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 팀을 우승으로 이끈 리더인가, 단지 눈앞의 1승을 위해 선수를 혹사한 감독인가. ‘야신’(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82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간다. 하지만, 그의 야구에 대한 사랑은 야구팬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확산해, ‘야신 김성근’에서 ‘리더 김성근’으로 거듭나는 발판이 됐다. 김 감독은 1969년 마산상고 감독을 시작으로 지도자 길에 접어든 김성근 감독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OB베어스 창단 투수 코치, 감독을 시작으로 태평양 돌핀스, SK 와이번스 등을 거치며 50여 년간 지도자 생활을 했다. 최근에는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 출연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디지털미디어센터(원장 박종성)가 기획한 ‘명사 특강’에 김성근 감독이 「감독의 자리: 리더의 고독」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나’라는 의식을 갖고 임하라”, “안 된다 하지 말고 되는 쪽을 고민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10월 31일 공개방송을 마친 김성근 감독의 이야기를 <KNOU위클리> 지면에 소개한다. 강연 영상은 추후 방송대학TV에 송출되고, 방송대 유튜브 채널 ‘방송대 지식+’에 업로드될 예정이다.
정리=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DMC 명사 특강’ 김성근 감독. 사진 제공=DMC
“1cm를 극복하겠다는 의식을
선수들에게서 끌어내는 것이 리더의 일”
SK 와이번스 감독을 맡으면서 제 야구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어떻게든 이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야구를 했죠. 당시 사람들이 “김성근은 이기는 야구밖에 안 한다”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가 2년 동안 일본에서 야구를 하면서 그동안 제 야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당시 제가 코치를 맡았던 지바 롯데 마린스는 메이저리그 출신 바비 밸런타인 감독이 지휘하고 있었는데요. 그분에게 ‘우리가 가진 자원으로 팀을 만들어야 한다’, ‘선수를 키워야 한다’, ‘승리해야 한다’ 등에 대해 배웠지만, 가장 큰 가르침은 ‘감독은 팀원을 우선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환갑이 넘어서 일본에 갔습니다. 보통 그 나이에는 회사에서도 퇴출되면서, ‘내가 뭐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을 하시는데, 저 같은 사람도 일하라 수 있다는 걸 보시면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제가 살아가는 모습에서도 변화를 주는 시기였습니다.
일본 생활을 마치고 나리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였습니다. TV에서 야구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죠. 9회 말 주자가 2루에 있는데, 4번 타자가 안타를 2루 쪽으로 쳤어요. 보통 그런 상황이면 2루 주자는 3루까지만 가는데, 홈까지 들어와서 세이프가 됐습니다. 이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마어마한 감명이 됐죠. 그 1cm를 가능하게 한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고, 제가 한국에 들어와 SK 와이번스를 맡으면서 실천했습니다.
저는 철저히 데이터로 분석했습니다. 그전에 SK 와이번스 선수들 기록을 보면, 1루에 출루는 많이 하는데, 홈으로 돌아오는 선수가 적어요. 그러면 점수가 안 나니 약할 수밖에 없잖아요. 어떻게든 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것이 SK 와이번스 야구의 시작이고, 나아가 대한민국 야구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런 야구를 하지 않았거든요.
SK 와이번스 선수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캠프를 갔습니다. 출루 플레이부터 런닝까지 다 훈련했죠. 지금 대단한 선수가 된 최정 선수도 처음 만났을 때는 공을 하나도 못 잡았어요. ‘뭐 이런 아이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1:1로 붙어서 지도했습니다. 하루에 공 1천 개 치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비를 세우고 최정 선수가 다이빙 할 때 닿을 듯 말 듯하게 1천 개를 칩니다. 집중해서 쳐야 하고, 1천 개 전체를 당겨서 쳐야 합니다. 공을 잡을 때는 전부 다이빙해서 잡도록 했고요. 하루 2천 개도 쳤죠. 사람이라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숫자지만 합니다. 나중에는 최정 선수가 쓰러질 정도로 훈련했어요.
