던져버렸다. 흔히 보이는 ‘영아살해(兒殺害)’의 신화소가 부자간의 대결이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사진 출처= www.parentmap.com

결국「음윈도」 서사시는「무키티」와 「쉐음윈도」라는
두 서사시의 우열 관계를 역전시킨 위대한 영웅 음윈도가 등장해

앞세대의 구비영웅서사시를 자신의 서사시로 포괄하고 확장한
내력을 드러내고, 음윈도 자신의 위대함을 힘써 강조하기 위해

대립에서 협력의 관계인 영웅 은쿠바의 서사시를 결부시켜
영웅서사시의 내용을 다채롭게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음윈도는 오른손에 왕권을 상징하는 콩가의 홀(笏, Conga-scepter)을 쥐고 왼손에는 나무를 깎는 연장을 들었으며, 카홈보의 영혼이 깃든 작은 가방을 왼편으로 엇메고 태어났으니, 그 비범한 출생을 짐작할 수 있다. 부친으로부터 유기된 음윈도는 이후 자신의 영웅적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영웅서사시의 주인공으로서 부족함이 없게 된다.
북 안에 갇혀 떠내려가다가 음윈도는 야나(Yana) 마을에 이르러 한 여인과 함께 마을로 들어가게 됐다. 그곳에서 카시예음베(Kasiyembe)라는 여인이 은쿠바(Nkuba)라고 하는 번개의 정령인 힘센 고슴도치에게 명해 음윈도가 있는 오두막을 불태워 버리려 했으나 음윈도가 벼락을 비켜 가게 하여 오히려 마을이 불타고, 카시예음베는 머리에 불이 붙어 죽임을 당했다. 마을 사람들이 음윈도에게 굴복하고 그를 따르기로 했으나, 뱀의 정령인 무기티(Mukiti: 신적인 능력을 지닌 물뱀으로 음윈도의 고모인 ‘이양구라(Iyangura)’가 무키티에게 시집을 갔으니 음윈도의 고모부가 되는 셈이다)를 두려워하자 무키티의 영역인 마법의 물 밖으로 물길을 돌려 무키티를 죽여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음윈도에게 피부와 하나가 되는 마법의 철갑옷을 만들어 주었다. 은쿠바는 이후 음윈도가 과업을 성취하게 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음윈도는 고모인 이양구라에게 자기들은 지금 투본도(Tubondo: 쉐음윈도의 마을)로 돌아가 아버지인 쉐음윈도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본도 마을을 불태워 버린 음윈도는 숨진 숙부들을 되살려냈다. 음윈도가 투본도로 귀환하자 부친인 쉐음윈도는 음윈도를 피해 지하 세계(키코카 나무의 뿌리 아래에 있는 세계)로 숨어들었다. 이로써 직접적인 대결을 벌이지 않고도 아들 음윈도는 승리를 쟁취했다.
투본도를 접수한 음윈도는 도망간 부친을 찾아 지하 세계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죽음의 신인 무이사(Muisa)의 딸 카힌도(Kahindo)를 만났다.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온몸에 피부병이 퍼져 곪은 상처가 가득했다. 그녀의 도움과 음윈도 자신의 능력으로 무이사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무이사가 제시한 과업들을 성취하고는 무이사를 징치했다. 이 과정에서 음윈도는 두 차례 죽음을 경험하지만, 그의 홀과 은쿠바, 그리고 이양구라의 도움으로 살아남으로써 죽음을 넘어서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그 노정에서 음윈도는 카힌도의 병을 완치시켰다. 카힌도가 음윈도에게 청혼을 했지만, 음윈도는 인간 세상의 여인과 결혼하겠다며 거절하고 그녀와 헤어졌다.
음윈도는 다시 부친을 찾았으나 부친은 거대한 땅돼지의 정령인 은툼바(Ntumba)가 가로막고 있는 동굴에 숨어버렸다. 음윈도가 은툼바를 징치했지만, 쉐음윈도는 다시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음윈도가 천상신의 거인 아이들을 만나 먹을 것을 만들어 달라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자 그들은 12개의 거대한 그릇을 엎어 길을 만들어 구름 속으로 갈 수 있도록 했다. 천상으로 올라간 음윈도는 천상신과 시합을 벌여 처음에는 졌으나 결국에는 승리해 천상신의 영역과 부친의 생명을 접수할 수 있었다. 본향으로 귀환하는 길에는 자신이 징치한 여러 신격들을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고 천상을 다시 무이사에게 돌려주는 등 승리자의 포용력을 한껏 과시했다.
투본도에 귀환한 음윈도는 이양구라의 충고를 듣고 마을 사람과 가축들을 되살리고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재건한 마을에서 이양구라를 중심으로 좌우에 음윈도와 쉐음윈도가 앉아 마을 회의를 소집한 후 공식적으로 쉐음윈도의 잘못을 스스로 말하도록 하고 음윈도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주게 했다. 이 자리에서 음윈도는 은쿠바를 찬양했다.
음윈도가 위대한 왕이 돼 통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음윈도는 야생 돼지가 먹고 싶어 네 명의 피그미들에게 야생 돼지를 잡아 오게 했지만, 용이 나타나 세 명의 피미그들을 삼켜 버리고 말았다. 살아남은 한 명의 피그미가 이 사실을 음윈도에게 알리자 음윈도가 직접 왕권을 상징하는 콩가의 홀을 사용해 용을 죽여 버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은쿠바(용의 친구)가 음윈도를 나무라면서 그를 잡아끌고는 천상으로 올라가 1년 동안 천상의 일월성신을 두루 만나게 하고, 살생하지 않도록 깨우쳐 주는 등 세상의 이치를 알도록 했다. 은쿠바와 함께 지상으로 귀환한 음윈도는 부족 사이의 전쟁과 간음 등을 금하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하고 부족을 조화롭게 통치했다.
각 편에 따라서 쉐음윈도는 구금의 상태에서 아들인 음윈도가 자신보다 위대한 영웅이며 통치자임을 지켜보는 것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하는 내용이 있고, 음윈도에게 자신의 영역을 넘겨주고 다른 지역(산)을 맡아 다스렸다고 하는 내용이 전승되기도 한다.

