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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걸그룹 ‘미쓰에이’로 데뷔해, 2012년 전국 극장가에 첫사랑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영화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으로 ‘국민 첫사랑’에 등극한 배우 수지는 이후 드라마 「구가의 서」(연출 신우철·김정현, MBC, 2013), 「당신이 잠든 사이에」(연출 오충환·박수진, SBS, 2017), 「배가본드」(연출 유인식, SBS, 2019) 등을 거치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최근에는 OTT 쿠팡플레이의 「안나」(연출 이주영, 2022)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파격 연기 변신에 성공하며 청룡시리즈어워즈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각종 시상식을 휩쓸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이번에 선택한 영화 「원더랜드」에서는 같은 항공사에서 일하며 모든 일상을 함께하던 남자친구 ‘태주’(박보검)가 사고로 의식을 잃자,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한 여자친구 ‘정인’역을 맡았다. 김태용 감독은 “수지 배우가 가지고 있는 선명함과 투명함이 ‘정인’ 캐릭터에 힘을 실어줬다”라고 말했다. 원더랜드 서비스로 남자친구를 복원한 정인 역을 맡은 수지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상 속 행복과 혼란, 위로와 그리움의 감정을 다채롭게 그려내 관객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수지 배우를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처음 「원더랜드」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떤 점에 끌렸나요?
내용적으로 봤을 때는 ‘원더랜드’라는 서비스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이게 일상이 된 사람들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런데 근미래적인 이야기라는 느낌보다는 진짜 일어날 수도 있겠다, 비현실적이지 않다라고 느꼈어요. 데이터를 모아서 구현한다는 게 너무 흥미롭더라고요. 게다가 정인과 태주(박보검)가 죽지 않은 사람들이라 거기서 오는 갈등이 좀 다르게 느껴져서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습니다.

 

개봉까지 꽤 오래 걸렸어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안나」(연출 이주영, 쿠팡플레이, 2022) 찍기 전인 2020년에 촬영했으니까요. 저도 오랫동안 기다렸던 작품이에요. 태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개봉을 기다렸죠. 뭉클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본인의 예전 연기를 보니 어떻던가요?
제 연기에만 집중하지 않고, 영화 자체를 보게 되더라고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고 할까요? 전체적으로 보니 정인과 태주 에피소드뿐 아니라 다른 에피소드들이 더 많이 다가왔어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울컥한 장면들이 많아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들인가요?
바이리(탕웨이)와 할머니(니나 파우) 관계가 많이 와 닿았던 거 같아요. 어린 딸 지아(여가원)는 원더랜드 속 엄마 바이리가 가짜인 걸 모르니까 좀 더 쉬운데, 성인은 알고 있잖아요. 할머니는 굉장히 가짜라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들이 많이 슬프게 다가왔어요. 또 해리(정유미)가 돌아가신 부모님과 원더랜드에서 영상통화할 때는 너무 일상이 돼 버린 느낌이 강해서 또 슬펐어요. 해리 대사 중에 “그 데이터를 지웠다가 다시 만들면 같은 사람이 아니더라고”라는 대사가 영화를 다시 보니 크게 다가왔고요. 영상통화 속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한 부모님이 아닌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오히려 그 담담함 속에서 슬픔이 더 잘 묻어난 거 같았어요.

영화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인물을 AI로 만들었습니다.
현실 태주가 죽지는 않았지만 깨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AI 태주와 영상통화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대했다고 생각해요.

 

‘원더랜드’ 서비스를 가장 잘 사용하는 사람으로 느껴져요.
정인이는 AI 태주를 약간 ‘시리’(애플의 음성 비서) 대하듯이, 약간 비서처럼 효율적으로 AI 태주를 사용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자신의 모든 일상을 알고 있고, 비타민이든 약이든 다 챙겨주잖아요. 그래서 저는 AI 태주를 인간으로 대한다기보다는, 비서나 기계처럼 대하는 느낌이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했습니다.

 

AI 태주에게 “노래해봐”라는 대사가 정인의 캐릭터를 알 수 있게 하더라고요. 인공지능 남자친구를 대하는 태도, 톤은 어떻게 잡았나요?
그 대사는 태주와 정인의 관계성을 잘 보여주는 대사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AI 태주는 정인이의 말도 아주 잘 들어주다 보니, 정인이가 멋대로 행동하는 부분이 더 많죠. 좀 더 칭얼대거나 못되게 굴 때도 많고요. 그러다 보니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했을 때 “노래해봐”, “랩해봐” 이렇게 그런 관계성을 보여주는 말투였어요. 진짜 태주가 깨어났을 때는 태주를 케어하는 누나 같은 정인이의 모습도 보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신경쓰면서 연기 톤을 잡았습니다.

