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동시대 예술 산책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컴퓨터와 인터넷 네트워크가 가져온 기술의 발전은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더해지면서 의료, 관광, 서비스, 교육, 비즈니스 등 거의 모든 사회 영역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비대면 의료가 보편화되고, ChatGPT를 활용해 최신 정보를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손쉽게 습득할 수 있게 됐으며, 사람이 담당하던 서비스를 챗봇(chatbot, 음성 또는 문자로 인간과 대화를 통해 특정한 작업을 수행하도록 제작된 컴퓨터 프로그램)이 대체했다. 그렇다면 이런 빠르고 광범위한 기술 발전이 예술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예술과 기술의 어원, 테크네(techne)  
기술 발전을 최근 대두된 이슈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술에서 기술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밀접하게 연관된 영역이자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온 개념이다. 그 증거로 흔히 언급되는 것의 하나가 예술과 기술의 어원에 관한 이야기다. 예술(art)과 기술(technology)의 어원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로 같다. 테크네는 인간이 기술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스어 테크네는 고대 로마인들이 라틴어 아르스(ars)로 옮겼고, 아르스는 영어 아트(art)로 번역되어 현재 아트(art)는 여러 예술 장르를 폭넓게 포괄하는 단어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예술과 기술의 어원이 동일하고 두 개념 모두 인간의 기술적 행위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같다면, 왜 예술과 기술을 분리해서 사용하게 됐을까? 예술과 기술의 어원을 따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술의 개념이 정립돼 온 역사를 따라가 보게 된다.
현재와 같은 예술의 개념, 즉 미(美)를 추구하는 예술의 개념이 정립된 건 르네상스 이후 18세기 중엽의 일이다. 그 이전 시기 회화, 조각, 건축 등은 ‘기술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로 간주돼 예술이 아니라 기술의 한 종류로 취급됐다. 다시 말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조각품을 만드는 조각가, 또는 건물을 설계하고 만드는 건축가가 요즘과 같이 추상적이고 창조적인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로 인정받았던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그림 그리는 기술, 조각하는 기술 그리고 건물을 설계하는 기술을 보유한 ‘기술자’였으며 이들의 결과물은 예술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물건의 하나로 기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과 기술은 서로 분리되거나 차별되는 개념이 아니었으며 어원 테크네를 공유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이 예술적 성장의 주요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18~19세기를 거치며 예술과 기술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추상적이고 고상한 영역으로 신성시됐고, 기술은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더불어 음악가, 화가, 무용수 등은 기술자라는 호칭을 떼고 예술가로 명명됐다. 여기서 예술가란 단순히 기술을 숙련하는 사람이 아니다. 뛰어난 창조성을 기반으로 자기 삶의 전부를 작품에 쏟아붓는 천재로 상징화된 예술가의 초상은 기술이란 두 글자를 예술의 그림자에서 지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은 ‘일방향적’이다.
예술작품과 관람객 사이에는 상호작용이나
상호교류가 일어나기 어렵다.
관람객은 예술작품을 수동적으로 바라보고 감상한다.
전시장에 전시돼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맞이하는

작품의 특성상 관람객이 여기에 개입하거나
참여할 여지가 없다.
기술의 발전은 이런 한계를 흥미롭게 뛰어넘는다.

 