출생과 유기, 시련과 극복의 서사
음윈도 서사시는 출생과 사진 출처= www.parentmap.com유기, 시련과 극복의 다채로운 요소를 지닌 서사시로 평가할 만하다. 음윈도는 족장인 쉐음윈도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구비영웅서사시에 흔히 나타나는 왕자로서의 신분적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쉐음윈도는 정치적 군장으로서의 성격을 지닐 뿐 아니라 신이한 능력도 아우른 존재로 인정된다. 음윈도를 피해 달아난 곳이 지하 세계이고 천상계인 점은 쉐음윈도의 초월적 능력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음윈도는 고모부인 무키티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부친인 쉐음윈도가 자신의 과오를 깨닫도록 하면서 아들인 자신의 능력이 부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하는 선에서 부자 사이의 대결도 마무리됐다. 각 편에 따라 다른 결말이 있기는 하지만 쉐음윈도가 음윈도에게 통치권을 넘기고 다른 곳을 맡아 다스렸다고 하는 설정이 일반적이어서 극단적 대결의 결과를 확정하지 않았다.
「음윈도」서사시에서 영웅 음윈도와 대립 양상을 보이는 존재들은 쉐음윈도, 무키티, 은쿠바다. 은쿠바는 번개를 다스리는 고슴도치의 정령으로 음윈도와 함께 활약하기도 하지만, 야생 돼지를 잡으러 간 피그미들을 잡아먹은 용을 음윈도가 징치하자 그를 천상계로 잡아가서는 1년 동안 천상을 두루 다니게 하는 대단한 능력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은쿠바에 의해 음윈도는 천상의 일월성신을 두루 만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됐다고 했으니 은쿠바의 능력은 후반부에 부각돼 있는 셈이다.「음윈도」서사시에서는 은쿠바가 음윈도의 영웅적 과업을 성취하게 하는 절대적 원조자일 따름이지만, 서사시의 후반부에 보이는 그의 행적은 음윈도에 비해 결코 은쿠바의 능력이 뒤떨어지는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점을 주목하면 야나 마을에 오랫동안 전승돼 온 가칭「은쿠바」서사시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투본도 마을에 야나 마을이 복속된 역사적 사실이 있어서 두 마을의 위대한 영웅에 관한 서사시가 이런 방식으로 결합해 하나의 서사시로 형성됐을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무키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야나 마을의 숭배 대상이었던 무키티가 그 지역에서 대단한 위세를 떨쳤다고 하는 점이 서사시의 내용에 드러날 뿐 아니라 투본도 마을의 쉐음윈도가 그의 누이인 이양구라를 무키티와 혼인하게 하는 대목이 장황하게 전승되고 있어서 개별적인 전승을 지속시켰던「무키티」서사시의 존재 가능성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서사시 전승 흡수해 확장
쉐음윈도 역시 그에 대한 서사시가 전승을 지속하다가 아들인 음윈도가 아버지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서 자기네 집단의 긍지를 드높인 사실을 자랑스럽게 노래하기 위해 2대기로의 서사시 확대가 불가피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쉐음윈도와 무키티의 연합이 실제 두 집단 사이에 지속되다가 음윈도에 와서 우열 관계를 분명히 하면서 서사시의 결합이 일어났다고 짐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쉐음윈도가 누이인 이양구라를 무키티에게 시집보내기로 하는 과정에서 무키티에게 열등한 관계에 있는 쉐음윈도의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구비문학회 연구이사 등을 지냈으며,『창조신화의 세계』『한국-동유럽 구비문학 비교연구』『신화의 세계』등을 썼다. 비교신화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존재는 「무키티」서사시에「쉐음윈도」서사시가 종속적으로 결합됐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결국「음윈도」서사시는「무키티」와 「쉐음윈도」라는 두 서사시의 우열 관계를 역전시킨 위대한 영웅 음윈도가 등장해 앞세대의 구비영웅서사시를 자신의 서사시로 포괄하고 확장한 내력을 드러내고, 음윈도 자신의 위대함을 힘써 강조하기 위해 대립에서 협력의 관계인 영웅 은쿠바의 서사시를 결부시켜 영웅서사시의 내용을 다채롭게 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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