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eekly 시네마

배우 여진구가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으로 변신했다. 여객기 납치범이다. 2005년, 일곱 살의 나이에 영화 「새드무비」(감독 권종관)에서 염정아 배우의 아들 역할로 데뷔한 그는 2012년 「해를 품은 달」(연출 김도훈?이성준, MBC, 2012)에서 김수현 배우의 아역으로 출연하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번 영화 「하이재킹」(감독 김성한)에서 그는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1970년대 ‘빨갱이’라는 누명 아래 차별 받던 ‘용대’의 벼랑 끝 모습을 연기했다. 여진구 배우는 “캐릭터의 감정에 집중하면서도 그의 행동이 정당화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평면적인 악역에 그치지 않고 최대한 입체적으로 그려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통상 아역 배우 출신들이 군대 이슈 등을 포함해 일정 기간 휴식기를 가진 후 성인 배우로 돌아오는 데 반해, 여진구 배우는 데뷔 이후 서른을 앞둔 지금까지 그 나이에 맞는 연기로 계속해서 대중을 만나고 있다. 여전히 소년의 눈망울을 간직한 여진구 배우를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개봉 앞두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영화로 인사드린 건 2022년 「동감」(감독 서은영)이 마지막이니, 2년 만에 인사를 드리네요. 오랜만인데,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다는 게 행운이고, 또 감사한 일입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계속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웃음)

 

「하이재킹」은 어떻게 만난 작품인가요?
하정우 형이랑 ‘티빙’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어요.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같이 탔는데, 형이 “「하이재킹」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1987」, 「백두산」 조연출 출신 감독님의 데뷔작이고, 그 영화들 시나리오를 쓴 김경찬 작가가 합류하는 영화”라고 설명해줬어요. 특별한 에너지를 터트리는 역할인데, 제가 하면 좋겠다고요.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를 납치하는 시나리오를 받은 거죠.(웃음) 뉴질랜드에서 시나리오를 바로 읽고, 한국에 돌아와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정우 형이 제안해준 것도 고맙지만 시나리오가 너무 좋아서요.

그간 맡았던 역할과 결이 다른데, 고민됐던 지점은 없었나요?
사실 무서웠어요. 용대가 폭발적 에너지를 터트려야 하는데, 스스로에게 반문하는 지점이 있었죠.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저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머릿속으로 작품 속의 제가 어떨지 상상해요. 이런 상상을 하면 1차적으로 ‘아, 내가 이 작품이 마음에 드는구나’ 하는 걸 알죠. 「하이재킹」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미 그런 마음들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용대’는 실존 인물이잖아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창조한 부분인가요?
용대가 하이재킹을 일으키는 이유를 영화적으로 만드는 건데, 방금처럼 용대의 행위가 정당화, 미화된다는 점에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감독님께 여쭤보니 1971년에 나온 기사를 기반으로 구성을 하셨대요. 김상태가 학교에 수석 입학했고 중퇴했다거나, 공장에 취직을 했다거나, 지인들과 폭약, 화약을 가지고 놀기도 했다는 기사도 있었대요. 실제로 의붓아버지와 지냈고, 형이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장교로 복무했다는 것도 팩트고요.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니까, 아, 그러면 이건 충분히 많은 분들에게 이해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걱정이 좀 줄었습니다.

