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eekly 시네마

10대 소녀들의 예민한 감성과 복잡미묘한 관계를 서정적으로 담아낸 아름다운 공포영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관계를 유쾌하고 담백하게 풀어낸 가족영화의 바이블 「가족의 탄생」(), 안개 자욱한 시애틀을 배경으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두 남녀의 3일간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 「만추」까지. 평단과 관객 모두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많은 이들의 인생작을 만들어온 ‘감성 장인’ 김태용 감독이 6월 5일 개봉한 영화 「원더랜드」로 돌아와 관객드을 만나고 있다.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가 보편화된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원더랜드에 접속한다. 어린 딸의 곁을 조금 더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숨기고 직접 원더랜드 서비스를 의뢰한 ‘바이리’(탕웨이). 사고로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남자친구 ‘태주’(박보검)가 그리워 ‘원더랜드에서 우주인으로 복원된 AI 태주와 영상통화를 이어가는 ‘정인’(수지). 세상을 떠난 손자에게 원더랜드를 통해서나마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싶은 할머니 ‘정란’(성병숙). 원더랜드에서 꿈꿔온 사후 플랜을 마련하고 유쾌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은 ‘용식’(최무성)까지. 원더랜드에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하며 수석 플래너 ‘해리’(정유미)와 신입 플래너 ‘현수’(최우식)이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충돌을 바로잡기 위해 나선다.

 

「원더랜드」는 탕웨이부터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까지 내로라하는 대세 배우들의 캐스팅 소식만으로도 일찌감치 관객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역대급 캐스팅을 완성한 김태용 감독은 “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배우들이 보여주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만큼 전체 밸런스가 무척 중요했는데 배우들이 따로 있을 때나 같이 있을 때나 어우러지는 느낌이 좋았다”라고 전해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을 기대하게 한다.

 

누군가는 한 번쯤 간절히 꿈꿔온 상상을 직접 시나리오로 쓰고 스크린에 구현해낸 감독은 ”가끔 핸드폰 너머의 사람이 실재하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영화의 출발점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김태용 감독을 만나 복귀작 「원더랜드」에 대해 들어봤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2024년 6월 5일 개봉했지만, 시나리오 작업은 훨씬 전인 2016년부터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아이디어는 어디서 떠올린 건가요?
2016년 어느 날, 영상통화를 하다 문득 의문이 들었어요. 화면 너머에 있는 저 사람은 실재하는 걸까? 저 공간에 진짜 존재하는 걸까? 하는 의문요. 그러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세계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계속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을 진짜처럼 여기고 믿는다면 그 관계는 지속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미친 거죠. 궁금증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면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빠른 인공지능 기술 발달 속도를 감안하면 2016년과 2024년의 간극이 클 텐데요.
그때만 해도 인공지능 기술이 일상으로 체감되지 않던 시기였어요.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 가짜 세계를 진짜 세계처럼 믿게 만들 수 있고, 진짜 세계와 가짜 세계의 구분이 없어질 것 같았죠. 죽었지만 보고 싶은 사람들도 거기 사는 것처럼, 마치 친한 친구가 미국에 이민간 것처럼 해보면 어떨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탕웨이에게 했더니 재미있겠다고 하더라고요. 만나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고요. 그렇게 시나리오를 쓰다가, ‘그리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하는 질문까지 가게 되더라고요.

 

‘원더랜드’ 서비스가 다양하고 구체적이더라고요. “엄마랑 둘이 신청하면 할인되잖아요”라는 대사도 있고요.
지금 핸드폰 요금제도 다양한 것처럼, 원더랜드의 아이템도 다양하게 만들었어요. 싼 것도 있고 비싼 것도 있고요. 공간 옵션도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LA에 있다면, 현실에서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현실세계에서 갈 수 없는 가장 먼 곳으로 설정해야 믿는 거죠. 그게 바이리의 딸에게는 고고학자가 가는 사막이 되겠고, 정인에게는 우주가 되는 거고요.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교수진과 인터뷰를 많이 하셨다고요. 입시생이 공부하듯 깊이 있게 하셨다던데, 학자가 생각하는 인공지능과 예술가, 창작자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다를 거 같아요.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님이 뇌과학자면서 인공지능 연구자예요. 자주 만나며 도움을 받았죠. 김 교수님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방식이 바뀐 거라고 하더라고요. ‘신경망 방식’으로요. 사람은 고양이와 개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몰랐지만, 뇌과학자, 인공지능 연구자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말하는 거죠.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는 방식으로요. 결국 인공지능을 이해하는 건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는가, 사고해왔는가를 알게 되는 과정이더라고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사람은 어떻게 어떤 일을 하고, 왜 싸우고, 어떻게 화해하고, 가족은 왜 힘든지, 관계에 대해 고민했는데, 이게 자연스럽게 과학의 영역으로 연결된 거죠. 인공지능이 10년 뒤, 20년 뒤, 100년 뒤 어떻게 발전할지 김대식 교수님과 팔로우업하면서 계속 발전과정을 리얼하게 담으려고 했습니다. 영화적 상상력과 함께요.

