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캠퍼스패밀리

“언니들, 우리도 가방끈 좀 늘려보자!”
인천에 거주하는 세 자매가 방송대 교육학과와 인연을 맺게 된 결정적인 한마디다. 교육학과 3학년인 박사연(59)·화연(58)·민아(54) 자매는 인천 서구 석남동에 가까이 모여 산 지 2년이 됐다. ‘스쿠버다이빙’을 공통의 취미생활로 하고 있는데, 혼자보다는 함께하는 취미를 즐긴다. 강화읍 관청리가 고향인 이들은 어떻게 인생 중반에 방송대를, 그것도 같은 교육학과를 선택해 분투하고 있는 것일까? 세 자매는 “방송대에서 공부하면서 퇴직 후가 걱정되지 않는다. 혼자 공부했다면 힘들었겠지만 셋이 같이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좋다”라고 입을 모았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큰언니 박사연, 둘째 박화연, 막내 박민아. 개성만큼이나 외모도 어디 하나 닮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뭐랄까, 분위기나 기질 같은 게 닮았다. 쾌활하고 낙천적이다. 부정적인 데가 없는 이들. 큰 형부를 따라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한 민아 학우가 ‘강사 자격증’을 따면서 셋의 취미생활은 ‘수중 탐색전’으로 더욱 확장됐고, 3학년이 되면서 어렴풋하게 공부라는 게 어떤 것인지 윤곽도 잡을 수 있게 됐다.
세 자매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다. 큰언니 사연 학우는 어린이집을 운영하다가 지금은 프리랜서로 요양원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 화연 학우는 2005년부터는 한국도로공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가방끈 늘여보자는 막내 제안에
셋이 다 함께 교육학과 지원
집 앞 편의점 미팅으로 서로 격려
목표 분명해 노후 두렵지 않아

 

 

막내 제안에 셋이 함께 입학
이들이 방송대 교육학과를 찾은 데는 계기가 있다. 막내 민아 학우가 어느 날 봉사활동 모임에 나갔다가 ‘방송대’ 이야기를 들은 게 발단이었다. ‘어라, 우리도 할 수 있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니, 우리도 가방끈을 좀 늘여보자”라고 막내 민아 학우가 불쑥 제안했다. 둘째 화연 학우는 당시를 이렇게 말했다.
“방송대 진학은 동생 민아의 도전으로 시작됐어요. 언니나 저나 마음속에서만, 머릿속에서만 대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일이 바쁘다는 핑계에다 지금 이 나이에 가능하기나 할까? 주저했어요. 어느 날 막내가 방송대에 입학하겠다고 선언하더라고요. 그길로 셋이 함께 인천지역대학을 찾아가 입학원서를 냈죠. 소식을 가장 늦게 접한 언니가 당장 달려가자고 했어요.”
교육학과를 선택한 것은 큰언니 사연 학우의 인생 후반 구상이 한몫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다 보니 날로 원생이 줄어드는 걸 목격했다. 게다가 점점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체감했다. 은퇴 후에 고향 강화에 가서 요양원 관련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밑바탕에는 ‘교육’이 놓여 있다. 50대 중반의 언니들과 막 50대 초반의 막내가 자연스럽게 ‘노인교육’에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이유다.
세 자매는 일정 때문에 스터디에 참여하지 못하고 대학 생활을 했다. 특히 둘째 화연 학우는 회사 특성상 3교대를 밥 먹듯이 해야 했다. 그래서 이들은 따로 시간을 내서 스터디 활동을 하는 대신, 회동을 자주 가졌다. 동네 편의점 앞에서 만나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학교생활, 공부, 직장 문제 등 다양한 소재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그들에게는 ‘편의점 미팅’이 스터디였다.

