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시간을 걷다, 모던 서울』(지식의날개)

필자는 시민단체 ‘성찰과성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성찰과성장은 일상 속 민주주의 실천을 목표로, 시민들과 책모임, 탐방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탐험하는 단체다.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던 중, 한 가지 흥미로운 제안이 들어 왔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룬 책 『시간을 걷다, 모던 서울』을 기반으로 민주주의 탐방을 기획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역사 트라우마’라는 주체 자체도 매력적이었지만, 이 책이 방송대출판문화원에서 출간됐다는 점이 놀라웠다. 방송대에서 행정학과 관광학을 공부했던 필자에게, 이 탐방 기획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제안을 받아들여 인사동과 혜화동 골목을 누비며, 저항의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예보에도 없던 비가 오락가락하던 8월 24일 오후, 20여 명의 사람들이 탑골공원에 모였다. 첫 번째 목적지인 김수영 시인(1921~1968)의 생가터가 탑골공원 건너편이었기 때문이다. 해설을 진행한 박영균 교수(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를 통해 김수영의 다채로운 모습을 새로이 알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특정 이념에 갇히지 않고 자유 그 자체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김수영이 갈망한 자유는 독재 정권의 억압뿐 아니라, 서구 식민주의와 냉전이 초래한 분단 체제에도 저항하는 것이었다. 시인은 물리적 억압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폭력에까지 맞서 싸웠다.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 모자를 두드린다. 우리 일행은 그림마당 ‘민’과 카페 ‘귀천’을 거쳐, 172번 파란 버스를 타고 혜화동으로 이동했다. 혜화로 넘어가 ‘백기완 마당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기완 선생(1931~2021)은 저항 운동의 상징으로 잘 알려졌지만, 문학인으로서의 면모도 탁월했다. 네 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그중에서도「묏비나리」는「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시로도 유명하다. 그가 쓴 시는 활자를 넘어, 저항과 투쟁의 기록이었다.

 
백기완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3년 되는 올해 4월, 선생의 말과 실천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의 살림집을 ‘백기완 마당집’이라는 기념관으로 재탄생시켰다. 마당집 골목은 돈가스 식당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백기완 마당집’이 개관했으니, 이제는 ‘돈가스 골목’이 아닌 ‘백기완 골목’으로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백기완 마당집처럼 저항의 시대를 살아간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새롭게 태어나는 공간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극단 학전이다. 백기완 마당집에서 학림다방을 지나 큰길을 건너면 만날 수 있는 이곳은, 「아침이슬」의 주인공이자 저항 예술가인 김민기(1951~2024)가 30여 년간 운영했던 곳이다.


김민기는 박정희 정권 시절, 시위대가 「아침이슬」을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보안대에 끌려가기도 했고,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작곡한 「늙은 군인의 노래」는 가사가 건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금지당하기도 했다. 그는 1991년 극단 학전을 열고, 연출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강산에, 설경구, 조승우, 이적 등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유명 연예인들이 이 학전을 거쳐 갔다.


비록 김민기도, 극단 학전도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김민기의 정신과 그의 예술적 유산은 흩어지지 않았다. 그가 소중히 여겼던 아이들을 위해 학전은 이제 아르코꿈밭극장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이번 로드 트립은 예술가와 그들의 예술, 예술 정신을 새롭게 조명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들이 남긴 유산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면서 『시간을 걷다, 모던 서울』과 함께 다시 새로운 길을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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