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eekly 시네마

「백두산」(감독 이해준·김병서, 2019), 「1987」(감독 장준환, 2017), 「아수라」(감독 김성수, 2016)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영화에서 조연출로 내공을 쌓아온 김성한 감독이 6월 21일 개봉하는 장편영화 「하이재킹」으로 데뷔한다. 2004년 「꽃 피는 봄이 오면」(감독 류장하) 막내 연출부로 영화판에 발을 들였으니, 꼭 20년 만이다. 김 감독은 인터뷰에서 지난 20년 연출부 생활을 회고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이재킹」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1971년 1월 속초에서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여객기가 홍천 상공에서 납치당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목적지는 북한. 시나리오는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를 담은 「카트」(감독 부지영, 2014),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배경으로 한 「1987」(감독 장준환, 2017) 등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시나리오상을 2회 수상한 김경찬 작가가 집필했다.

 

「하이재킹」은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그 안의 다채로운 인간 군상과 한 명, 한 명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김 감독은 실제 사건이 가진 에너지를 스크린에 응축시켜 넣으며,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동감 있고 박진감 넘치는 연출을 선보인다. 여객기 납치사건에 의도치 않게 휘말리게 된 인물들의 선택과 그 결과,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희생’의 무게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김성한 감독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감독 데뷔를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되게 덤덤하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설레고 초조한 감정이 들더라고요. 개봉 직전에 지금까지 감독님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해가 됐어요. 초조해하는 모습을 직접 내비치지는 않으셨는데, 이런 심정이었구나 하는 느낌을 알게 된 거죠.

 

「하이재킹」을 데뷔작으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1987」 작업하면서 김경찬 작가님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았어요. 조감독이랑 작가가 이야기 나누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죠. 사실 조감독으로 준비하던 영화가 있었는데,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멈췄어요. 김 작가님이 작업하는 대학로에 가서 밥도 얻어먹고, 술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죠. 그때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강원도에서 출발한 비행기에서 폭탄이 터져서 불시착했고, 전원이 생존했다고요. 너무 영화 같은 이야기잖아요? 대본 썼느냐고 여쭸는데 아직이래요. 빨리 쓰시라고, 제가 사실 들이댔어요.(웃음) ‘작가님 좋다고 하는 사람이 앞에 있는데, 저를 추천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하면서요. 제작자 분들께도 감사하죠. 말만 나오고, 이 영화의 방향성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던 시긴데 그래 뭐 해보는 게 좋겠다고 흔쾌히 말씀주셨거든요. 감사하게 시작했습니다.

실화인데 정말 영화 같은 사건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사건의 어떤 점에 끌려 영화화를 결심하셨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는 사건의 시작과 끝이 너무 극적이었어요. 리얼타임으로 표현한다 해도 상업영화로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료조사를 하면서 내가 과연 이 사건에서 어떤 부분을 찾고 싶었길래 영화로 만들고 싶었나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때 고민했던 게 바로 ‘태인’(하정우)의 캐릭터에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인물이면서 말도 안 되게 굉장한 의인이잖아요? 부하가 떨어뜨린 수류탄을 몸을 날려 산화한 강재구 소령님처럼요. 태인은 실제로 수습기장이었지만 그런 행동을 합니다.

 

그러면 의인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행동을 할까가 궁금했어요. 논문도 찾아보고 기사도 찾아봤죠. 불탄 버스에 뛰어들어 실신한 기사를 꺼낸 여자분을 비롯해 인터뷰를 많이 봤습니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그 자리에 내가 있었고, 그 순가 내가 해야 할 일인 거 같았다”더라고요.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다는 부연설명이 전혀 없었어요. 그게 정답이라 생각했습니다. 기저 의식 속에 있는. 아마 태인도 그런 인물이지 않을가 고민하면서 캐릭터를 구축했죠.

 

‘용대’(여진구) 캐릭터 구축에는 어떤 점을 신경쓰셨나요?
처음에는 김상태라는 실존 인물이 단순 테러범일 거로 생각했어요. 그러다 이분의 사진을 봤죠. 체구도 크지 않더라고요. 스물두 살이면 대학생이잖아요. 그 나이 때 저는 학교 수업 빠지고, 놀고 하던 때인데, 이분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북으로 간다는 무모한 선택을 했을까가 너무 궁금했어요. 자료를 검색하다 『구술사로 읽는 한국전쟁』(휴머니스트 간, 2011)를 찾아 읽었어요. 임권택 감독님의 「짝코」(1980) 같은 영화도 보면서요. 제가 역사 성적도 안 좋았는데, 그러면서 관심을 갖게 됐어요.

