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eekly 시네마

그날 이후, 평범했던 한 아버지는 카메라를 들었다. 단원고 2학년 1반 17번 지성이 아빠 문종택 씨다. 세월호 유가족 방송 416TV를 운영하는 아버지는 2014년 4월 16일 참사 이후 10년, 3,654일 동안의 시간을 지금도 담고 있다.

 

문종택 감독은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유가족들이 주인공인 ‘우리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세월호 활동가들이 힘을 보탰고, 그렇게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의 10년 세월과 간절한 바람을 담은 아카이브 다큐멘터리 영화「바람의 세월」이 4월 3일 개봉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그리고 5·18을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영화「바람의 세월」은 ‘안전한 대한민국은 가능한가?’,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가족을 상대로 국가폭력은 얼마나 심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혹자는 말한다. ‘아직도 세월호 타령이냐’, ‘이제는 보내줄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말부터 ‘세월호 이야기 나오는 거 보니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구나’라는 비아냥까지…. 남편을 잃은 부인을 미망인, 부모를 잃은 자녀를 고아라고 부르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를 일컫는 단어는 없다. 차마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간 진행했던 숱한 인터뷰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인터뷰 중 하나였던 이유다. “유가족에 대한 그 어떤 욕도 조롱도 괜찮으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말하면 다 받아들이겠다”라고 말하는 문종택 감독을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2014년 수학여행 길에 아이를 잃어버린 단원고 2학년 1반 17번 문지성 양 아빠 문종택입니다. 아이를 대신해 아직도 단원고를 졸업하지 못한 채 근 10년을 동거차도, 팽목항, 목포와 광화문, 국회 등을 헤매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고등학교를 수년째 노숙하다 보니 졸업은 틀린 듯합니다.

 

명예졸업장은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명예가 있는지요? ‘시체 팔이’, ‘세금 도둑’, ‘북한 빨갱이’라는 소리를 10년째 듣고 있거든요. 그저 제 아이의 죽음 앞에 ‘왜?’라는 단 한 글자를 찾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오늘도 억지로 이리저리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태원 경사진 골목에, 녹사평역 광장 아픈 자들 옆에 말없이 카메라를 세워 두면서요.

 

유가족으로 모진 세월을 보내셨는데,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셨습니다
입에 담기 힘든 모욕과 조롱을 들었죠. 하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 영화가 나오면서 ‘세월호 유가족이 하다 하다 못해 영화까지 만들었구나, 도대체 얼마나 더 빼먹으려고 그러지’라는 말이 나올 거라고 예상합니다. 상업적이라고요.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이 영화로 유가족 부모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누가 될까 걱정되는 건 사실입니다. 영화라는 개념조차 없던 제가 왜 기록을 남겨야 했는지 이유를 묻는 건 차후 문제였고, 싸우기에 급급했어요. 그런 저희 유가족들에게 ‘대학에 무상으로 들어가느냐’, ‘보상이 얼마냐’라는 소리를 듣는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더라도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만이라도 좀 말해보자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오프닝 시퀀스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장면으로 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10년이라는 세월 중에 유가족 부모들이 그냥 나오는 웃음을 터뜨린 유일한 날이어서요. 세월호 참사 이후에 유가족들은 ‘공인 아닌 공인’이 됐습니다. 울고 있으면, ‘왜 우느냐’, 웃고 있으면 ‘자식 잃은 부모가 왜 웃느냐’, 가만히 있으면 또 ‘왜 가만히 있느냐’라는 소리를 들었죠. 박 대통령 탄핵 날 유가족 부모들이 일반 시민처럼 웃었어요. 특별법을 요구한 특별한 부모의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웃음을 터뜨린 날이었던 거죠. 안타깝지만, 그날 이후로 그런 웃음은 없었습니다.

