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eekly 시네마

“상민 기자님, 오셨나요?”, “네”. 인터뷰에서 기자 출석을 부른 배우는 박보검이 처음이었다. “인터뷰 기자 명단을 보니 한 언론사에서 계속 있으면서 오늘 10년 만에 다시 만난 기자님도 계시더라고요. 뭉클하기도 해서 수고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해사한 미소로 인사하는 그 모습을 보며 ‘파도 파도 미담밖에 없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이 느껴졌다.

 

배우 박보검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연출 신원호, tvN, 2015)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후 「구르미 그린 달빛」(연출 김성윤·백상훈, KBS2, 2106), 「남자친구」(연출 박신우, tvN, 2018), 「청춘기록」(연출 안길호, tvN, 2020)까지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며 국내는 물론 아시아까지 사로잡았다. 스크린 첫 주연작 「서복」(감독 이용주, 2021)에서는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으로 등장해 동물적인 연기 감각을 선보였고, 뮤지컬 데뷔작 「렛미플라이」로 다재다능함을 과시했던 그가 「원더랜드」에 합류해 1인 2역에 도전했다.

 

‘태주’는 사고로 오랜 시간 의식불명 상태였다가 기적처럼 눈을 뜬 ‘정인’(수지)의 남자친구다. 눈물로 반기는 여자친구 정인부터 뇌 손상으로 예전 같지 않은 자신까지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박보검 배우는 ‘원더랜드’ 속 설계된 인공지능 태주의 밝고 따뜻한 모습부터 혼란에 움츠러든 현실의 태주까지, 한 인물의 양면성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김태용 감독은 이런 박보검 배우를 두고 “품이 넓은 영혼과 아주 연약한 영혼, 모두 공존하는 배우”라고 평했다. 색다른 연기 변신에 도전한 박보검 배우를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원더랜드」에 합류하기로 한 계기가 있다면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보고 싶은 사람을 AI로 볼 수 있다는 소재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하고 싶었죠.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기술이 점점 발전되면서 그런 시대가 됐어요. 촬영 이후 4년 지난 지금 개봉한 게 오히려 더 좋고, 고민해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영화 속 다양한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따라가다 보면, 좀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으실 거예요.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도 드는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1인 2역을 연기했습니다. 양극단을 오가는 성격인데요. 연기하면서 고민한 지점이 있다면요?
AI 태주는 일단 행복한 순간으로 남은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로 생각해서 최대한 밝게 연기하려고 했습니다. 거기에 정인(수지)이 이야기를 더 잘 들어준다거나 하면서 더 긍정적인 요소를 더했죠.

 

AI 태주는 밝기만 합니다.
밝고 활기찬 모습이 남겨진 사람에게는 좋은 거잖아요. 그리운 사람은 그런 모습 때문에 서비스를 신청한 건데, 영상통화하면서 감정이 동요되거나 울면 더 슬플 거 같아요. 천국에서는 모두 함께 행복할 거란 생각이 인공지능 시스템에 반영된 거니까요.

현실로 돌아온 태주는 완전 다른 모습이에요.
김태용 감독님이 현실 태주는 이상하게 보이면 좋겠다는 디렉션을 주셨어요. 정인이 말해준 자신에 대해 괴리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진짜 내가 누구지?’ 하는 감정에 빠진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표정을 많이 안 지으려고도 했어요. 현실 태주는 정인에게 예전과 똑같이 대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인 입장에서는 예전의 건강했던 모습, 또는 AI 태주만큼은 아니었잖아요.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왜 정인이 화를 내지?’라는 생각이 들어도 다투고 싶지 않으니까 “미안해”라고 대사를 했던 기억도 나네요.

 

극중에서 본인의 AI를 보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어떤 감정으로 연기했나요?
내가 진짠가 AI가 진짜인가를 고민하는 눈빛으로, 그런 미세한 감정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AI 태주는 밝고 긍정적으로 웃는 이상적인 모습인데, 그렇지 않은 현실 태주의 어두운 표정은 큰 스크린에서 바로 관객이 캐치할 수 있다 보니, 연기할 때 좀 더 조심하려 노력했죠.

