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음식과 권력

“(그는) 평균 키에 몸 곳곳에는 점이 나 있었으며, 악취가 풍겼다. 암갈색 머리칼에, 매력적이라기보다는 평범한 풍모였다. 눈은 나약해 보이는 파란색이었고, 목은 굵었다. 배가 나왔고, 다리는 매우 가늘었다.”-오현제 시대 로마의 역사가·정치가 수에토니우스 수에토니우스(69~130년 이후)는 종신 독재관(딕타토르)이 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및 제정(帝政)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부터 도미티아누스에 이르는 로마 제국 초창기 11명의 황제를 다룬『황제 열전(De vita Caesarum)』을 쓴 인물로 알려져 있다.집권 초에는 개혁적인 이미지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흔히들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을 꼽는다. 그렇다면 가장 악명 높은 폭군은 누구일까? 사가(史家)들에 의해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네로라 불리는 로마의 제5대 황제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다. 네로는 대중의 인기에 예민한 폭군이었다. 식성도 최고급 수준이었다. 그는 ‘버섯 황제’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버섯을 좋아했다. 귀한 달걀버섯을 가져오면 버섯 무게만큼의 황금을 주었다고 한다. 폭군의 대명사이자 로마 제국 최악의 황제로 꼽히는 네로(37~68년)는 54년에서 68년까지 불과 13년 8개월간 제위(帝位)에 있었다. 하지만 2천 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 기분 나쁜 그의 별명은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인류의 파괴자’, ‘세상의 독’, ‘국가의 적’, ‘타락한 절대 권력자’ 등 후대인들의 입에 오르내린 악명은 섬뜩할 정도다.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네로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가 사망하고, 서기 49년 어머니 아그리피나가 숙부(네로의 외종조부)이자 당시 로마 제국 제3대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함으로써, 클라우디우스의 양자가 됐다. 5년 후인 54년 열여덟 나이의 네로는 양부 클라우디우스 아우구스투스의 친아들인, 세 살 차이의 의붓동생 브리타니쿠스를 제치고 황제에 취임했다. 재위(在位) 기간, 타인의 눈에 비친 그의 행적은 참으로 현란하고 납득하기 어렵다. 황제가 된 이듬해인 55년 의붓동생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하고(어머니 아그리피나의 소행이라는 주장도 있다), 59년에는 정치적 훈수를 두며 간섭해 온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62년에는 아내 옥타비아를 살해함으로써 패륜아라는 오명을 얻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베드로와 바울을 처형해 기독교를 박해한 폭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적그리스도, 성적으로 타락한 난봉꾼, 불길에 휩싸인 로마를 바라보며 하프를 연주한 미치광이 등 온갖 추악한 모습으로 서술되곤 한다.그러나 역사의 기술이 과연 진실만을 전하는 것일까? 집권 전반기 네로는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스승 세네카와 근위군단 장교 브루스의 보좌를 받아 선정을 베풀었다. 네로도 초기 5년 동안은 개혁 군주 이미지가 강했다. 원로원 의견 존중, 세금 경감, 매관매직 시정, 해방 노예 중용, 국방력 강화 등에서 빛나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점점 폭군의 본성을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로마의 신이 황제에게 로마 문화를 발전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신념에 따라 로마의 문화와 건축 발전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원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예술가의 삶을 살아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연극무대에 오르기도 했다.박수부대 동원해 그리스 순회공연도예술에 대한 네로의 광기에 가까운 열정은 인류 최초의 스타 팬덤 형성과 집단 박수부대 동원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스 문화에 심취하고, 시와 노래를 좋아한 그는 자신을 위대한 예술가로 착각했다. 측근들 앞에서 수시로 노래를 불렀던 그는 64년 ‘성모 마리아의 도시’ 나폴리에서 가수로 공식 데뷔하려고까지 했다. 이때 가벼운 지진으로 극장 건물이 손상됐다. 그러나 네로는 이 일을 자신의 노래 솜씨에 하늘이 감탄한 징조로 여겼다. 도저히 못 말리는 자기애다.67년 네로는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그리스로 순회공연을 떠났다. 박수부대도 동행했다. 자신을 뛰어난 가수이자 시인으로 여긴 그는 여러 축제에 참가해 무려 1천808 회나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에 씌워진 승리의 월계관은 음악이나 예술의 재능이 아닌 권력에서 나온 것이었다.오늘날의 아이돌과 같은 면모를 지닌 그는 64년 로마 대화재 이후 자신의 집을 대체할 ‘도무스 아우레아’라는 황금궁전을 건설했다. 이는 네로 황제의 최고 업적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불탄 로마시를 복구하는 대신 자신을 위해 4년에 걸쳐 지어진 아름다운 벽화가 가득한 150개의 방, 뱃놀이를 할 수 있는 인공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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