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지평을 넓히는 방송대인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장삼이사(張三李四)에 불과한 자신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냐고 두 번이나 뿌리쳤다. 올해 64세, 열세 번째 학과인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학수 동문이다. 이 동문은 경찰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여러학과를 졸업하고 새로운 학과에 입학할 때마다 월급의 일부를 계속해서 발전기금으로 내놓고 있었다. 2004년 10월부터 시작했으니 어느덧 20년째다. 지금은 퇴직하고 코레일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의 공부도 발전기금 기탁도 마침표를 찾을 수 없다. 그가 중앙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했던 5월 23일, 어렵게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상고를 졸업했어요. 사회에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더군요. 그렇게 쭉 살아왔고, 사회적으로도 자랑할 만한 큰 성과를 낸 거라든지 그런 건 아무것도 없는 일반 서민인데, 방송대 후배들에게 뭔가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그의 첫마디였다. 경기도 안성 죽산이 고향인 그는 전문대 농업토목과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경찰관이 되고 싶었던 그는 회사를 다니면서 여러 번 경찰 시험을 봤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나이 30세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도전했는데, 마침내 합격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순경부터 시작해 30년을 경찰로 근무하다가 정년을 맞았다.

법학과 공부 직업에 크게 도움
그게 고맙고 감사해 기부 시작
경찰로 정년 한 뒤 경비원 생활
공부해야 하는 이유 분명해야

 

 

농학과 입학했다가 법학과로 전과
그가 방송대와 첫 인연을 맺은 건 1980년대 중반쯤이다. 군대 시절 같이 복무했던 동료가 방송대에 다닌다고 말해줘서 방송대가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제대하고 난 다음에 자신이 졸업했던 농업토목과와 비슷해 보이는 농학과에 입학했지만,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경찰로 직업을 바꾸게 됐어요. 경찰은 또 법으로 먹고사는 직업이니 법학과가 낫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법학과로 전과했어요. 농학과 달리 법학은 할 만하더라고요. 직업상 응용할 수도 있고, 실무에도 도움이 많이 돼 쉽게 졸업할 수 있었어요. 농학과로 시작했지만, 법학과에서 첫 졸업을 한 셈이죠.”
이학수 동문이 방송대 공부에 재미를 느낀 건 바로 이 무렵이다. 농학과는 어려워서 쩔쩔맸는데, 법학은 직업과도 딱 맞아떨어지고 실무에도 유익해 공부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경제학과, 미디어영상학과, 관광학과, 생활과학부, 문화교양학과 등 지적 관심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도전했다. 그런 그가 흥미롭게도 이런 말을 들려줬다.
“시지프스의 형벌이란 게 있잖아요. 큰 바윗돌을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인데, 엄청 고생하면서 올려놓으면 순식간에 바닥으로 딱 굴러 내려가죠. 10번 위에다 올린 것이나, 뭐 20번 올린 것이나 제가 볼 때는 자랑스럽고 좋은 건 아닌 거 같아요. 자신의 적성에 맞고 소질에 맞는 것을 빨리 찾아내 그것을 깊이 있게 다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여기 조금 파고, 저기 조금 파고. 제 공부가 그런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합니다.”

20년째 이어지는 발전기금 기부
이학수 동문이 2004년 5만 원을 일반기금으로 기탁하면서 시작한 발전기금 납부액은 현재 1천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경찰로 재직하면서 시작했던 법학과 공부가 적성도 맞고 실무에 유익하다 보니 더 열심히 하게 돼 장학금도 여러 번 받았다. 법학과에서 익힌 지식들은 이후에도 경찰이란 직업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게 고맙고 감사해서 소액이지만 발전기금을 월급 통장에서 자동으로 나갈 수 있게 했다.
그가 발전기금을 내놓게 된 데는 도서관도 한몫했다. 종로가 생활권이다 보니 한 달에 1~2회씩 학교 도서관을 찾아 전공서와 기타 교양서까지 접할 수 있었다.
“학교에 올 때마다 잡지책도 무료로 보고, 전공 외의 책도 이것저것 맘껏 읽을 수 있었고, 도움도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 정말 부담 없이 도서관을 활용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죠. 그게 또 마음을 움직여 도서관을 위해 소액 기부까지 하게 된 거죠.”
열세 번째 학과인 국어국문학과 4학년에 재학하고 있는 그이지만 여전히 공부는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공부는 젊은 사람에게도 어렵고 나이 든 사람에게도  다 어렵다는 것이다. 해보니까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한다. 엄살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어렵고 점수도 잘 안 나오고 막 이러더라고요. 공부가 무엇인지, 공부는 왜 하는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자신이 공부하는 이유, 필요성 등을 명확히 해야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마칠 수 있어요. 공부가 무엇인지 자신의 철학을 잘 정립하면 좋다고 생각해요.”

공부의 비결 그리고 건의 사항
30년 가까이 여러 학과에서 공부하면서 그가 철칙으로 삼은 게 있다. 항상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각할 것, 메모하는 습관을 유지할 것. 젊은 학우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그가 버텨낼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렇게 되고,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도 역시 그렇게 된다’는 샤를 드골의 말을 독서 중에 우연히 발견했는데, 제 인생의 금맥을 찾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계획이란, 미래에 관한 현재의 결정’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글에서도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어요. ‘이른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이 와도 거둘 곡식이 없다’는 말도 제가 좋아하는 금언(金言)인데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생활의 지혜는 마라톤 같은 저의 방송대 공부 30년을 유지한 비결이기도 합니다.”
이 동문은 여러 학과를 마친 경험에서 우러나온 한 가지 제안을 학교에 건의했다. 학교가 성인들의 재취업 문제와 관련해 좀더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했으면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직업의 미래’라든가 인공지능과 관련된 과목 등을 합동 강의로 만들어 학우들이 방송대를 졸업한 후 다른 학과에 편입하게 되면 「원격대학교육의 이해」를 대신해 들을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다.
“여러 학과를 공부하는 분들을 보면, 「원격대학교육의 이해」를 여러차례 수강하시더라고요. 중년층에게도 재취업은 중요한 문제인데요. 그런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다른 과정을 우리 학교의 뛰어난 교수님들이 만들어 주신다면, 앞으로 학생 유치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학업 중도포기 예방 효과도 있다고 봐요.”
인터뷰를 마친 그는 도서관에 반납할 책을 가방에서 꺼내 들었다. 그제야 그의 곁에 검고 낡은 가죽 가방이 처음부터 다소곳하게 놓여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남루하게 보이지만, 오랜 시간 그와 함께하면서 지(知)의 탐사에 나섰던 가방이리라. 문득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사자성어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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