 

50테라의 영상 자료를 선별하셨다고요. 분량도 분량이지만, 다시 그 시점을 돌아보며 감정적으로도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2014년 4월 16일부터 카메라를 들었으니 분량은 50테라가 넘죠. 24시간 실시간 방송을 한 날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보면「바람의 세월」영화에는 유가족 10년의 0.001%나 담겼을까요? 답답하죠. 그래도 신기한 건, 영상을 보면 그 뒤에 어떤 장면이 이어지는지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최초 선별작업이 수월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제게 세월호 참사 초기 영상 자료를 주셨던 활동가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담담한 내레이션에서도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내레이션을 거절했습니다. 김환태 공동연출과 어아름 작가의 간곡한 부탁으로 결국 참여하게 됐죠. 처음에는 감정이 북받쳐서 한 글자 한 글자를 꾹꾹 눌러 읽었습니다. 김환태 공동연출이 그러더라고요. 지금 비디오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오디오에서 아버지 감정까지 내레이션에 실리면 관객이 영화를 보기 어려울 거라고요. 쉽진 않았습니다만, ‘국어책 읽듯이 담담하게’라는 디렉션을 따랐습니다. 그렇게 따라갔지만, 결국 마지막 내레이션을 할 때는 울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냐고, 이젠 보내줄 때도 되지 않았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세월호가 국회로 가면서 정치적인 사안이 됐습니다. 언론도 그렇게 다뤘죠.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소통이 아예 안 됐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더 절망했습니다. 유가족은 철저히 배제됐으니까요. 유가족 중에 처음부터 정치적 목적으로 나선 사람이 있을까요? 생명과 안전을 말하려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간 유가족 부모들이 들었던 모욕은 언론에 나온 것의 천분의 일도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든 괜찮습니다. 다만,「바람의 세월」을 보고 말씀해주세요. 그러면 어떤 말이든 다 듣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해주시길 바랍니다.

 

영화에서 5·18 유가족이 세월호 유가족을,
세월호 유가족은 이태원 유가족을 위로한다.
피해자가 피해자를 위로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국가가 제도를 정비하고, 피해자 유가족을 따뜻하게 위로했다면?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10년간 걸어온 길은
안전한 한국사회로의 변화를 위한 과정이었다.

 

10년을 기록하게 만든 힘은 무엇입니까
원론적으로 답하자면, 유가족이 함께 겪어 온 과정들을 남기기 위해서죠. 개인적인 답은 다릅니다. 저는 세월호 유가족 유튜브 채널 416TV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가족들의 눈과 입이 돼야 했어요. 행여나 욕먹을 부분이 있을 때는 저 개인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했던 세월이 벌써 10년입니다. 악에 받쳐 싸우기도 했고, 버티기도 하면서 계속해서 바랐던 건 진상규명이죠. ‘유가족은 진상규명을 원한다’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발신했지만, 그 어떤 언론도 ‘그러면 어떻게 진상규명을 할 거냐’라고 묻지 않더군요. 저는 지금도 이 점이 안타깝습니다.

벌써 10년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가슴 속에는 밤을 새워도 부족할 이야기가 쌓여 있죠. 여러 이야기를 차치하고 이 영화를 만들면서 원한 것은 바로 다음 세대를 위해서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그야말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대형 사고였기에 많은 분들이 기억하죠.

 

그런데 10년이 지나면서 젊은 세대들은 세월호를 그냥 단어로 알아요. 다음 세대들이 이 영화를 보고 ‘세월호는 이랬구나’라는 걸 알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세월호 참사 이후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까지 지금 자신이 사는 나라에 아직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국가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자신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영화 마지막 부분의 내레이션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돌아보면 찰나 같은 순간, 10년의 세월. 어떤 사람은 이제 그만하라고, 어떤 이는 가슴에 묻으라고. 언젠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날, 해수부와 해경처럼 최선을 다했는데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그런 최선이 아니고, 적어도 엄마 아빠는 잘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을 다했노라. 아이들 만나는 날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10년이 다 된 못난 아빠가 이 자리에서 바라고 또 바랍니다.’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