악역이긴 하지만 악역이 아닙니다.
솔직히 용대 캐릭터는 악역이라고 해도 좀 정이 가는 스타일이죠. 바로 그 점이 무서웠어요. 저도 사람이다 보니, 배우로서 접근하는데 악역이면서도 뭔가 모르게 정이 가는 겁니다. 안타깝다는 감정도 들고요. 그런 감정이 커지다가 저도, 감독님도 ‘아차!’ 한 거죠. 관객들이 ‘아, 용대가 저렇게 태어나서 힘들게 살다가 저런 사건을 벌이는구나’ 하면서 감정이입을 하면, 악한 행위까지 미화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감독님이랑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처음 맡는 악역이라 고민이 많았을 텐데, 그런 세심한 지점까지도 살펴보셨군요.
관객이 용대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면 안 되겠다는 거였죠. 용대도 알아요. 선을 넘었다는 걸요. 폭탄을 터트리면서부터는 그냥 가는 겁니다. 태인에게도 왜 희생해야 하는가, 이북으로 가자, 공범이 되자, 이렇게 말하는 건 회유가 아니라 결국 ‘나는 선을 넘었다, 돌이킬 수 없다, 갈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여객기 납치를 저지르기 전 공항 대기실에서의 용대 모습에서는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으셨나요?
긴장하는 어린애 같아 보였으면 했어요. 소년은 아니지만, 청년 한 명이 본인이 세운 계획 하나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랄까요? 아무리 이 사람이 준비를 오랫동안 철저히 했어도, 실행에 옮기는 순간을 앞두면 떨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그때가 과연 비행기를 탄 것이 처음이었을까? 여러 번 타면서 시뮬레이션도 해봤을 테고요. 실제 전에 폭탄까지 들고 비행기를 타봤을 수도 있죠. 제 생각에 처음에는 공항에서 비행기까지 가지도 못했을 거 같고요. 벌벌 떨며 돌아가기를 되풀이하다가 시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떤 날은 비행기를 탔지만, 시도는 못했을 수도 있고요. 고작 스물두 살 청년이 그런 일을 착착 계획대로 한다는 걸 오히려 저는 못 받아들이겠더라고요.

 

최종 버전에서 용대의 감정 수위는 어느 정도로 표현된 건가요?
감독님이 과한 부분들을 거의 걷어내셨어요. 저희는 거의 모든 씬에서 다양하게 시도를 했거든요. 그래서 저희끼리 농담 삼아 영화가 정말 잘되면 찍은 모든 장면을 다 넣어서 3시간 짜리 감독판을 내자고 말하기도 합니다.(웃음)

다양한 시도를 하셨다고 했는데, 현장에서 즉석으로 바뀐 부분이 있나요?
톤다운한 장면이 있고요. 예를 들면 용대가 조종실에서 계기판을 깨는 장면에서 삐라 문구를 읽기도 했어요. 다시 점검하는 과정에서 좀 더 담백하게 찍자고 해서 감정을 더 누르고 찍었죠. 오히려 감정을 올린 장면도 있어요. 승객 한 명과 몸싸움을 벌이고 난 후 ‘태인’(하정우)과 대화하는 장면이었는데요. 극도로 흥분한 용대를 태인이 말리러 와요. 그런데 엄청나게 흥분된 상태에서 태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하죠. 리허설을 정말 많이 했는데, 정우 형이 여기서 용대가 총으로 승객을 폭행한 후 태인에게도 더 강압적으로 나가면 좋겠다고 아이디어를 줬어요. 납치범 입장에서는 비행기 내에서 반란이 안 일어나면 좋지만, 이미 일어난 상황에서 벌 줄 건 줘야 한다, 그래야 다음엔 안 까불겠다, 이런 마음이 있어서 더 감정을 올려서 연기했습니다.

 

그 장면에서 하정우 배우와 몸싸움하다가 다칠 뻔도 했다고요
다행히 얼굴을 가격하진 않았어요. 멱살을 잡거나 총구를 갑자기 들이대야 하는데, 제가 이런 감정의 격함을 드러내는 연기를 처음 해봐서 그런지, 거리 조절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정우 형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용대가 큰 에너지 가진 캐릭터고, 너도 몰입하면 좋은데, 훈련 받은 프로페셔널한 배우로서 이런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요.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현장이어서 정말 정우 형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맙죠.