현실 태주와 AI 태주에게 다르게 연기해야 했는데, 중점을 둔 부분이 있을까요?
두 명이지만 다르게 감정 표현하는 거죠. 정인이도 AI 태주랑 있을 때는 좀 더 덤벙거리고 챙김을 받는 입장, 기대는 입장으로 표현하려 했어요. 현실 태주와 있을 때는 많이 챙겨줘야 하는 입장이죠. 현실 태주가 재활치료를 받는 상황에서 유리를 인지하지 못하고 박는 모습을 보고, 정인이가 처음엔 이상해서 놀라다가 같이 유리에 박아주거든요. 그런 식으로 다르게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돌아온 현실 태주와 관계가 계속 삐걱거립니다.
그때 메인 감정은 ‘소통이 안 된다’는 거였죠. 인간이 돌아왔는데, 나도 인간인데 왜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더 소통이 안 되지? 왜 더 힘들어지기만 하는 거지? 하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돌아와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뭔가 감정을 느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고 뭔가가 삐걱거리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AI 태주와 영상통화하는 정인 자체는 밝고, 포용도 많이 하는 캐릭터 같은데, 현실로 돌아온 태주는 왜 포용해주지 못하는 걸까요?
그냥 조금씩 다 쌓인 거 같아요. 사실 ‘원더랜드’ 속 AI 태주와도 행복해 보였다고는 하지만 다 채워지지 않았고 기다리는 시간도 있었을 테고요, 태주가 돌아왔을 때 기대했던 것들도 있었을 테니까요. 정인이도 그렇게 성숙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게 다 쌓여 있던 와중에 현실 태주가 자꾸만 불안하게 하고,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불안감에 쌓여서 급발진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태주와 정인이 주고 받는 대사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느껴집니다.
둘 사이에 뭔가가 툭툭 끊기는 게 대사에도 많이 나와요. 김태용 감독님 특징 같기도 해요. 대본을 처음 읽을 때도, 이 대사 다음에 답변이 이게 아니라 다른 거여야 하는데, 뭔가 대화가 안 되네 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나중에 감독님을 만나 여쭤봤더니, 원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한 대요. 사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지, 현실에서는 뜬금없는 소리를 할 때가 많다고요. 그게 영화에서 태주와 정인이의 대사로 표현돼서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영상통화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배우들이 노력을 많이 했다고요?
처음에는 가까이서 해보려고 했는데 ‘지지직’거리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저희끼리 “AI 오류났다!”이러면서 아예 멀리 떨어진 방으로 가서 전화를 걸었죠.(웃음) 그렇게 계속 연습하다 보니 편해졌어요. 제 장면을 찍을 때 실제로 박보검 배우가 와서 대사를 쳐준 적도 많아서 감사하죠. 가끔 김태용 감독님이 대사를 쳐줄 때도 있었는데, 너무 낯설어서.(웃음)

박보검 배우와는 백상예술대상 사회를 보며 만난 사이지만 연기로 호흡을 맞춘 건 처음입니다. 박보검 배우는 수지 배우와 또 연기를 해보고 싶다던데, 수지 배우는 어떤가요?
너무 좋았어요. 눈빛이 인상 깊었던 거 같아요. 현실 태주를 보고 있으면 뭔가 제가 되게 나쁜 사람인 거 같아서 화를 내야 하는데, 박보검 배우의 눈을 보면 또 그러면 안 될 거 같은 거죠.(웃음) 굉장히 다양한 감정 표현이 가능한 눈빛이라고 할까요? 잘 몰랐을 때는 그냥 잘 생기고, 빛나는 사람 같았는데, 같이 연기해보니 되게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다른 작품에서 만나면 이 배우의 눈빛이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해요. 기회가 된다면 꼭 같이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김태용 감독님의 연출은 어땠나요?
일단 소통을 잘하는 감독님이세요. 본인이 어떤 걸 정해놓고 하기보다는, 정말 열린 마음으로 질문하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더 의견을 내고 공유할 수 있었죠. 감독님이 좋은 질문들을 자주 해주셔서 생각할 시간이 많았던 게 좋았어요.

 

현장에서 즉흥적인 연기 디렉션도 많았다고 하던데요.
거의 대본을 안 들고 현장에 많이 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이런 작업 방식이 굉장히 신선했어요. 열린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으니까요. 갑자기 대사, 상황을 바꿔주시니까 더 날것처럼, 내가 준비한 게 나오는 게 아니라 내가 그냥 정인이로 있다 보면 감독님이 주는 새로운 상황에서도 정인이로 연기할 수 있다는 걸 느끼면서 연기의 새로운 재미를 느꼈다고 할까요?

 

필모그라피로 봤을 때 「원더랜드」는 수지 배우에게 어떤 작품인가요?
저는 한 작품, 한 작품 선택하고 끝낼 때마다 그냥 너무 뿌듯해요. ‘하루를 잘 마무리하자’는 주의라서요. 그런 하루들이 모여서 한 작품을 끝냈을 때 굉장한 만족감이 있고 후련하죠. 저는 그렇게 하나하나 해나가는 입장이고요. 그럼에도 「원더랜드」는 많은 걸 배우게 해준 현장이었어요. 행복하게 작업하면서 배운 것도 많기에 의미 깊게 남을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배웠나요?
감독님이 제 생각을 많이 물어보고 저도 의견을 내고, 또 수용해주면서 조금 확신이 생겼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늘 대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 외의 것들을 만들어가는 건,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처음 느껴본 기분이었죠. 캐릭터에 좀 더 깊게 다가가는 방법을 배웠다고 할까요? 물론 전에도 대본에 없는 부분들을 좀 상상하면서 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 좀 더 많이 하면서 도움을 받았고요. 「원더랜드」 현장에서 즐거웠던 에너지로 다음 작품들을 했던 기억이 나요.

공통질문이죠. 떠난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된다면 신청할 건가요?

저는 신청할 거 같아요. 힘들겠지만 정인이처럼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든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저는 오히려 제가 원더랜드 속 AI가 된다면? 이라는 생각을 좀 했어요.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내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니 알고 싶어서요.

 

원더랜드에서는 자신을 AI로 만들면 직업, 장소를 모두 선택할 수 있잖아요. 뭐가 되고 싶으세요?
사육사요. 굉장히 큰 호랑이, 사자 같은 맹수들과 지내는 사육사. 제가 동물들과 교감을 잘해서 아주 잘 지낼 거 같아요. 가상세계에서는 다쳐도 제가 아픈 게 아니기도 하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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