 

김상태는 1950년 강원도 고성 출신이에요. 원래 이북 땅이었는데, 휴전선 생기고 수복되면서 남한 땅이 된 거죠. 북한 주민으로 태어났고, 아버지도 북한군, 나이 차가 꽤 나는 큰 형도 북한군이었고요.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고성 땅이 남한이 됐다가 북한이 되는 과정을 몇 번 겪었습니다. 책에 나온 구술들을 참조해 용대 캐릭터를 구축해 냈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여객기 납치라는 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영화를 만들 때 연출하는 입장에서 모든 캐릭터를 사랑하게 된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용대 역할을 찾을 때 심혈을 기울이셨다고요.
「1987」에서 여진구 배우를 만났어요. 출연 분량을 하루 만에 다 찍었어야 했는데, 너무 잘하더라고요. 그런데 「하이재킹」에서 스물두 살 청년 역할을 여진구 배우에게 제안하면, 솔직히 안 할 거 같았어요. 저조차 단순 악역으로 생각할 정도로 안타고니스트에 대한 서사가 지금만큼 구축되지 않았던 때였거든요. 캐스팅 난항을 겪었죠. 젊고 연기 잘하는 배우가 너무 많으니까요. 그런데 마냥 악인으로 그리고 싶진 않았어요. 결국 평가는 관객의 몫이지만, 저는 이 영화를 그 시대에 아픈 과거를 담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정우 배우에게는 태인 역을 바로 제안하셨나요?
아마 「백두산」 때였던 거 같아요. 조감독 생활을 오래 했는데, 배우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 아니에요. 일을 착착 진행시켜야 하니 조감독은 배우와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하정우 배우가 지나가는 말처럼 “조 감독님, 왜 연출 안 해? 다음에 같이 합시다”라고 하더라고요. 후에 「하이재킹」 한다고 하니 관심을 엄청 보였고요. 대본을 보냈는데 바로 연락이 왔어요. 카페에서 작업하던 중에 전화가 왔는데 일어나서 받았다니까요.(웃음) “대본 잘 읽었어요”라길래 “아, 네네’ 하고 있는데 “대본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싶다고요”라는데, 엄청 큰 카페였는데 주변을 의식하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정우 배우 캐스팅은 염두에 둔 거겠군요.
처음 쓸 때부터요. 하정우 배우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고 제작사에도 이야기했어요. 저는 어떤 일에 확신을 갖는 타입은 아닌데, 이 대본을 하정우 배우에게 보내면 긍정적으로 봐줄 것 같다고요.

 

이번 작품을 함께 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하정우 배우의 매력이 있다면요?
되게 정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거요. 조감독으로 일하다 보면 배우들과 일적으로만 부딪혀요. 이번에 감독으로 작업하면서 느꼈던 건, 굉장히 다양한 방면에 관심이 있는 배우라는 점, 또 정이 많다는 점이었죠. 하나 더 말씀드리면, 하정우 배우는 담백하게 연기하는 걸 좋아해요. 그 이유를 선명하게 알게 됐어요. 「1987」, 「백두산」 때는 몰랐어요. 이번 「하이재킹」에서 후반작업 때문에 편집실에서 시간을 오래 보냈거든요. 테이크마다 다른 걸 갖다 붙이는데, 어떤 테이크를 붙여도 그 장면이 다 살더라고요. 와, 이걸 예상하고 연기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테이크를 붙이면 어떤 뉘앙스가 나오고, 저 테이크를 붙이면 좀 담백해지고 하니 편집을 정말 즐겁게 할 수 있었죠.

 

하정우 배우의 전작들을 보면 코미디적 요소, 탐욕적인 요소가 보이는, 그러니까 다면적인 캐릭터가 많은데요. 「하이재킹」에서는 일면적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 태도의 문제였던 거 같아요. 하정우 배우와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위트 있는 장면이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줄 때, 상황 속에서 보여주면 좋겠다고요. 시나리오에도 없었고요. 왜 재난영화 보면 상황실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애시당초 거부한 것처럼, 태인 캐릭터를 만들 때도 그런 걸 다 뺐습니다. 그래서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고전영화나 고전소설을 보면 프로타고니스트는 다 평면적인 인물들입니다. 태인 역시 인물 자체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지, 장난기 있는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성동일, 하정우 배우 같은 프로들인데, 혹시나 연출 디렉션에 대해 아쉬워하진 않았나요?
전혀요. 제 입장에서 감사했던 게, 저는 신인감독이잖아요. 그분들은 오랜 기간 여러 작품을 해오셨고요. 그럼에도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공감을 해주셨다기보다는 믿어주셨어요. 아, 이 감독이 만들려는 영화가 이런 건가, 하는 거죠. 감사했습니다.