그런데 최정 선수가 잘 버티더라고요. 나중에 물어 보니 “감독님이 제일 무서웠어요. 그래서 했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점점 좋아지더니, 어느 순간 탁 하고 폼이 잡혔어요. 그렇게 최정 선수가 버텨냈고, 다른 선수들이 했으니까 SK 와이번스가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어떻게 리드해 주고 만들어주는가는 지도자와 선수 사이의 승부입니다. 어느 쪽이 죽느냐는 승부죠.
‘DMC 명사 특강’ 김성근 감독.
“아침 7시 훈련 전에 1시간 강의를 합니다.
선수 생활 후 사회에서 일할 지식을 전하기 위해서죠.”
저는 훈련할 때 제일 먼저 1시간 강의를 합니다. 이 강의에는 야구는 하나도 없어요.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것들로만 이야기하고요, 선수들은 메모를 해야 해요. 최정 선수가 훈련도 열심히 했는데, 강의도 진짜 열심히 듣더라고요. 메모도 엄청 써요. 아주 착하다고 봤는데, 끝나고 보니 만화를 그리고 있더라고요.(웃음)
SK 와이번스 선수들이 다른 팀 선수들과 뭔가 다르다고 하는 건 그런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만나서 부딪혀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본인들도 알고요. 이 선수들 중에서 야구선수 생활이 끝나고 어떤 자리에 보내야 하는데, 지식이 필요할 것 아닙니까? 아침 7시 훈련 시작해서 해가 떨어지면 끝나는데 밥 먹고, 야간 훈련까지 하면 10시 반이 되는데, 저는 밥 먹고 샤워할 시간도 없이 강의를 준비합니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오로지, 이 선수들에게 뭔가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식밖에 없는 겁니다. 저도 강의를 준비하려 훈련이 끝나면 사과상자 200~300개 분량의 책을 읽으면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면 책을 더 사왔고요. 그런 의식이 있어야 선수들도 생각이 바뀝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시기가 있었을 겁니다. 일하다가 ‘힘들다’, ‘배고프다’, ‘고단하다’, ‘졸리다’ 같은 생각이 드는 시기요. 이런 생각이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 속에 들어가려면 그 속에 들어가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뭔가가 생겨납니다. 저는 밥도 못 먹고, 샤워도 못하고 강의 준비를 하면서, 이날 선수들의 기록을 분석합니다. 그러면 해가 떠요. 오전 7시면 연습을 나가야 하니 준비해야죠. 단 한 번도 힘들다, 어렵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달리기가 늦었어요. 기록을 쟀더니 13초 정도가 나오는데, 이건 야구 선수 아니죠. 거기서 제게 중요했던 건, 이 자체를 안 되겠다, 슬프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늦어? 그럼 어떻게 하면 되지? 라고 되는 쪽으로만 고민합니다. 부족하다, 나는 못한다는 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옆 학교 코치를 찾아가서 달리기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내리막길 달리기를 해보라”고 조언해주더라고요. 방법을 찾다 보면, 주변에서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최강야구」에 촬영하면서 한여름에 4~5시간을 운동장에 서 있는데, 선수들이 힘들다고 하죠. 저는 덥다, 아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최강야구」 친구들은 프로 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그러면 이 친구들로 어떻게 할 것인가? 아까 제가 일본에 갔을 때 환갑 넘은 분들에게 제 모습으로 희망을 드리고 싶다고 했는데,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려운 야구를 어려운 상황에서 보는 시청자들이 많죠. 그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야구장에서 별로 웃지도 않는데요, 이제는 만세도 부르고 합니다.(웃음) 연습에 한 명만 나올 때도 있고, 두 명만 나올 때도 있어요. 프로 감독이면 못 참죠. 그런데 1:1로 가르쳐요. 그러면 아 이이가 저한테 덤벼들어요. 어떤 의식을 가지고 대하냐에 따라 생활이 바뀌고 미래가 바뀌지 않나 싶어요. 며칠 전에 시합하다가 3명이 다쳤어요. 한 명은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굉장히 즐거워해요. “감독님, 저 금방 돌아가요. 저 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라고 하면서요.