학교 선배이기도 한 하정우 배우를 롤모델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죠.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닮고 싶으세요?
사실 현장은 늘 바쁘고, 그날 찍어야 할 분량이 있잖아요? 그런데 「하이재킹」 현장에서는 ‘이 정도면 넘어가도 되겠다’라는 게 없었어요. 철저히 해결될 때까지 정우 형이 계속 도전하고, 또 실마리를 찾아내는 모습을 봤죠. 거기에 적극 동의하는 감독님, 제작사, 스태프들의 모습을 보면서 ‘진심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좋은 에너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하이재킹」은 여진구 배우에게 어떤 현장이었나요?
모든 현장이 좋았지만, 이번 현장은 지금까지 어떤 현장보다 가장 웃음이 많았고, 유쾌했습니다. 대전의 한정된 세트 안에서 몇 개월 촬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끈끈해졌고요. 모든 배우들이 그렇게 생각한 거 같아요. 또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거쳐왔는데,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던 현장이기도 했어요. 저도 이제는 30대에 어떻게 배우 생활을 할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하이재킹」이 신기한 건, 그런 점에서 30대가 된 제 모습, 참여하는 현장의 모습 그리고 목표를 설정해 준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해를 품은 달」부터 ‘국민남동생’ 이미지가 있었는데, 「1987」이나 「노량」에서 선 굵은 연기도 인상적으로 펼칠 정도로 성장하셨습니다.
감사한 이야긴데, 저는 최대한 재밌고, 즐겁게 하려고 해요. 정말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한 건 14살에 「자이언트」를 하면서였어요. 1~2년 사이에 제 이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랑도 받고, 상도 많이 받았으니, 행운아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주연으로 감당해야 할 무게감과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예전에는 현장 가는 게 현장학습 가는 것보다 더 설렜는데, 이제는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인 방에 가야만 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때가 10대 후반이었어요. 스스로를 옥죄고 채찍질하던 시기였죠. 주연배우로서 정말 연기를 잘해내고 싶었고, 제 작품을 더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으니까요. 꽉 막혔고 힘들었던 시기에요.

 

보통 30대나 돼서 할 고민을 10대에 하셨네요.(웃음)
이전까지는 미성년자였으니까요. 그런데 말 그대로 성인 배우로 많은 분들 앞에 서야 하는데, 지금 내 상태라면 앞으로 얼마나 연기를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서른이 되면 뭔가 해결돼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오히려 30대를 기다리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래도 연기가 너무 좋아서 10년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20대를 맞이했는데, 겸손이랍시고 스스로를 풀죽이면서 살아왔죠. 매번 작품 하면서 들었던 그런 고민들이, 이번 「하이재킹」에서 확고하게 정립된 것 같아서 좋아요.

어떤 부분에서요?
지나고 보니 저와 함께 했던 모든 배우가 훌륭한 배우였던 걸 알게 된 거죠. 그런 훌륭한 감독, 스태프들과 일했는데, 왜 나는 그들에게 한 명의 팀원이자 동료로 함께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봤어요. 예전에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를 돌아보니, 현장에서 치열하게 부딪히고 호흡하면 연기가 재밌어진다는 걸 알았죠. 이번 「하이재킹」 현장에서는 짧은 장면에서도 풍부한 상상을 하고, 열어둔 상태에서 감독님과 대화했어요. 현장에서 부딪혀 보고 디렉션이 바뀌면 따라해 보기도 했고요. 어떤 때는 제가 감독님께 먼저 의견을 드리기도 했죠. 그런 시간과 시도가 충분하게 들어간 현장이었습니다.

 

배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일단 저는 연기 중독이에요. 너무 어렸을 때 그 맛을 봤어요.(웃음) 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건데, 단순히 상황극처럼 가볍게 가는 게 아니죠. 어느 시대든 어떤 순간이든 가서 살아보는 카타르시스가 다른 어떤 직업보다 흥미로워요. 하나의 인격체를 만들어낸다는 건, 친구 하나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하이재킹」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다소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세요?
요즘은 ‘희생’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져요. 빛이 바래졌다는 게 아니라, 너무 무거워서 사람들이 외면한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이 기사에서 찾아본 그 숭고한 희생이 실제 있었던 일인데, 만약 저라면 태인처럼 희생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죠. 그런데 지금도 숭고한 일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행동했느냐 물어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일을 했다고들 답하잖아요. 본능적으로요. 아직 그런 마음들이 남아 있는 거 같아요. 「하이재킹」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니까 마음 한편이 움직이는 게 있고요, 괜스레 숭고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하겠죠. 그렇게 본능에 따르는 분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감사함을 갖게 되는데요. 「하이재킹」을 보시고 그런 마음을 한번쯤 느껴보신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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