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지평을 넓히는 방송대인

“2021년 2월, 코로나 시기라 졸업식을 저녁에 유튜브 방송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공부하는 내내 학사모를 쓰고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가족과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받는 모습을 수없이 상상했던 나인지라 이런 졸업식이 너무 아쉽고 속상하기만 했다. (…)
유튜브로 졸업식을 시청하는 와중에 2014년부터 오늘까지 내 삶에 일어난 수많은 다이나믹한 변화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단지 중학교 졸업장만이라도 갖는 게 소원이었던 나에게 이 짧은 세월에 대학 졸업장까지 손에 쥘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 많은 변화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은 채 잘 견디어 내었다. 앞으로도 나를 더욱 사랑하며 힘차게 살아가리라.”(손혜선 지음,『일기장의 기적』, 프로방스, 2023.12., 193~194쪽)

작가가 되겠다는 두 번째 꿈 성취했다.
방송대에서 배우는 즐거움이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수레바퀴 역할을 충분히 해줬기에
치유가 일어나는 기적도 경험했다.

 

56세에 중졸 검정고시에 도전
1973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4세 때부터 친척 집과 버섯 농장을 오가며 일을 시작했다. 22세에 서울로 와서 살며 일하다가 목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의 주폭과 가정폭력이 그의 등을 후려쳤다. 2015년 56세의 나이로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이듬해에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2016년 57세에 방송대 청소년교육과에 입학해 2021년 2월 61세에 드디어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지금도 스포츠센터에서 하루 4시간 일하며 손녀를 돌보고 있는 손혜선 동문의 삶은 숫자로는 결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가 살아온 절박하고 처절한 삶의 흔적은 2015년 1월 26일 EBS 프로그램 ‘달라졌어요’에 방영된「눈물로 얼룩진 모정의 세월」편에 그대로 담겨 있다. 이를 계기로 손 동문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중학교 졸업장을 갖겠다는 꿈을 성취했을 뿐만 아니라 방송대 공부를 통해 제2의 꿈을 꿨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월 24일 토요일 오후 5시, 안산시 단원구 화랑로 359번지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단출한 그의 출판기념회에는 방송대와 회사 동료, 교회 성도들, 독서모임 지인들 30여 명이 함께했다. 손혜선 동문의『일기장의 기적』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두 번째 꿈 성취를 응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치유를 가져다준’이라는 책의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제가 출판한 책은 일기장의 기록을 통해 오랜 아픔인 트라우마가 해결돼 치유가 있기까지의 여정을 정리한 것입니다. 어려서도 일기를 썼고, 육아와 바쁜 세상일로 중단했다가 어른이 되어 살만해질 무렵인 50대 이후부터 다시 일기를 썼어요. 그 기록이 과거를 자세히 볼 수 있게 정확한 타임머신 역할을 해준 덕분에 저의 오랜 과제가 풀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기장 속에는 방송대에서의 힘들고 즐거웠던 생활도 기록돼 있어요. 방송대에서 배우는 즐거움이 제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수레바퀴 역할을 충분히 해줬기에 치유가 일어나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죠.”
분홍색 스웨터 상의에 머플러를 한 손 동문이 지인들에게 사인해 줄 책을 쌓아놓고 앉아 있었다. 그와 인연을 맺은 이들이 나와 기억과 추억을 전했다. 무작정 찾아가 글쓰기를 가르쳐달라고 매달렸던 손 동문의 ‘글쓰기 스승’ 천원석 박사(경기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EBS 진원찬 피디, 안산문인협회장 김영숙 시인, 그의 막냇동생 손상진 씨 등이 마음을 담아 축하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빛나는 삶으로 변화해 온 삶의 모습
손 동문의 책 출판에 큰 힘이 돼 준 천원석 박사는 “누군가에게 생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살고 있을 때 어느 날 손혜선 작가가 찾아와 글쓰기를 가르쳐달라고 매달리더군요. 그 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가 빛나는 삶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죠. 그를 만난 것은 저에게 큰 축복입니다”라고 말했다.
손 동문은 사실 책을 내겠다는 결심을 하고서도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왜 내야 하나? 책을 내도 될까? 평범한 사람의 일기장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을 출판한 뒤 주변에서 보인 반응을 보면서 ‘책 내기를 참 잘했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힘들게 살고 있는 분들이 자신의 책을 읽고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소망도 갖게 됐다.
“방송대 청소년교육과를 다닐 때도 컴퓨터 문외한이라 정말 고생했어요. 독수리타법이라고 하죠?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긴 글을 써가다 보니 나중에는 익숙해지더군요. 그렇게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이 놀랍더라고요. 꿈인지 생시인지…. 출판사에 보내고 수정본을 받으니 비로소 실감이 나더라고요. 진짜 책이네, 내가 책을 썼구나, 스스로 감동했죠. 제 책이 주변에 퍼져나가면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슴이 벅찼어요. 두렵기도 했고요.”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한 지인은 “손 작가님의 책을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책을 다 읽고 내려놓을 때는 정말 무겁게 내려놓았죠.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이뤘던 것 같아요. 가슴이 먹먹하고,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어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는데, 말로는 부족한 것 같아요”라고 고백했다.
손 동문은 방송대 생활 가운데 출석수업에 참석하던 일과, 방송대 한마음체육대회를 특별하게 기억했다. 방송대생이라는 실감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혼자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했다. 스터디는 주로 시험 때 활용했다.
받았던 도움 나눠주고 싶어
그 자신이 어려운 가시밭길을 헤쳐오느라 덕지덕지 상처를 입었지만, 일기장의 기록을 통해 치유를 경험했던 터라 후배들을 위한 덕담도 빠뜨리지 않았다.
“직장 일만도 힘든데 방송대 공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먼저 겪어서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이 시기 또한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때문에 대학 공부가 힘들긴 하겠지만, 거기서 얻어가는 지식과 경험들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후배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 될 거라고 믿어요.”
오랜 일기 쓰기를 통해 꿈꾸던 작가가 된 손혜선 동문. 자신의 책이 세상에 선을 보였고, 많은 독자의 반응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향후 어떤 방향으로 글을 써갈지는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는 치유 모임이나 작은 독서모임 등에 자신이 받았던 도움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힘든 삶에도 무너지지 않고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냈다”라고 그를 지켜본 막냇동생 손상진 씨의 말처럼, 슬픔도 감동으로 만들어 내면서 보석처럼 빛나는 자신의 스토리를 들려준 손혜선 동문의 다음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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