 

하정우 배우는 현장에서 여러 테이크를 갔다고 하셨고요, 여진구 배우도 현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감독 입장에서 어떤 부분이 불확실했길래 이런 방식으로 찍은 건가요?
영화에서와 같은 그런 긴박한 상황에 놓인다는 것 자체가 불확실한 거 같아요. 제가 교통사고 경험이 좀 많습니다. 폐차 3번, 직접 차에 치여 기절한 게 2번이에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기억이 다 나는 경우도 있고 아예 기억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면서 빙글빙글 도는데, 옆자리, 뒷자리 친구가 슬로모션으로 보인다거나, ‘어, 차온다’하는 주변 소리 듣고 돌아보는데 기억이 끊겼다거나 하는 상황들이죠. 영화에서 이런 상황을 표현할 때 한두 테이크로는 그런 감정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배우들에게 ‘이런 감정이 맞을까요?’라고 물어보면서 테이크를 여러 번 갔습니다.

구체적인 장면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신다면요.
기내에서 승객과 용대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태인이 조정실에서 나와 저지하는 장면도 그랬고요. 용대가 태인에게 회유, 협박 같은 대사를 할 때도 그랬어요. 대본에 쓰인 텍스트 자체는 단편적으로 읽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감정으로 이런 말을 했을지는 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다양하게 시도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연출에서 절제가 돋보입니다만, 여객기가 수직으로 올라가는 장면은 좀 납득이 안 되더라고요. 전투기도 쉽지 않은 기술인데, 당시 여객기로요.
너무 영화적이죠. 저도 대본을 읽고 작가님께 ‘이거 좀 많이 간 거 같은데요’라고 말씀드렸어요.(웃음) 그런데 제가 영상을 찾았습니다. 군용기가 수직상승해 360도 회전하는, 이른바 ‘임멜만턴’으로 불리는 장면을 당시 군용기가 구현해냈더라고요. 저희 영화에 자문을 해준 파일럿들이 많았는데, 이 영상을 보여주니 다들 입을 꾹 닫더라고요.(웃음) 이후부터는 어떻게 그 장면을 영화에서 잘 구현해낼까만 고민했던 거 같아요.

촬영하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당시 비행기가 현재 KTX 한 량 크기입니다. 윗부분이 동그란 모양이니 사실 더 작죠. 촬영감독에게 동체, 기수를 뜯어내고 카메라를 설치하지 말자고 했어요. 최대한 여객기 안에서 승객, 승무원, 테러범을 가까이 위치시켜서 보여주면 좋겠다고요. 촬영감독이 너무 좋다고 했죠. 촬영하면서 후회했습니다.(웃음) 출입구가 앞뒤, 두 개뿐이에요. 육십 명에 육박하는 승객과 스탭 스무 명이 한 번에 이동하려면 전쟁통이었어요. 뒷출입구에 조명을 설치하면 앞출입구만 쓸 수 있으니 정말 불편했죠.

 

모든 승객을 전문 배우가 연기했습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던 건지, 실제로 어떤 좋은 점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큰 비행기였다면 시도할 수 없었겠죠. 그런데 수용 승객이 60명이 안 된다는 걸 알고 나서 제작사에 부탁했어요. 승객을 다 배우로 채우자고요. 물론 보조출연자들도 연기를 잘하지만, 연기의 연속성 측면에서 보면 전문 배우들의 이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촬영 회차도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여러 번 보면 더 잘 보이는데, 풀샷이나 바스트샷 뒤에 걸리는 승객들의 연기가 정말 대단해요. 단 한 명도 구멍이 없다고 할까요? 이미 대학로나 독립영화에서 주연급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와주신 건데, 이 은혜를 언제고 꼭 갚아야겠죠.