 

우주 장면이 인상적이더라고요. 어떻게 촬영했나요?
무중력 상태의 우주 장면은 저도 처음 해봤어요. 크레인에 와이어 하나만 달고 우주를 유영하는 장면을 찍었죠. 진짜 잘하고 싶었어요. 우주선 안에서 찍은 장면들은 의자 하나에 앉아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이에요. 기대는 것도 아니고 엉덩이만 의자에 대고 있어야 해서, 코어에 정말 힘을 주고 있어야 했어요. 힘들고 어려웠지만 우주에서 유영하는 씬이 잘 나온 거 같아서 칭찬해주고 싶습니다.(웃음) 

 

정인(수지)와 애틋한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습니다. 실제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잘 어울리더라고요.
수지 씨는 백상예술대상 진행자로 늘 만났는데, 연기 호흡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진행자로만 서로 이야기 나누고, 연습하고, 진행했다면, 작품에 대해,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접근한 건 「원더랜드」가 처음이었죠. 그래서 더 재밌게 작업했고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태주와 정인이 사이에 어떤 서사가 있었을까가 궁금했어요. 태주가 정인이를 이뻐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고민을 많이 했고, 감독님과도 대화를 많이 나눴고요. 극중에는 보이지 않는 두 청춘의 아름다운 이야기죠. 결국 사진을 많이 찍은 걸로 결론을 냈습니다. 수지 배우와 감독님 이렇게 셋이 만날 때마다 리딩하면서 둘의 서사를 많이 만들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정인과 태주의 전사는 어떻게 구축했나요?
‘원더랜드’의 모든 이야기가 다 가족들의 이야기에요. 그런데 정인과 태주의 관계성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결혼도 안 한 연인의 관계인데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하는 게 공감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둘 사이의 관계를 부여하고 연기하기로 했죠. 어렸을 때부터 정인과 태주는 부모님을 여의고 서로에게는 서로밖에 없는 존재, 가족이고 의지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전사들로 관계성을 구축해가면서 촬영했습니다.

 

정인과 태주가 노래하는 장면이 너무 좋더라고요.
원래는 정인이가 원더랜드 속 태주를 상상으로 만나는 장면이었어요. 촬영일 전날에 감독님이 그냥 상상하는 장면으로 찍는 게 아쉽다고, 노래를 부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 자리에서 음악감독님이 ‘G선상의 아리아’를 메인 테마로 주셨고요. 그래서 가사를 제가 썼어요. 이 이야기가 원더랜드 속 정인이와 태주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처럼 들리도록요. 셋이 그렇게 연습해서 수지 씨에게 들려줬더니 너무 좋다며, 누가 작사했냐고 묻더라고요. 제가 했다고 자랑했죠.(웃음) 제목도 제가 지었습니다. ‘Wish’에요. ‘Woderland is here’의 줄임말이기도 하고요, 또 하나의 의미로는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 보지 말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게 원더랜드라는 뜻도 있습니다.

수지 배우는 박보검 배우와 또 한 번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수지 배우는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세요?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수지에게서만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변치 않는, 청순하고 수수하면서도 거기서 보이는 맑은 매력이라고 할까요? 그런 부분들을 수지 씨가 잃어버리지 않으면 좋겠어요. 「원더랜드」 찍은 후다 보니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입니다. 더 다양한 작품을 하면서 살다가 또 만나면 어떨까 궁금해요.

 

영상통화 장면에서 배우들이 자신의 분량이 없어도 와서 대사를 해줬다고 하더라고요.
네. 그때마다 서로 촬영장에 와서 배우들이 목소리로 연기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더 실감나게 연기할 수 있었죠. 감사해요. 배우들이 이 영화에 큰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감독님이 잘 연출해줬고요. 그런 부분들에서 큰 시너지가 있었다고 봅니다.

 

원더랜드 다양한 배역 중 혹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었나요?
다른 배우들이 다 잘 해주셔서 딱히 없어요. 만약 원더랜드에 들어가게 된다면, 누군가의 아들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해봤어요. 영화에서는 손자, 아빠, 부모님, 엄마 이렇게는 있는데, 아들은 없으니까요.

‘착하다’, ‘예의 바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시죠. 군대도 다녀왔는데, 센 작품이나 악역 욕심은 없나요?
저는 ‘추천하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이번에 「원더랜드」 시사회를 열었는데, 감사하게도 제작사에서 배우별로 관을 하나씩 주셨어요. 온전히 제 손님들만 모실 수 있었죠. 저와 촬영했던 감독님, 배우들, 선배, 지인, 학교 동기 등 다 초대했는데, 그 자리에 다 와주셨어요.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시사회가 끝나고, 영화를 잘 봤다면서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 있다라는 말들을 하셨는데, 그게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저도 ‘추천하는 작품’을 찍고 싶죠.