선수들에게 그런 의식을 준다는 것은, 리더가 어떤 의식을 갖고 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런 의식이 없다면 선수들은 절대 안 돌아옵니다. 요새 젊은 친구들은 일에서 즐거움이 없어요. 왜 내가 해야 하는가, 뭘 해야 하는가, 이렇게 자꾸 ‘왜’에 갇혀 버리면 이미 끝난 겁니다.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 자체에서 만족을 느껴야는데 말이죠.
‘DMC 명사 특강’ 김성근 감독의 사인볼.
중학생 때 야간 훈련 마치고 새벽 4시에 우유 400병 배달…
‘힘들다, 슬프다’ 생각 안 하고 즐겁다는 마음으로 기록 체크해
저는 재일교포입니다. 남의 나라에 왔는데 힘든 건 당연하죠. 그걸로 슬프다든가, 비관적으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가난해서 집에 와도 먹을 게 없었어요. 그러면 강가에 나가서 돌멩이를 던지는 겁니다. 밤 11시까지 훈련하고 와서 집에 오면 3시간 잡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우유배달을 해야 하거든요. 힘들다고요? 아니요. 즐거워요. 우유 400병을 배달하면서 오늘은 얼마나 시간을 단축했는가를 체크했어요. 그런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나가는 겁니다. 3시간 잤다고 힘들다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 의식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겁니다.
왜 그럴 수 있을까요? 저는 선수를 만들고, 키워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제가 가장 해내야 하는 일인데, 제가 아프다? 조금 쉰다? 그런 생각은 전혀 안 드는 겁니다. 그런 의식이 없는 사람은 리더의 위치에 있을 자격이 없어요. 리더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런 자리에요.
리더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팀원들과의 만남이 10년, 20년, 30년 후 돌아봤을 때, ‘좋았다’, ‘성장했다’라는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 역시‘김성근 때문에 인생 망한 거 같다’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악착같이 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죠. 예전에 가르쳤던 선수들을 지금 만나면 “감독님 덕분에 지금 잘 삽니다”라고 말해요. 저는 그 순간이 너무 기쁩니다. 잘했구나 싶고요.
인생이라고 하는 거는 자기 스스로를 버리면 길이 있지 않은가 싶어요. 내가 살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 못 살아요. 게가 주례도 몇 번 했습니다. 제일 먼저 말하는 건 “받으려고 하지 마라”는 겁니다. 받으면 준 사람은 대가를 원합니다. 야구에서는 선수들에게도 강조했고, 제가 살아오는 과정에서도 실천했습니다. 몇억을 준다고 해요. 안 받았습니다. 또 준다고 해요. 하나도 안 받았습니다. 그렇게 거절한 돈이 10억 원이 넘을 겁니다. 받으면 윗사람에게 아부해야 합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어떤 구단에도 나를 감독으로 받아달라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필요하면 오겠죠. 그러니 그 안에 저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선수들에게 1천 개씩 공을 치게 하면서 신뢰감이 생깁니다. 진실해지죠.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라, 마지막 종점입니다. 그렇게 가려면 힘들다, 모르겠다고 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사람이 진실 속에 들어가 있으면, 상대도 그 진심을 압니다. 나를 키워주려는구나, 만들어주려는구나 하는 걸요. 이게 사람과 사람의 만남입니다. 열심히 하면 종점까지 도달하죠. 그럴 때 선수가 “감독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했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저는 “절대로 나를 존경한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고 합니다. 선수가 믿고 따라온 거죠. 그게 신뢰입니다. 그 의식만 갖고 살면 됩니다. 어떤 일을 하든 그런 의식으로 사느냐 안 사느냐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SK 와이번스에서 30cm 야구를 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 30cm를 가느냐 마느냐가 승패를 결정합니다. 그런 의식 속에서 선수들을 가르쳤습니다. 처음 SK 와이번스에 갔을 때 그런 의식을 가진 선수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선수들을 비판하면 되나요?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죠. 구단주와 계약서에 사인할 때는 좋아요. 다음 날 야구장 들어서는 순간 ‘아, 이거 잘못왔다’ 싶어요.(웃음) 모든 팀이 마찬가지였어요. 그렇다고 제가 슬퍼해야 할까요? 집에 가면 책상 앞에 앉아서 분석하는 겁니다. 누구는 어디가 약하고, 누구는 어떻게 훈련시키고…. 그게 그 팀의 시작입니다. 모든 팀을 그렇게 만들어왔어요.
