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세상을 바꾸는 방송대 사람들

양복을 입었지만, 구두가 아니라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어림짐작으로도 키는 180센티미터가 훨씬 넘는 것 같았다. 회의실에는 잘 키운 한국 춘란을 비롯해 다양한 난초가 놓여 있었다. 광주에 있는 숭의실업고등학교 3학년 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그길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19세에 시작한 공무원 생활은 54세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천직으로 생각한 농사를 짓다가 전남 도의원을 거쳐 화순군수가 됐다. 1983년 방송대 농학과 전문과정에 학사 1기로 입학해 6년 만에 졸업한 구복규 동문이다. ‘아동·여성·고령 3대 친화도시’를 만들어 가는 구복규 동문을 4월 2일 오후 2시 화순군청에서 만났다. “아동·여성·고령 3대 친화도시는 군민과 함께하는 보편복지의 시작입니다”라고 강조하는 그는 과연 화순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화순 시내에 접어들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화순으로 봄소풍 가자 2024 화순 고인돌 봄꽃축제(4.18~4.29)’라고 적힌 플래카드였다. 활짝 핀 벚꽃 아래 ‘화순 고인돌 봄꽃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마치 꽃잎처럼 반짝거렸다.
구복규 동문이 방송대를 만난 때는 1983년이다. 당시 화순군청 직원 11명과 함께 방송대에 지원해 공부를 시작했다. 화순에서 광주 전남대를 오가면서 출석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구 동문만이 끝까지 완주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중간에 포기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분들은

방송대를 선택한 이상, 처음의 그 결심 그대로 포기하지 말고

완주해 주셨으면 해요.
방송대에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확신하시면 좋겠어요.


‘농학과 학사 1기 졸업생’이란 자긍심
“사실 공부가 많이 어려웠어요.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공부 제대로 안 하면 학점을 받을 수가 없었거든요. 5년 과정을 6년 걸려 졸업한 건, 3학점짜리 한 과목 때문인데요. 그거 때문에 방송대 생활을 더 한 거죠.”
구 동문은 최근 화순에서 열린 광주·전남지역대학 농학과 기원제 및 MT에도 초대돼 자신이 농학과 학사 1기 졸업생임을 강조하면서 후배들에게 ‘방송대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갖고 공부해달라’는 덕담도 건넸다.
그는 ‘방송대 농학과 학사 1기’라는 걸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긍심도 가득 엿보였다, 어디를 가도 자신이 방송대 농학과 학사 1기라는 걸 강조하고, 그 시절 많이 배웠노라고 말한다고 했다. 당시 최종학력이 ‘고졸’이었기에 대학교를 꼭 졸업하고 싶었다. 고교 때도 농업에 관심이 많았고, 농업 기반인 화순군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방송대 농학과 진학은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1980년대 중반 방송대에서 공부한다는 건 ‘고난의 순례길’을 가는 행위였다. 그와 함께 입학했던 동료들이 모두 포기한 것을 봐도 그렇다. 그 역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죠. 아무래도 일하면서 하다 보니 공부를 많이 못 하니까 학점을 잘 받을 수 없었어요. 겨우 C, B 학점 정도였죠. 5년제 과정인데 1~2년 차는 정말 힘들었어요.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죠. 그런데 3년째 다니다 보니, 그동안 했던 공부가 아까운 거예요. 겨우 1~2년 고생했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졸업해야지 하는 오기도 생기고, 수업 내용도 쏙쏙 들어오고, 좀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죠. 물론 학점도 A가 늘었어요.(웃음) 그때 계속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 뚝심도 기르고 공부한 게 제 삶을 바꾼 동력이 된 거죠.”