 

인공지능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고 말하는 인공지능 연구자도 있죠. 적개심 같은 감정이 대표적이고요. 그런데 「원더랜드」의 AI 바이리와 AI 성준은 감정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계나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는 그들로부터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가 더 중요했어요. 감정은 사람이 받는 거란 이야기죠. 오히려 인공지능에게 감정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요.

 

예를 들어서 설명드릴게요. 제가 어머니께 로봇청소기를 사드렸는데요, 몇 달 뒤에 가 보니 어머니가 로봇청소기랑 이야기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이리 와”, “더 빨리 와”, “거기 들어가면 안 돼” 이렇게요.(웃음) 인공지능과 감정을 교환하고 싶어하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지고 있나 없나에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감정 교류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가정으로 영화를 찍었습니다.

미래 사회와 AI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혹시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들이 있을까요?
특별한 레퍼런스는 없었어요. 다만 SF영화들을 많이 봤습니다. 차별점을 둔 건 SF보다는 오히려 서정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다는 점이죠. 일종의 리얼리즘, 가족드라마처럼요. 인공지능과 함께 사는 게 낙원이라고 볼 수는 없잖아요? 여타 SF 영화들처럼 생존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고 감정을 다루는 영화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을 겁니다. 인공지능이 관계의 일원으로 들어왔을 때 소통하는 이야기로 봤던 거죠.

 

초호화캐스팅이죠.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등 거의 다 주인공급 배우들로 영화를 찍으셨습니다. 부담은 없었나요?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니 관객 입장에서는 기대치가 높아질 거 같아요. 수지와 박보검 배우 에피소드를 더 보고 싶은 관객도 있겠고, 탕웨이와 니나 파우 배우 에피소드를 더 보고 싶은 관객도 있을 테고요. 그런데 제 연출적인 방향은 관객이 영화 속 다양한 케이스들을 보면서 느닷없는 감정들을 느끼게 하는 거였거든요. 인공지능 사회가 되면 어떻게 변할까를 여러 케이스로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케이스별로 다 같이 스타 배우가 나오거나 다 같이 스타가 아닌 배우들이 나와야 밸런스가 맞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제작자와 감독의 욕심이 맞아 떨어져서 각각의 케이스가 존중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해보자고 한 거죠.(웃음)

 

비약적으로 에피소드가 변화하면 관객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케이스별로 챕터를 나눠볼 생각도 해보셨나요?
초반에 고민했어요. 한 에피소드에 집중할지 분리해야 할지를요. 그런데 여러 케이스들이 거의 동시에 진행돼야 좀 더 시너지가 있을 거 같더라고요. 연인들 에피소드가 나오다가 인공지능 엄마, 아빠를 만나는 씬으로 전환되면 이 장면이 저 장면의 과거 같기도 하고, 바이리의 딸이 크면 해리 같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믿으면 또 믿는 대로, 가짜를 진짜라고 믿으면 진짜가 되는 것처럼, 진짜도 가짜라고 믿으면 가짜가 되는 것처럼요. 비약적으로 파편적으로 케이스들을 모아뒀는데, 제 바람은 그것들이 모이면서 전체적인 시너지가 나는 거죠. 뭉쳐서 봐야 주제에 접근할 수 있다고 봤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 탕웨이 배우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다고 했잖아요. 바이리 역에 처음부터 탕웨이 배우를 염두에 두신 건가요?
시나리오 쓸 때는 출연해달라는 이야긴 안 했어요. 한국 배우랑 하려고 했죠. 시나리오가 발전해가면서, 오정완 영화사 봄 대표가 제안했어요. 하지만 외국인 배우라는 정체성이 영화에서 너무 커질 것 같아서 고민을 했죠. 이 영화는 관계에 집중하는 역할로 배우들이 들어와야 했거든요. 그런대 오 대표가 그러더라고요. 근미래를 다루는 영화고, 한국은 너무 급변하는 사회니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같이 존재할 수 있지 않겠냐고요. 엄마, 딸 이야기니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탕웨이 배우에게 말하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원더랜드」의 주연배우지만 아내인 탕웨이 배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죠. 탕웨이 배우가 김태용 감독을 두고 10년 전 「만추」 때보다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칭찬을 하더라고요.(웃음) 감독님은 10년 만에 탕웨이 배우와의 작업, 어떠셨나요?
「만추」 이후 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 지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배우가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 성장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좋은 영화들을 하면서 가져온 에너지가 10년 전과 또 다르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워낙 집중력이 높은 배우예요. 일상을 나누다가 촬영장 가면 다른 사람으로 확 변해 있어요. 캐릭터로 쑥 빨려 들어가야 한다고 할까요? 배우마다 캐릭터로 들어가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데, 그게 많아지고 깊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원더랜드」 촬영을 하면서는 현장에서 만나던 사람이 집에 와 있고, 이렇게 일상과 일이 구분되지 않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웃음)