 

악역을 하고 싶다,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런 상황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어요. 하고 싶은 역할이 더 많아져요. 그래서 저는 지금 다 하고 싶어요. 액션도 해보고 싶고요. 그래도 그 안에서 확실히 줄 수 있는 메시지와 중심이 있어야 하는 게 제 기준이고요. 기회가 되면 ‘빌런’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제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색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요. 사람들을 모시고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라면요. 나중에 제 아이가 봤을 때 ‘와~’하면서 사람들 막 죽이는 역할 말고요.(웃음)

 

미담만 많은 배우죠. 인간 박보검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궁금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일찍 만나서 할 수 있다는 게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받는다는 것, 대중에게 기억된다는 건 사실 영원한 건 아니죠. 그걸 일찍 알게 되면서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고민을 어릴 때부터 많이 했어요. 그러니 ‘아 저 사람이랑 또 작업하고 싶다’ 소리를 듣는 배우가 되고 싶더라고요. ‘착해, 그런데 저 배우랑 작업하면 또 하고 싶어’라는 말을 듣는 게 배우로서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이자 행복이어서, ‘그래, 나도 그런 사람 돼야겠다’고 결심했죠.

 

인간 박보검도 화날 때가 있나요?
제 자신이 준비가 안 돼 있을 때 화가 좀 나는 편이에요. 그런데 장점인 듯 하면서도 단저인 게 하룻밤 지나면 다 잊어버려요. 기록은 해두는데 잘 들춰보지도 않아요. 타인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생겨도 금방 잊어버려요.

 

입대 전 찍은 영화죠.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보니 어떤가요?
다시 돌아간다 해도 아마, 입대 전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다고 봐요. 물론 지나고 보면 아시운 부분도 분명 있지만, 지나간 청춘이 남아있다는 게 감사하죠. 풋풋하고 예쁜 20대 두 청년의 아름다운 순간을 잘 남겨주셔서 감독님께 감사했습니다.

전역 후 인간 박보검의 달라진 점은 뭔가요?
지금까지는 상대방이 마음이 편안하면 그게 제게는 행복이었어요.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도록, 제가 먼저 배려하고 양보하고, 그게 좋았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걸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잖아요. 그럼 나는 누가 챙겨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저도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지만, 상대를 먼저 생각하다 보니 제 마음에 여유가 없는 거 같더라고요. 내가 좀 더 건강하고, 그릇이 커지면 더 품고 어우를 수 있겠구나 해서 저부터 건강하자는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상대가 편해야 편한 건 변치 않았어요. 전만큼 신경을 쓰지 않는 정도죠.

 

작품을 보는 눈도 달라졌나요?
작품은 좀 더 거시적으로 보게 됐어요. 도전하고 싶은 것도 많고요. 전역하자마자 뮤지컬에 바로 도전했어요. 정말 하고 싶었거든요. 다음 작품에서는 액션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게 도전이에요. 요즘은 무대연기를 다시 해보고 싶어요. 뮤지컬 무대에서 라이브로 연기를 하는 게 처음이었거든요. 제 표정, 목소리, 행동 하나하나에 관객들이 꽂혀 있으니,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거기서 오는 희열이 있었어요. 연기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라 재밌더라고요.

 

박보검 배우에게 「원더랜드」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거 같나요?
원더랜드라는 서비스를 생각하면 참 이상적인 것이라고 느껴지는데, 작품으로 보면 행복했던, 햇살 같이 따뜻했던 현장으로 기억할 것 같아요. 감독님부터 따뜻하셨고, 같이 호흡하는 수지 씨도 좋았고, 탕웨이 선배도 많이 만나진 못했지만, 마음이 많이 느껴졌어요. 니나 파우 배우도 언어가 다르지만 현장에서 「응답하라 1988」 다 봤다고 해주셔서 그런 말씀 하나하나가 제겐 큰 힘이 됐거든요. 한국 작품이 세계로 뻗어나가다 보니, 좋은 영향을 주는 작품들 영화들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 들었어.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드라마, 영화로 배운다더라고요. 그러니 더 좋은 작품, 정말 추천해줄 수 있는 작품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드는 거죠.

공통질문이죠. 사랑하는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기술이 서비스된다면 신청하실 건가요?
처음 「원더랜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보고 싶은 사람을 AI로 복원시켜서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하는 생각이 컸는데요. 해리만큼 건강하게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너무 푹 빠져서 한시라도 놓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청하고 싶지만, 신청하지 않으려 합니다.(웃음)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영화 「원더랜드」에서처럼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더 발전될 텐데요. 그 기술에 자신이 휘둘릴지, 아니면 적응해서 건강하게 살아갈지 고민해보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많은 분들에게 의미 있고 위로가 되는 영화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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