‘화순을 새롭게, 군민을 행복하게’
구복규 동문은 2022년 7월 민선 8기로 제48대 화순군수에 취임했다. ‘화순을 새롭게, 군민을 행복하게’라는 슬로건도 직접 만들었다. 1974년 5월 화순군 지방공무원 공채에 합격한 뒤로 줄곧 화순을 중심으로 활동했기에, 누구보다 화순 발전을 이끌 자신이 있어서 선택한 길이었다.
“지방자치 역사가 30년이 다 돼가도록 우리 군은 특유의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서 지역발전에 있어서 답보상태를 거듭해 왔어요. 화순의 특성을 반영한 변화와 혁신으로 문화, 관광, 농업, 백신산업 등의 지역경쟁력을 키우면 화순도 얼마든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봐요.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이 모두 이런 인식과 판단 위에서 정립됐죠.”
구 동문이 가장 역점을 두고 펼치는 사업은 ‘관광객 500만 시대를 여는 매력 넘치는 관광도시 조성’이다. 150만 명의 인구를 거느린 광주광역시가 근처에 있다는 지리적 특성을 십분 활용해, 관광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수익 확대를 꾀한다는 것이다. 실제 요즘은 ‘담양’보다는 ‘화순’으로 광주시민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화순을 화순읍 권역, 동부 권역, 서부 권역으로 나눠 각각이 지닌 역사문화·지리적 특성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화순천 꽃강길 조성, 개미산 전망대 조성, 화순 적벽 국가명소화, 사평역 등 임대정 주변 관광지 조성, 고인돌 축제 개최, 능주 역사문화도시 조성, 조광조 유배지 확대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우리 화순은 정말 다양한 역사문화적 서사를 가지고 있어요. 화순 고인돌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제가 담당 과장으로 유네스코에 가서 작업했거든요. 그런 경험을 가지고 화순군 문화광관재단을 본격적으로 가동해 화순만의 차별화된 관광정책을 개발해 관업산업 활성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화순 홍수조절지의 87홀 파크골프장과 아름다운 수변공간은 전국의 파크골프 인구를 끌어들이는 효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구 동문의 화순 발전 계획에는 ‘부자 농촌 만들기’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어떻게’ 인데, 그의 계획이 흥미롭게 들렸다. △능주면 남정리에 농산물 수출단지와 농산물산지유통센터를 조성해 농산물 수출과 유통의 거점 단지로 육성 △5대 지역 특화작목과 신소득 작목(한국 춘란)을 육성하고, 청년과 은퇴자가 안정적으로 영농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책 확대 △2023년 매출 16억 원을 올린 화순군 농특산물 온라인 쇼핑몰 ‘화순팜’의 운영체계를 군 직영으로 변경, 품목을 확대해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 구축 등이 솔깃했다.
특히 ‘난 산업’은 40년 동안 난을 키워온 구 동문의 경험치가 투영된 사업으로 역발상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축하 인사 등에 보통 ‘서양란’을 선물하고 있는데, 이 난초 시장 규모가 거의 1조 원대에 달한다. 문제는 사용되고 있는 난이 대부분 ‘서양란’이라는 것.
구 동문이 ‘한국 춘란’에 주목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 춘란은 추운 북쪽에서는 나지 않아요. 화순도 합천 못지않게 춘란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죠. 실제 벼농사 등 다른 농업보다 단위면적 당 소득을 더 많이 올릴 수 있는 수익성 높은 작물이 바로 춘란입니다. 투입 대비 산출이 높고, 고령인 분들도, 농사에 서툰 분들도 접근하기 수월하거든요.”
그의 부자 화순 만들기는 지역경제 활성화와도 직결된다. 2023년, 118년 역사의 화순탄광이 문을 닫았는데, ‘폐광지역 경제진흥개발사업’을 반드시 통과시켜 광부들의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농업 분야에서는 ‘난 산업’ 육성으로 신성장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바이오산업 인력 양성 교육을 곧 시범 운영할 예정이며, 지난 2월에는 전라남도와 함께 ‘국가 첨단 전략산업 바이오 특화단지’ 유치 신청에 나섰다.

눈길 끄는 만원 임대주택과 천원 보육
화순군에서 진행한 정책 가운데는 다른 곳에서도 벤치마킹을 해간 사례들이 있다. 전국 최초로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만원 임대주택 지원사업을 추진해 호평을 받고 있다. 2023년부터 2026년까지 매년 100호씩, 총 400호 공급할 예정이다. 작년에 100호 물량을 상반기 50호, 하반기 50호 나눠서 공급했는데, 올해는 100호 물량을 상반기 중에 전부 공급하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오니까 울음소리가 나고,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판단이다.
‘전국 최초’는 또 하나 있다. ‘다문화 가족 자국민 전담팀’을 신설해, 다문화 시대를 대비한 인구정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베트남, 필리핀 등 현지에서 화순에 정착한 다문화 가족 주부를 임기제 공무원으로 발탁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이다. 이들이 다문화 가정을 방문해 통역도 해주고, 아이들 교육도 도와주고 은행 업무나 민원까지 해결해 주고 하다 보니 가정도 화목해지고 안정되고 있다.
또한 전남 최초로 ‘화순형 24시 어린이집’ 두 곳을 지정해 보육환경 개선에도 선도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 시간에 1천 원을 내고 보육 돌봄을 받는 ‘천원의 보육’인데, ‘만원 임대주택 보급’과 함께 젊은 군민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다.

“포기하지 말고 방송대 완주하길”
화순을 제2의 국가 정원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구 동문은 ‘재임 기간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군수로 화순의 안정된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남은 열정을 쏟겠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대가 좀더 다양한 융합전공들을 만들어 변화를 선도해 줬으면 한다.
“요즘 정보 해킹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디지털 보안 관련 분야를 만들거나, 제가 나온 농학과의 경우, 대단위 영농과 관련된 교과목을 제공해 주면 좋겠어요. 농학과를 지원한 분들이 농업 현장에서 새로운 혁신을 꾀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리고 지금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분들은 방송대를 선택한 이상, 처음의 그 결심 그대로 포기하지 말고 완주해 주셨으면 해요. 방송대에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걸 확신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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