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대 명저 106선 해제 5]

“풀밭을 걸어가다가 돌 하나가 발에 채였고, 그 돌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를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아는 한 그 돌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땅에서 시계를 발견했고, 그 시계가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를 묻는다고 가정해 보자. 앞에서 했던 것처럼 시계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는 답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반대로 시계의 모든 부품들의 정교한 조합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실제로 발견한 그 목적을 위해서 시계를 만들고 시계의 구성을 이해하고 시계의 용도를 의도해서 만든 한 기술자 또는 여러 명의 기술자들이 있어야만 한다.”영국의 자연신학자 윌리엄 페일리(1743~1805)가 쓴 『자연신학』(1809)의 첫머리다. 시계가 있다는 것은 시계공을 암시한다. 길에서 시계를 발견했다면 누군가 시계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유추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걸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페일리는 이렇게 마무리한다.“시계가 이 정도라면 우리가 황야에서 발견하는 생물들은 훨씬 더 그렇지 않겠는가? 심지어 가장 작은 동식물의 가장 간단한 부위조차도 인간의 유한한 제작능력을 훨씬 넘어서므로 ‘제작자 중의 제작자’ 또는 ‘창조자 중의 창조자’, 즉 신의 존재를 암시한다.”이게 바로 그 유명한 ‘시계공 변증’이다. 찰스 다윈은 에딘버러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포기하고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크라이스트 칼리지는 존 밀턴과 윌리엄 페일리의 학교로 유명했다. 학사 학위를 받으려면 『기독교 변증학』과 『자연신학』 같은 페일리의 책을 읽어야만 했는데, 다윈은 페일리의 책을 읽을수록 그의 논증에 매력을 느끼고 확신을 얻었다.페일리의 ‘시계공의 변증’ 깨겠다고 도전다윈의 눈에는 페일리의 자연신학이 너무나 명징했다. 페일리는 원자에는 생명이 없으며 그 안에는 지성과 고유한 생명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 물질 역시 그 자체로는 지성과 생명력이 없다, 오직 신만이 세상을 창조하고,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고,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관리한다고 했다. 다윈은 페일리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했다.다윈은 페일리의 『자연신학』을 읽고 2년 후 성공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비글호에 승선해 남아메리카로 탐사여행을 떠났다. 다윈은 비글호 여행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여전히 다윈주의자가 아니었다. 다윈이 페일리를 극복하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증거가 필요했다. 그 결과물이 『종의 기원』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올해로 160년이 됐지만 페일리의 ‘시계공 변증’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걸 깨겠다고 나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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