사진 기술의 발전과 예술의 확장
이 맥락에서 논의해 볼 중요한 기술의 발전은 ‘사진’이다. 오늘날 사진은 예술의 한 영역으로 간주돼 사진전이 열리기도 하고 사진을 재료로 한 팝아트(pop art)가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사랑받기도 한다. 그러나 처음 사진의 등장은 미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18세기까지 고전미술의 미덕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과 인물을 최대한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는 것으로 ‘사실성’을 중시했다. 사진의 등장은 화가들의 지난하고 고된 노력이 아니더라도 풍경과 사물을 그대로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며, 더 나아가 ‘복제’를 통해 같은 사진을 여러 장 찍어낼 수 있게 되어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의 개념을 뜻하는 ‘원형’의 벽을 허물게 된다. 20세기 초반 활동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일원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5)이란 저서에서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예술작품이 원래 내포하고 있던 ‘아우라’를 상실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렇다면 벤야민은 아우라가 상실된 예술의 변화를 한탄한 것일까? 흥미롭게도 그렇지 않다. 벤야민은 우리가 가졌던 엄숙하고 기득권적인 소수의 종교적 가치나 제의 가치가 사진 기술의 발달을 통해 전시적 가치로 변화해 예술의 대중성을 이끌었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예술의 민주주의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사실주의 미술이 인기를 잃게 되면서 19세기 프랑스의 인상파 미술처럼 눈앞에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화가들의 상상력이 꽃피기 시작했다. 또한 사진이 가능하게 한 ‘복제’를 적극적으로 작업에 담아내는 작가들의 새로운 시도도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앤디 워홀(Andy Warhol)이다. 그의 1962년 작품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는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찍어 같은 이미지를 여러 번 반복함으로써 상품화된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했다. ‘사진을 복제한다’는 아이디어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사진을 복제할지, 복제의 방법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 과정에서 어떻게 색채, 구도, 이미지를 표현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 복제는 또 다른 차원의 예술을 가능하게 했다.

예술과 기술 읽기: 상호작용성
예술과 기술이 접목된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동시대 예술의 상당수가 기술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 연극, 시각예술, 무용 등 여러 장르에서 기술을 둘러싼 다양한 실험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 사례들을 지면에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개념으로 사례의 공통점을 추출한다면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을 이야기할 수 있다. 상호작용성은 주로 인터넷 등의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디지털 매체와 사용자 간에, 또는 디지털 매체로 연결된 사용자 간에, 아니면 매체와 매체 간에 여러 가지 형태와 차원의 상호교류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예술에서 상호작용성이란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은 ‘일방향적’이다. 예술가와 관람객 사이, 또는 예술작품과 관람객 사이에는 상호작용이나 상호교류가 일어나기 어려우며 예술가의 의도가 담긴 예술작품을 관람객은 수동적으로 바라보고 감상한다. 이런 일방향적인 감상에 대해 예술가의 위계적이거나 권력적인 태도라고 쉽게 비난할 수 없다. 설령 예술가가 관람객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시각예술 작품처럼 전시장에 전시돼 불특정 다수의 관객을 맞이하는 작품의 특성상 관람객이 여기에 개입하거나 참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은 이런 한계를 흥미롭게 뛰어넘는다. 독일의 칼스루에 미디어아트센터 소장이었던 제프리 쇼(Jeffrey Shaw)는 미디어아트 초기작으로 유명한 「읽을 수 있는 도시(Legible City)」(1989)라는 작품을 통해 관객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한 작품을 만들었다. 위의 사진에 있는 사람은 배우나 작가가 아니라 일반 관객이다. 관객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대형 스크린과 마주하도록 설계돼 있는데, 여기 스크린은 문자만으로 이뤄진 도시를 가상으로 체험하게 한다. 관람객은 자전거를 스스로 밟고 조정해 가면서 도시를 주체적으로 탐방하고 읽어 나가게 되는데, 미디어와 관람객이 상호작용해 작품을 변형시킨다는 의미를 지녔다.
고도의 기술을 통해 예술을 게임으로 승화한 사례도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무용 안무가인 안은미는 2022년 교육형 온라인PC 댄스 게임 「언틸다이 땡쓰땐쓰」를 공개했다. 이 게임은 디지털망 기술과 모션인식 프로그램을 이용해 영등포아트홀의 무대를 가상세계에 구현한 것이다.
사용자는 먼저 게임에 입장해 일반적인 다른 게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 수 있고, 안은미컴퍼니의 대표작인「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북한춤」등 7개의 레퍼토리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작품을 고른 다음에는 의상, 음악 등을 선택한 후에 무대에서 아바타가 단원들과 함께 춤을 출 수 있는데, 흥미로운 부분은 모니터의 카메라를 활용해 실제 게임을 하는 사용자의 몸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용자가 컴퓨터 앞에서 함께 춤을 추면 이 동작을 인식해 게임 속 아바타에 그대로 반영해 가상현실 속에서 춤을 추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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