일본에 원정 갔다가 졌을 때 이야기입니다. 도쿄에서 비행기를 취소시켰어요. 코치에게 우리는 다시 캠프로 돌아간다고, 한 명도 한국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7시부터 다시 캠프를 시작했어요. “완전한 팀으로 만들자!”라고 선수들에게 말하면서요. 완전하다는 것에 대해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죠. 1cm 때문에 실수한 거 그냥 두면 앞으로도 영원히 못합니다. 1cm를 쫓아가야죠. 잠이 안 와야죠. 뭐가 잘못됐는지 찾아내려고 애를 써야죠.
본인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스스로 그 해결책을 찾아야죠. 미쳐야 미친 사람이 됩니다. 순간을 포착해내는 사람이 이겨요. 저는 선수들이 시합에 들어가기 전 애국가를 부를 때, 태극기를 바라보게 합니다. 온 눈을 다 해서요. 애국가가 끝나면 집중력 연습이 끝난 겁니다. 1cm를 찾는 연습이 다 된 거죠. 시합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안 된다고 하는 의식 속에 있는 사람은 영원히 못 이기는 사람입니다.
투수가 공 400~500개 던지면 팔이 안 올라가요. 올라갈 리가 없죠. 그런데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이 팔 아프다고 쉬면 어떻게 됩니까? 죽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죽어요. 그 속에 들어가야, 몰입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독인 제가 몰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리더가 어려운 자리고요. ‘아프니까 쉬어’, ‘하지 마’ 이렇게 하면 영원히 이 선수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시합에 쓸 수도 없고요. 안 아픈 방법을 자신이 찾아내야죠. 저는 아프다고 하면, 그냥 던지라고 합니다. 끝내야죠. 찾아내야죠. 포수가 부상을 입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하고요. 전쟁터에서 아프다고 가만 있으면, 쉬면 총 맞고 죽는데, 제가 제 선수를 그렇게 두면 안 되잖아요. 방법을 찾아내도록 몰아붙여야죠.
연습할 때 제가 볼을 발가락에 맞았어요. 엄청 아프죠. 그런데 선수가 계속 훈련해야 하니 자리를 지켜요. 연습 끝나고 차에 탔는데, 발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아요. 밤새 혼자서 아이싱하고, 다음날 훈련 나가요. 그러면 선수가 더 열심히 연습해요. 그런 식으로 선수들이 그 경지를 알게 됩니다. 이럴 때 어떻게 참아야 하는구나, 뭘 해야 하는구나 하는 걸요. 그렇게 팀이 단단해지죠.
1cm의 경지를 깨달은 선수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 줄 아세요? “감독님, 이 길이 지나가면 여기로 오네요”라고 합니다. 이제 가르칠 필요도 없는 겁니다. 자긴들이 느끼게 돼요. 그러면 끝입니다. “잘했다”는 소리도 안 해요. 이렇게 팀을 만들었고, 선수를 만든 겁니다.
이걸 혹사라고 하면, 그 아이는 못합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안 해요. 아픈데 어떻게 해요? 진심 속에서 경쟁이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최강야구」도 힘들어요. 땡볕에 4~5시간을 서 잇어야 하니 어지러워 죽죠. 그렇다고 리더인 제가 “나 잠깐 쉬고 올게”라고 말할 수 있나요? 통하지 않죠. 비 오니까 우산 써야 하나요? 그럼 야구장에 있는 선수도 우산 써야 하게요? 거기서 같이 비를 맞으며 버티면서 인내를 배우고, 조직이란 이런 곳이구나 하는 걸 배웁니다.