 

배우 탕웨이와 아내 탕웨이는 어떻게 다른가요?
워낙 열심히 하는 배우잖아요. 준비도 열심히 하고, 캐릭터에 전념하는 배우니, 연출자로서는 엄청 행복하죠. 그런데 같이 살면서 처음 작업을 해보니, 준비를 또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 자극이 되기도 하죠. 저는 현장에서 일하고 집에서도 일을 하는 거니까요. 탕웨이 배우가 질문도 많고 해서, 24시간 일하는 느낌이.(웃음)

수지-박보검 배우 에피소드도 참 좋더라고요.
두 배우가 리허설을 엄청 많이 했어요. 영상통화하는 장면은 그린스크린이에요. 상대방이 없으면 디테일한 연기가 나오기 정말 어렵잖아요? 그런데 자기 씬이 없어도 현장에 와서 대사를 쳐주는 거예요. 에너지를 주는 거죠. 그런데 아시겠지만, 영화가 시간의 흐름대로 찍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정인(수지)의 파주 집에서 찍고, 3주 뒤에 우주 세트를 찍고 해야 했으니 배우들이 더 공을 들이고 배려해야 했어요. 이건 바이리도 마찬가지였죠. 카메라 밖에서 같이 울어주고요. 모두 착한 배우들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정인은 그렇게다 기다리던 태주(박보검)가 현실로 돌아왔는데 오히려 행복하지 않습니다. AI 태주와 있을 때 더 행복해 보여요.
살아서 돌아오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평온한 일상이 깨지죠. 관객들도 태주가 이상한 게 아니라 정인이 이상하다고 할 것 같아요. 영화에서도 오히려 의사가 “정인씨, 괜찮아요?”라고 물어보잖아요. 왜 그렇잖아요. 군대 갔거나, 유학 간 사람이 오면 좋을 거 같은데, 막상 돌아오면 별거 없는….

 

그런 면에서 진정한 소통은 가능한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꼭 인공지능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가족과의 소통이 가능한가를 묻는 영화 같기도 하고요.
얼마만큼 확장될지 모르겠어요. 인공지능이 얼마나 발전할까, 내 일상생활이 얼마나 발전할까가 아니라, 그동안 내가 소통한다고 믿었던 것이 뭐지? 내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것이 뭐지? 이런 이야기까지 영화에 담겨있기를 바란 겁니다.

공통질문이죠. 원더랜드 서비스가 가능해지면 신청하실 건가요?
촬영하면서 배우, 스태프들과 이야기한 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반 이상은 안 할 거래요. 그리워하면 그리워하는 거지, 다시 만나면 과연 좋을까? 가짜로 연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이유로요. 저 역시도 그런 부분을 고민했기에 원더랜드를 따뜻하게 그리려고 했던 것이 밸런스를 맞추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원더랜드는 핸드폰 같아요. 아이에게 주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시기는 넘어갔죠. 인공지능이 진짜와 가짜를 넘나드는 시대가 이미 왔으니까요.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자면, 저는 신청할 겁니다. 세상 떠날 때 제가 어느 곳에 가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저를 기억하는 누군가에게 남겨져도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서요.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운이 좋기도 했고, 욕심이 많았던 프로젝트입니다. 어쩌면 제게는 굉장히 어려웠던 숙제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들이 서로 부딪히는 장면이 많이 없는데도, 아끼고 존중했어요. 이 배우들의 에너지와 마음들이 영화에 잘 담겨 있길 바랐는데,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지 궁금합니다. 영화가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뒤의 허망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기계까지 포함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 어떻게 감정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영화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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