20년 동안 조감독 생활을 하면서 많은 감독을 만나셨죠. 특히 기억나는 분이 있다면요?
너무 많아서, 한 분이라도 빼면 섭섭해하실 거 같은데요.(웃음) 아무래도 첫 영화였던 「꽃피는 봄이 오면」의 류장하 감독님이 기억나요. 돌아가셨지만, 정말 행복하게 찍었어요. 물론 그때는 첫 영화라 행복한지, 좋았는지, 나빴는지도 몰랐고요. 이후 여러 영화들을 하면서 아, 내가 첫 영화로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났구나 하는 걸 알게 됐습니다. 연출부 막내였는데 류 감독님이 많이 질문을 해주셨어요. “이 장면 어떻게 생각해?”라고요. 이러저러하다고 답을 드리면, “성한이 생각은 그렇구나,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물어보셨죠. 가끔 콘티도 짜보라고 하셨고, 일일이 코멘트도 해주셨어요. “성한이는 생각이 슬프네?”라고 말씀해주셨던 게 기억납니다. 그게 류 감독님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였던 거 같아요. 그때는 생각 못했지만.(눈물)

 

그렇군요. 앞으로 방향성을 생각하면 첫 영화에 의미가 클 것 같아요. 차기작으로 준비하는 작품이 있나요?
지금은 「하이재킹」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류장하 감독님 말씀드리다 보니, 김성수 감독님께도 많이 배웠던 게 생각나네요. 「아수라」 끝날 때쯤, 김성수 감독님이 물으시더라고요. “김 감독은 앞으로 뭐할 거야?”라고요.(그는 김성수 감독은 모든 조연출을 감독이라 부른다고 했다) “또 다른 작품 조감독 해야죠”라고 답을 드렸는데, “김 감독이 좋아하는 영화는 뭐야? 이야기도 좋고”라고 또 물으시는 거예요. 그때 좋아하는 영화는 있는데, 좋아하는 이야기에 대한 답을 못했어요. 머리가 ‘띵’ 하더라고요. 내가 왜 지금까지 영화를 했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부터 한 영화를 끝내면 1년씩 쉬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찾고 써보기 위해서요. 끝을 제대로 못 맺은 상황에서 「1987」에 합류했는데, 그 고민을 장준환 감독님이 함께 해주셨죠. 그러면서 제가 찾아온 대답은 이번 영화 「하이재킹」에 맞닿아 있습니다. 삶의 끝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 저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더라고요. 그 끝에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사람은 왜 끝까지 다다라야 했는가 같은요. 아마 다음 영화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감독의 꿈은 언제부터 꾸신 건가요?
어릴 때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가 「E.T.」(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1984)였어요. 그걸 보고 제가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렸다고 부모님께 들었죠. 그 뒤로는 그런 영화는 없었고요. 중학생 때 학교에서 단체 관람으로 「파 앤드 어웨이」(감독 론 하워드, 1992)를 봤는데 인상적이었어요. 톰 크루즈가 죽은 것처럼 누워 있는 걸 카메라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위로 쭉 올라가면서 찍다가 다시 내려와요. 그러니까 톰 크루즈가 다시 숨을 쉬는 겁니다. 어, 이거 뭐지? 카메라가 이렇게 삶과 죽음을 표현하네? 재밌다! 라고 느꼈어요.

 

대학에서는 영화동아리에 들어가서 단편을 만들기도 했죠. 제대 후에 학교에 연극영화과가 생겨서 교수님께 면담을 신청했어요. 영화로 먹고 살기 힘드니 하고 싶으면 복수전공을 하라고 권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졸업작품도 찍고, 연출부로 활동했습니다. 현장에서 보니 정말 어렵고 힘든 길이더라고요. 열심히 전문 조감독을 하면서 나름대로 만족하면서 살았던 거 같아요. 그런 부분을 깨주신 분이 김성수 감독님이셨고요.

 

김성수 감독이 영화 보고 뭐라고 하시던가요?
너무 좋은 이야기만 많이 해주셔서 안 믿고 있습니다.(웃음) 되게 늦은 시간에 장문의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읽고 너무 감사하다고만 답장했고요.

 

처음이라는 게 참 신기하죠. 첫 작품을 만들며 류장하 감독과 김성수 감독을 다시 떠올리기도 하시고요.
두 감독님이 너무 달라요. 좋아하는 영화도 다르고,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죠. 그런데 두 분이 같은 게 있어요.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 그 진심과 진정성이죠. 김성수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제가 류장하 감독님과 함께 했던 첫 영화 현장을 떠올렸고, 처음 영화를 시작했던 마음을 되찾게 됐습니다.

왜 2024년에 1970년대 이념 대립의 시기 영화를 다뤘는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를 보는 2024년의 한국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나요?
저도 사실 이념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다만, 남북이 분단돼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죠. 만약 남북이 하나였다면, 이런 영화도 만들어질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요. 언제까지 분단 상황이 지속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저는 지금 남한, 북한으로 분리된 상황이 불편해요. 정치적인 부분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저희 세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며 자랐고, 지금 젊은 세대는 교과서에 통일 교육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북한과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젊은 친구들도 많고요. 영화든 소설이든, 어떤 매체를 통해서도 계속 이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