암 수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다음날 시합 나가 우승 이끌어…
암 걸린 자신이 관리를 잘못한 것, 리더는 아프다고 해서는 안 되는 사람
제가 너무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까 싶어서 제가 병에 걸렸던 이야기를 드립니다. 저는 세 번 암에 걸렸습니다. 암 걸렸으면 쉬어야죠. 그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심하게 말씀드리면, 암에 걸린 제가 잘못한 겁니다. 왜 지도자가 암에 걸려 쉬겠다고 이야기해야 하나요? 그건 통하지도 않는 말입니다. 배가 아프다? 허리가 아프다? 저는 허리도 세 번 수술했습니다. 여러분, 회사에서 “허리가 아프니까 회사를 쉬겠습니다”하면 되나요?
제가 암 수술을 한다니 사람들이 뭐라는 줄 아세요? “김성근이는 이렇게 해서 다쳤다”, “김성근이 이제 끝났다”라고 해요. 이게 세상입니다. 와서 누가 돈을 보태줍니까? 자기 관리를 못해서 도태된 사람이 잘못한 겁니다. 사람들에게 기대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열 명이 있으면 열 명이 나를 비방하는 것이 사회입니다.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거요? 알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나입니다. 슬퍼하지 말고, 의식을 갖고 살면 되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쨌든 자신이 의식 속에 있으면 얼마든지 갈 길은 많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음으로는 어떤 방법을 찾고 있는지를 고민해야죠. 힘들다, 어렵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길이 없습니다. 제가 암 세 번 걸리고 허리 수술도 세 번 했다고 했죠? 사람은 그만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걸 자신이 극복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나’라고 하는 의식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모든 길은 나 스스로에게 달려 있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DMC 명사 특강’ 김성근 감독.
김성근 감독 1문 1답
SK 와이번스 팬인 27살 청년입니다. SK 시절의 리더십의 비결을 알고 싶습니다.
리더는 첫째 조건이 선수를 행복하게 해줘야 해요. 프로야구는 돈을 만들어주는 거죠. 그러려면 이겨야 합니다. 선수에게 가족이 있다면 가족도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하고요. 그래서 이기는 것이 리더인 저에게는 베스트였습니다. 선수가 밥을 못 먹고 제대로 못 살면 그건 제 책임이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까 암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요. 한 번은 제가 맥박이 사라졌어요. 겨우 깨어났는데, 다음날 월요일 아침에 수술을 했습니다. 화요일 아침에 퇴원했어요. 수원 야구장에 시합하러 갔습니다. 아파 죽겠죠. 아무에게도 수술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타이레놀 여섯 알을 먹고 시합을 했고, 결국 이겼습니다. 호텔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쓰러졌어요. 수요일 아침에 제가 설악산으로 갔습니다. 정상을 올라갈 수 있도록 건강을 찾으려고요. 설악산 간 지 4일 만에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의식입니다.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어요. 그러니까 리더라는 건 쉬운 일이 없습니다. 할 일 없이 여기 서 있는 사람이 리더가 아니죠. 리더는 통솔하고,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운동하면서 힘들어서 포기하는 아이들에게 응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일 중요한 거예요. 스스로 답을 내리면 안 됩니다. 아프다, 힘이 든다, 무능하다 라고 하면 영원히 안 됩니다. 저는 자랄 때부터 가난했고, 고기를 먹어본 적도 없어요. 그래도 슬프다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유배달을 하고 돌멩이를 던지고, 내리막길을 달렸죠. 제가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현재 야구장에서 운동하는 아이들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야구장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겁니다. 그 의식이 어떻게 바뀌는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린 친구들이 대부분 “지도자 때문에 안 된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라는 말을 해요. 자신이 잘못한 부분은 찾아내야죠. 실수하면 해결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고, 안 되면 책을 보든, 주변에 도움을 청하든 고쳐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