‘편의점 미팅’으로 방송대 공부
다들 그렇듯, 스터디에 참여하지 않고 혼자 공부한다는 것은 맨땅에 박치기하는 격이다. 그러다 보니 1~2학년 시절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세 자매는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처음 입학해서는 평소 접해보지 않던 주제나 용어를 이해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어요. 일과 일상생활, 공부를 한꺼번에 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또 하는 일과도 연결돼 재미도 생기더군요. 포기하지 않고 씩씩하게 공부하는 저 자신을 기특하게 생각하다 보니 금방 3학년이 됐네요. 무엇보다 자매가 함께 같은 주제를 가지고 고만고만한 생각들을 이야기하면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이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큰언니 사연 학우는 1학년에 입학한 뒤 첫 중간과제물 제출 때가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누구에게 물어본 것도 아니고, 다들 스스로가 답을 찾아 나섰던 것 같다는 그는 “‘과제물 이렇게 하면 되나? 되게 재밌는데?’ 이런 마음이었어요. 셋이 같이 공부하다 보니 서로 깊숙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과제물을 봐주는 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저희는 큰 윤곽만 서로 체크하고 디테일한 부분은 각자의 몫으로 해 왔어요”라고 귀띔했다.
세 자매에게는 위기도 비슷한 시기에 같이 찾아왔다. 큰언니는 시집간 딸의 임신이, 둘째는 승진시험이 겹쳤고, 막내는 강사자격증 취득을 코앞에 뒀을 때다. 둘째 화연 학우가 말했다.
“일과 가정생활을 같이 하니 지칠 때도 많죠. 게다가 공부를 방해하는 외부 장애가 불쑥 나타나기도 하죠. 그럴 때면 ‘너도 견디는데, 나도 견디자’ 이런 생각으로 버텼어요. ‘너 아니면 나도 그만뒀을 거야’라는 심정으로 공부하는 거죠.”
방송대 입학을 제안한 막내 민아 학우가 상대적으로 젊으니, 교과목 선택이나 각종 학습 정보를 ‘물어’ 왔다.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는 김밥까지 만들어 온다. 세 자매는 편의점 미팅을 통해 정보를 나누고, 속마음도 털어놓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를 응원하며 지내왔다.



80대 노모, “결코 포기하지 말아라!”
인터뷰 내내 세 자매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너가 견디니까, 나도 견딘다’는 눈빛을 교환했다. 이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런 무한신뢰와 긍정의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세 자매는 강화에 계신 ‘80대 어머니’라고 말했다.
딸들이 뒤늦게 방송대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머니는 “너무 잘했다. 못 가르친 게 미안하고 후회되는데, 너무 대견하다. 100세 시대니 누가 뭐래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졸업하기 바란다.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공부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려줬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누구 하나는 그만둘 줄 알았다고 말했지만, 모두가 3학년이 됐고 더 자신감을 지니게 됐다. 고향의 노모가 들려준 그 한마디 때문에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큰언니 사연 학우는 대학생이 된 뒤 자신감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방송대 입학하고 학력란에 대학 재학이라고 쓸 수가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요양원 면접을 볼 때, 직원분이 대단하다고 말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어깨에 ‘뽕’이 잔뜩 올라가더군요.” 

5월 2일 송도에서 열리는 난타 공연에도 참여한다는 세 자매는 취미생활도 공부도 늘 함께한다. 어쩌면 이렇게 셋이 함께하기에 동기부여가 잘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큰언니 사연 학우는 ‘나의 노후설계’ 과제에서 만점을 받았다. 노모를 생각하면서 요양원 운영을 구상하고 있는 그의 인생 목표는 분명해 보였다. 둘째 화연 학우는 소방안전관리자격증과 노인심리상담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막내 민아 학우는 스쿠버다이빙 강사 외에도 웨딩플래너라는 ‘부캐’도 거뜬히 해내면서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잘할 수 있어. 잘하고 있어. 앞으로도 잘할 거야’라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사연·화연·민아 학우. 방송대 교육학과에 같이 입학해 서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놀라기도 한다. 인천 교육학과 세 자매의 교육 분투기가 만들어 가는 인생 3막 스토리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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